[컬처 에세이]문화 콘텐츠엔 국력과 국격이 반영돼

#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감독 안톤 후쿠아)은 그야말로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할리우드 액션물이다.
할리우드 오락물은 앞서 9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아이언맨3'처럼 신나게 즐기는 동안에 '오직 미국만이 옳으며, 미국이 가장 우월하다'는 의식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준다. 어쩌면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미국의 무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엔 한국을 우습게보거나 비하하는 '밑도 끝도 없는' 내용까지 가득하다. "오락물인데"라고 그냥 웃어넘기기엔 정도가 좀 심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선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막장' 영화다.
영화적 설정 자체부터가 매우 허술한 이 영화는 북한 출신의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을 점령하자, 전직 대통령 경호원이 잠입해 이들을 모두 퇴치한다는 내용의 영웅 액션물이다.
자국 국민도 굶기는 북한 정권이 핵무기로 우리나라와 주변국을 위협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는 악행이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소재로 할리우드가 우리말을 쓰는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영화를 만드는 것까지야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다.
# 영화는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점령하게 되는 계기를 한국의 국무총리로 그렸다.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지만 북한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설정한 과격 테러단체 우두머리가 한국 총리의 경호책임자로 위장해 백악관에 잠입한다는 거다.
이 대목에서 이미 영화적 개연성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이사가 버렸다. 도대체 할리우드가 한국을 어떻게 보기에 이럴까. 우리나라가 그리 한심한 나라란 말인가.
더구나 테러리스트는 백악관 점령이 끝나자 자신들의 요구사항 관철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먼저 한국 총리의 머리부터 권총으로 날려버린다.
미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의식은 한국 총리를 영화 초반에 그냥 쉽게 죽일 수 있는 정도의 무게로 밖에 여기지 않는 거다. 그렇다면 인질로 잡힌 미국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은. 당연히 쉽게 죽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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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점은 이 뿐만 아니다. 테러리스트가 미국 핵무기의 자폭 암호를 해킹한 것을 빌미로 주한미군과 항공모함 철수를 요구하자, 미군 수뇌부는 이 요구를 들어주면 '한국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군사력의 균형추 역할 차원에서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미군이 없다고 해서 바로 우리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영화에서 미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안위가 온전히 자신들에게만 달린 것처럼 군다. 주권국가인 우리나라는 미국의 우방이지, 속국이 분명 아닌데 말이다.
# 미국은 전쟁을 통해 성장한 나라로 제국주의적 속성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론 '인권' '정의' '도덕' 같은 가치나 명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다른 나라와 관계에서도 이 가치들은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 복판에서 성추행 파문을 일으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얼마나 우리나라의 국익에 반하는 짓을 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국력이 약한 한국을 우습게보고 이런 황당한 영화를 만든 미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안보 외교차 방문한 한국 대통령을 수행하는 고위공무원이 성추문을 일으켰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벌써부터 전직 외교관들 사이에선 미국이 윤창중 사건의 처리를 질질 끌며 앞으로 한국과 외교협상에서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윤 전 대변인의 추행 의혹이 앞으로 얼마든지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막강한 세계적 영향력을 지난 할리우드의 눈에 비친 한국의 국격이 그 정도라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문화 콘텐츠엔 국력과 국격이 반영되고,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너무 비약한 게 아니냐고? 반대로 좋은 의미에서 한류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라. 그래도 과장이라 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