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發 초과세수] (上)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국세 수입도 '슈퍼 사이클'에 들어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은 법인세와 소득세, 증권거래세 등 주요 세목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국세 수입이 2년 전보다 100조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식화된 올해 국세 수입 전망치는 415조4000억원이다. 이는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편성할 때 올해 세수를 재추계한 값이다. 당초 390조2000억원의 국세 수입을 예상한 정부는 올해 25조2000억원의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세 수입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 재추계 당시보다 주요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더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57조2000억원, 37조6000억원으로 시장 전망을 넘어섰다.
기업 이익 증가는 법인세 증가로 이어진다. 법인세는 전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납부하지만,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지난해부터 중간예납 가결산을 의무화했다. 상반기 호실적이 올해 법인세 증가로도 이어지는 구조다. 정부의 올해 법인세 수입 전망치는 101조3000억인데, 이를 크게 웃돌 전망이다.

주식시장 활황에 따른 증권거래세도 올해 대규모 초과 세수를 가늠케 하는 변수다. 내년 초에는 기업 성과급이 근로소득세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올해와 내년에는 반도체 사이클에 맞춰 세수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증권은 내년 법인세 수입만 202조3000억원을 예상한다.
지금까지 국세 수입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따라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다. 2021년 344조1000억원이던 국세 수입은 2022년 395조9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2023년(344조1000억원)과 2024년(336조5000억원)에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4년과 비교하면 올해 국세 수입이 약 100조원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세수 오차의 원인과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경기 국면 전환 시 대규모 세수 오차가 발생하면 당해연도뿐 아니라 이후 2~3년간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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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후 세수 상황은 중기 전망과 비교해도 우상향한 모습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정부의 중기 국세 수입 전망에 따르면 국세 수입 전망치는 △2026년 390조2000억원 △2027년 412조1000억원 △2028년 434조1000억원 △2029년 457조1000억원이다. 최근 세수 흐름은 이런 전망을 2년씩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도 늘어난 세금의 활용법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는 성장률이 좋은 해이기 때문에 정부 지출을 늘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쓴다고 하더라도 첨단산업을 위한 R&D(연구개발) 등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반도체 초호황 속 역대급 초과세수가 전망되면서 이 돈을 어디에 쓸지를 두고 논란이 불붙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수 결손에 나라곳간 사정을 걱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초과로 들어온 세금을 어떻게 쓰는 것이 국가 경제에 가장 이로운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효율적인 재원 배분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초과세수가 발생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반도체 초호황이 불러온 초과세수 논란
논란의 핵심은 초과세수다. 정부가 편성한 본예산에 담긴 전망치보다 국세가 더 들어오면 초과세수, 반대로 덜 걷히면 세수결손이라고 표현한다. 예컨대 올해 국세가 전년 대비 더 걷혔다고 해도 정부 세입예산보다 적으면 세수결손에 해당한다. 반대로 전년 대비 국세가 덜 걷혀도 정부 전망치보다 많이 들어오면 초과세수가 발생한다.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김 실장은 최근 초과세수 활용 방안을 언급하며 '국민배당금' 구상을 제시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기업들이 당초 정부 전망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법인세 형태로 국가에 귀속한다면 그 결실의 일부를 국민에 되돌려주잔 취지다. 반도체 성과급 등의 소득세 증가분과 증시 활황에 따라 늘어날 증권거래세를 고려하면 초과세수 규모는 훨씬 커진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찬성 측에서는 AI(인공지능) 시대의 초과이윤이 소수계층에만 쏠릴 가능성이 큰 만큼 격차 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국민배당금을 공론화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단 문제의식도 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세수를 원칙없이 소진한 2021~2022년의 과거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정부 당시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초과세수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 크게 늘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교육교부금이 내국세와 연동된 탓에 세수가 늘면 자동으로 느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대 측에선 일회성 초과세수를 현금성 복지로 지출하는 것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국민 배당'이란 용어에 담긴 반시장적 뉘앙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섣부른 분배 논의보다는 초과세수를 국채를 갚는데 쓰거나 데이터센터 및 전력망 등 국가적 인프라 확충에 활용해야 한다고 맞선다.
논쟁과 별개로 초과세수의 용처는 국가재정법에 엄격히 규정돼 있다. 먼저 국채 상환에 쓴 뒤 남은 세계잉여금을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에 내려 보내야 한다. 이후 남은 재원의 30% 이상은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출연하고, 그렇게 남은 돈의 30% 이상을 국채나 정부 차입금, 국가배상금 등의 원리금 상환에 쓰도록 하고 있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고도 남은 돈이 있을 때는 추가경정(추경)예산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내년도 세입에 이연할 수 있다.
국민배당금을 둘러싼 찬반 논의를 떠나 초과세수가 발생한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실 초과세수가 발생했다는 것은 재정경제부의 세수 추계가 빗나갔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세수 추계 오차가 발생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역대급 초과 세수가 발생해 논란이 됐고, 반대로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대규모 세수결손이 발생해 정부 재정에 비상이 걸렸다.
이처럼 세수 오차가 크게 발생하는 이유는 대외 변수에 취약한 우리 경제 구조 탓이 크다. 무엇보다 기업 실적에 따라 널뛰는 법인세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실제 코로나19(COVID-19) 비대면 시기 반도체 업황 호조로 2022년 103조원을 넘었던 법인세수는 이후 반도체 업황 한파가 닥치자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시기 영업적자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법인세를 단 한푼도 내지 않은 결과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반도체 등 특정 업황의 부침에 따라 세수가 널뛰는 구조다 보니 예측치와 실제치 사이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과 같이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남는 돈을 '재정건전성 강화나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 재원'으로 볼지, 아니면 '국민의 몫으로 돌려줄 배당'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이념적 대립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결국 정부가 정확히 세수를 예측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다.
앞서 정부는 △세수 추계 모든 단계에 국회와 전문기관 참여 △세수 추계 모형 개선 △전문인력 확충 △공시대상기업집단의 법인세 중간예납 시 가결산 의무화 △매년 9월 세수재추계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올해 역시 세수 추계 오차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세수결손 트라우마'로 세입 추계를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는 재정당국의 사정도 이번 초과세수의 배경이 됐단 분석이다. 세수결손이 발생하면 예산 집행에 차질이 생기고 국회와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초과세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초과 세수는 논쟁적인 주제다. 국가 가계부의 근간을 흔드는 세수 오차가 발생했다는 기술적인 문제와 초과 세수를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맞물려서다. 하지만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꺼내 든 초과 세수 논의는 결이 조금 다르다.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세수 오차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많지 않다. 대신 예상보다 더 걷힌 세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 것이냐 하는 '배분의 원칙'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 초과 세수가 뭐길래?
초과 세수를 이해하기 위해선 예산 편성 구조부터 살펴봐야 한다. 정부는 매년 9월 이듬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는데, 이때 '쓸 돈'인 세출 예산안과 '거둘 돈'인 세입 예산안을 함께 마련한다.
문제는 이듬해 세금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성장률과 기업 실적 등을 토대로 이듬해 세입 규모를 추산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경기 변동 등에 따라 실제 세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흔히 세입 예산안보다 세금이 덜 걷히면 세수 결손이라고 부른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본예산 기준으로 3년 연속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빚인 국채를 발행하는 게 정공법이다.
반대로 세입 예산안보다 세금이 더 걷히면 초과 세수가 발생한다. 국가재정법상 공식 명칭은 '초과 국세수입'이다. 국가 예산은 사용처까지 미리 정해 편성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더 들어온 세금은 '남는 돈'이 된다.
◆ 더 걷힌 세금은 어떻게?
국가재정법은 초과 세수 활용법을 규정한다.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국채 상환,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이하 교부세·교부금),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채무 상환,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 등에 활용한다.
초과 세수 규모가 큰 경우 추경 재원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61조4000억원)과 2022년(52조5000억원)에 발생한 대규모 초과 세수 때도 그랬다. 당시 감염병 사태로 추가 지출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추경 예산은 일시적인 예산이라는 점에서 김 실장의 제안처럼 다양한 사업에 연속성 있게 활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김 실장은 초과 세수 활용법으로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예술인 지원, 노령연금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 실장이 단순히 초과 세수로 이런 사업을 활용하자고 제안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기서 언급한 초과 세수는 세입 예산과 무관하게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라 늘어날 세수를 통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 초과 세수, 왜 매번 논쟁?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 논란도 다시 재연되는 모습이다.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은 각각 내국세의 19.24%, 20.79%로 자동 배정된다.
초과 세수가 발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초과 세수의 약 40%는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으로 배정된다. 특히 재정 당국이 올해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교육교부금의 경우 초과 세수가 발생할 때마다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교육교부금은 유·초·중·고 학생들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칸막이 예산'이다. 학생 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2021년과 2022년에는 초과 세수로만 10조원 이상의 교육교부금이 추가로 배정됐다. 이번에도 늘어난 세금의 20%는 무조건 교육교부금 몫이다.
일각에선 세수 오차에 대응하기 위한 완충 기금의 필요성도 제기한다. 미국 주정부는 경기 호황기에 여유 재원을 적립해 침체기에 활용하는 불황대비기금(Rainy Day Funds)을 운용하고 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세수 활용 방안으로는 빚을 줄일 수도 있고 잠재성장률 제고, 경제구조 개혁을 위해서 쓸 수도 있고 경기 부양을 위해 쓸 수도 있을 것인데 (현재) 경기 부양을 위한 필요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반도체 사업 초호황에 따른 천문학적 규모의 초과 세수 활용 방안을 두고 재계는 일단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유례가 없던 일인 만큼 깊이 있는 검토·분석이 없었고, 세수 운용 방향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은 월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다만 초과 세수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투입해 경제가 성장하면 또다시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주요 경제단체들은 초과 세수와 관련한 언급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했다. 세금 운용은 전적으로 정부의 권한과 역할이란 이유에서다. 특히 올해 초 근거의 객관성 등을 지적받은 '상속세 보도자료'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터라 더더욱 세금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은 이익에 따라 법률로 정해진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지만 세금을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라며 "세금을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는 정부와 국회, 국민의 컨센서스(합의)가 우선인 만큼 세수 활용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수익 창출과 세금 납부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 우리 기업이 가진 기본 경영 철학"이라며 "과세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모르지만, 일단 세금을 걷었다면 이후의 활용은 정부에 맡기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법에 따라 초과 세수는 국채 상환 등에 우선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올해 대규모 초과 세수 전망의 배경이 반도체 사업 호황인 만큼 세금이 국가 전략산업 발전의 재원으로 적극 활용되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은 성공의 과실이 큰 만큼 실패 시 타격도 크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계속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초과 세수를 국가 전략산업 지원을 포함한 '기업 활력 제고'에 중점적으로 투입해 경기가 살아나면 세수가 추가로 걷히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에 재계 전반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초과 세수의 활용방안을 논의한다면 최근 세수의 증가가 첨단산업 분야 기업의 활황 때문이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며 "향후 지속적으로 기업들이 경제 성장과 세수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투자와 고용 확대를 뒷받침하고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 발굴·육성에 재투자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도 "법인세가 많이 걷혔다고 초과 세수를 반드시 기업 지원에만 투입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경기 활성화가 결국 안정적인 세입 기반 확충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가 기업 경영 지원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