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0년으로 낮춘다"…서울시 "현행 40년 유지"

"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줄여준다고 하는데 서울시는 40년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하니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요. 정부와 지자체 싸움에 괜히 국민들만 피해보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서울 양천구 목동 인근 J공인중개소 대표)
정부가 이달 초 내놓은 '9·1 부동산대책'의 핵심은 '재건축 규제완화'다. 투기수요가 많은 재건축시장을 살리기 위해 내구연한의 상한을 축소하고 안전진단 기준 등을 완화, 사업추진이 원활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 연한 단축의 수혜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 등의 아파트 호가가 수천만원씩 뛰었다. 이를 두고 정부와 시장은 부동산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보인다며 들떠 있다.
하지만 재건축사업의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는 재건축 규제 완화에 반대해 정책이 원활히 추진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와 서울시가 재건축 연한을 두고 갈등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열린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이건기 행정2부시장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완화 등 총론적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안전진단 기준과 사용연한 등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한다"며 "현재 재건축 연한에 대한 서울시 안은 40년"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현재 운영 중인 재건축 연한 40년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박원순 시장 역시 이날 "사실 중앙정부가 큰 정책을 만들면 결국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돼 있지만 현장에서 그동안 개선해온 우리의 정책을 반영하고 논의과정을 거치면 좋을 텐데 잘 안되고 있다"며 재건축 연한 축소에 대해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당혹감을 드러냈다.
현행 재건축 연한은 준공 후 20년 이상 범위에서 지자체마다 조례로 정한다. 서울시와 경기도를 비롯해 부산·인천·대전 등은 이 연한을 40년으로 정했다. 30년으로 줄이면 1987~90년 준공된 아파트의 재건축 가능 연한이 2~8년, 91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는 10년가량 단축되는 셈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재건축 연한 축소에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재건축 추진이 빨라지면 공동주택 유지·관리에 소홀해질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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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준공 후 40년이 되더라도 아파트를 사용하는 데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며 "재건축 연한 축소는 아파트 건설에 투입되는 모래와 철근, 시멘트 등 자원낭비뿐 아니라 정비사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토부가 재건축 연한을 법으로 못박을 경우 서울시가 이를 따르지 않을 방법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례에 위임돼 있는 재건축 연안을 상위법으로 규정할 경우 따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밀어붙이면 우리로선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 19일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단축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기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합리화 방안과 재건축 주택건설 규모 제한 중 연면적 기준도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법으로 재건축 연한이 정해지더라도 사업의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심의과정에서 시기를 조정할 수 있어서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 24일 발표한 '강남4구 재건축 집중 전세난 4대 대응책'을 통해 이주수요 집중에 따른 전세대란을 막기 위해 같은 지역 내 사업추진 시기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성이 좋다는 강남권도 재건축이 진행되려면 조합설립 후 10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서울시가 어떤 입장을 정하느냐에 따라 사업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고 안전진단 기준 중 주거환경 비중을 15%에서 40%로 높임에 따라 구조적 문제가 없어도 주민이 원하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어 남발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재건축 규제완화가 사업성이 좋은 강남 등에 집중됨에 따라 그렇지 않은 강북과의 집값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