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력 중병에 걸린 한국,편작과 악비 필요하다 -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지도력 중병에 걸린 한국,편작과 악비 필요하다 -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김영수 기자
2016.06.07 10:23

[‘김영수의 新史記 열전’]

[편집자주] 지금 우리는 중병이 들었다. 따라서 우리의 기반인 사회도 심하게 병들었다. 불치병이 아닌가 걱정이다. 이런 중병의 근원은 다름 아닌 이른바 나라와 사회를 이끈다는 리더들이다. 이에 이런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그 해결을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고전 속에 살아 있는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작은 2천 수백 년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불치병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편작은 2천 수백 년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불치병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중국 전국시대의 신의(神醫) 편작(扁鵲)은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어도 의사를 불신을 하거나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편작은 자신의 전기 을 남긴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빌려 아무리해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의 종류와 환자의 행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편작의 여섯 가지 불치병과 우리

“성인이 병의 징후를 예견하여 명의로 하여금 일찌감치 치료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병도 고칠 수 있고 몸도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병이 많다고 걱정하고, 의원은 치료법이 적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여섯 가지 불치병이 있다고들 한다.

첫째는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불치병이다.

둘째는 몸(건강)은 생각 않고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불치병이다.

셋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넷째는 음양이 오장과 함께 뒤섞여 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다섯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여섯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불치병이다.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있으면 병은 좀처럼 낫기 어렵다.”

편작이 여섯 가지 불치병들 모두가 놀랍게도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지금 우리는 온몸에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란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인간의 짓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온다. 정말이지 모두가 어딘가 병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처럼 보이다. 그리고 그 불치병은 대부분 편작이 첫 번째로 꼽은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여’ 초래된 정신상의 불치병이 아니겠는가?

특히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병은 자신들의 불치병을 넘어 백성과 나라를 병들게 만드는 강하고 독한 전염성마저 갖고 있어 더 걱정이다. 리더의 불통(불통)은 이제 일상사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자기 이익 지키기에만 몰두한다. 백성의 안위, 나라의 미래는 애시 당초 관심 밖이다.

“편작이라도 침과 약을 거부하는 환자는 치료할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바른 말을 듣지 않는 군주는 바로 잡을 수 없다”(『염철론(鹽鐵論)』 )라는 말처럼 백성들이 우리 리더와 지도층들을 내다버려야만 하는가 하는 마음을 수시로 들게 만드는 부끄러운 우리 현실에 직면해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는 이 중병을 정녕 고칠 수 없을까?

무너진 공사분별–사리사욕과 망국의 화근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실권자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의 집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평범한 세금 징수관에 지나지 않던 조사(趙奢)는 관련자 아홉을 잡아들여 법대로 처형했다. 평원군은 몹시 노하여 조사를 잡아 죽이려 했다. 이에 조사는 평원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는 당신 집을 그대로 두면 법이 손상됩니다. (중략) 귀하신 몸인 당신께서 ‘공적인 일을 법처럼 받들면’ 위아래 모두가 평안해지고, 위아래가 평안하면 나라가 강해지고, 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는 튼튼해집니다.”

조사는 평원군에게 ‘공적인 일을 법처럼 받드는’ ‘봉공여법奉公如法’을 강조했고, 평원군은 자신의 잘못을 싹싹하게 인정하는 것은 물론 조사를 요직으로 추천했다. 조사는 평원군을 향해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면 법이 손상되고, 법이 손상되면 나라가 약해져 결국은 망할 텐데 그 때도 부귀를 누릴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사마천은 리더의 자질 중에서 무엇보다 엄격한 공사관(公私觀), 즉 공사분별의 자세를 요구했다. 이것이 무너지면 조사가 지적한 대로 사리사욕에 몰두하게 되고, 사리사욕은 법을 무력화시키며, 법이 손상되면 결국 망국으로 간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진단이나 분석이 아니다. 3천 년 역사를 깊이 통찰하고 내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이다.

사마천은 또 전국시대 조나라의 유명한 대신이자 유세가였던 인상여(藺相如)의 입을 빌려 “국가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다(선국가지급이후사구: 先國家之急而後私仇)”라고 했다. ‘한장유열전’에서는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사사로움으로 공적인 일을 어지럽혀서는 결코 안 된다(치천하종불이사난공: 治天下終不以私亂公)”고 경고했다.

무치(無恥); 나라와 백성을 절망케 하다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또 다른 고질적 병폐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우리 백성들치고 지도자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부끄럽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백성들은 없을 것이다. 리더와 지도층의 ‘무치’는 나라와 백성을 절망케 한다. 더욱이 ‘무치’는 ‘공사분별’의 무시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성리대전性理大全』의 에서는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언행이 남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옳은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계시를 받은 청나라 때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불렴즉무소불취; 不廉則無所不取),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불치즉무소불위; 不恥則無所不爲)”고 했다. 지금 우리의 리더와 고위 공직자들이 딱 이렇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리더와 지도층들에게 만연한 ‘무치’의 근원은 자신들만 크고 높다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명나라 때 사람 이몽양(李夢陽)은 ‘자고무비(自高無卑), 무비즉위(無卑則危) 자대무중(自大無衆), 무중즉고(無衆則孤)’라고 진단한다. ‘자기만 높다 하면 아랫사람이 없고, 아랫사람이 없으면 위험하다. 자기만 크다 하면 대중이 따르지 않고, 대중이 따르지 않으면 고립된다.’(『공동자(空同子)』 )는 뜻이다.

아무리 크고 높은 자리에 있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아랫사람과 대중의 지지가 없으면 사상누각이다. 특히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근본과 어려울 때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잊고 잘난 척하면 사방에 적을 만드는 꼴이 된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이몽양의 이런 지적이 얼마나 정곡을 찌른 것인가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불괴우인(不愧于人) 불외우천(不畏于天)’이라 했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하늘조차 무섭지 않다”(『시경(詩經)』 ‘하인사(何人斯)’)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사람으로서 언행이 정정당당하고 떳떳하면 그 무엇도 무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괴(愧)’라는 글자를 척도로 삼아 자신의 언행을 점검하곤 했다. 지식인이나 리더는 특히 그랬다. 심지어 ‘괴’는 문명의 척도로까지 생각하여 이에 대해 진지하게 강구했다.

잘못은 부끄러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때 제대로 알고 고칠 수 있다. 명말 청초의 혁신 사상가 선산(船山) 왕부지(王夫之)는 배움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우기는 쉬울지 몰라도 좋아하기란 어렵고(학이이호난; 學易而好難), 행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꾸준히 하기란 어렵고(행이이역난; 行易而力難),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쉬워도 왜 부끄러운가를 알기란 어렵다(치이이지난; 恥易而知難).” 이것이 바로 호학(好學) 역행(力行) 지치(知恥)라는 3자의 관계로 왕부지는 그중에서도 ‘지치’를 특별히 강조했다.

누구든 언행에 대해 비판과 질책을 받으면 이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 부끄러움이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개는 자신을 나무란 사람들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왕부지가 말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지만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를 알기란 어렵다는 말의 의미다. 부끄러움을 회복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명장 악비(岳飛)의 고언(苦言)

지금 우리 사회의 법체계가 엉망이 되었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물론 법을 악용하고, 법에 종사했던 자들이 그 법으로 나라를 문란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도는 차이는 있어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문제의 핵심은 그렇게 법을 문란케 한 결과, 즉 망국(亡國)에 있다.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천하통일을 위한 기반을 놓았던 불세출의 개혁가 상앙(商鞅)은 법이 지켜지지 않고 문란해지는 원인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진단했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법지불행자상범야; 法之不行自上犯也).

공직자와 정치가들의 도덕성이 추락한 지 오래다. 법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정도이다. 나라의 미래가 밝지 않은 것도 윗물들이 형편없이 흐리기 때문이다. 송나라 시대 구국의 영웅이었던 명장 악비(岳飛)는 천하가 언제 어떻게 하면 평안해지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문신은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신은 죽음을 아끼지 않으면 천하는 태평해질 것이다!”(문신불애전; 文臣不愛錢, 무신불석사; 武臣不惜死, 천하태평의; 天下太平矣. 『송사(宋史)』 )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진(晉) 나라 때 사람 유송(劉頌)이 무제에게 올린 글에 보면 “공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요, 사욕을 심는 것은 혼란의 근원이다(진공자; 盡公者, 정지본야; 政之本也. 수사자; 樹私者, 난지원야;亂之源也)”는 대목이 나온다.

청렴의 대명사, 판관 포청천은 부패한 관리를 기용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글에서 “청렴은 백성의 표본이요, 탐욕은 백성의 도적이다(염자민지표야; 廉者民之表也, 탐자민지적야; 貪者 民之賊也)”라고 했다. 공사를 가르는 기준을 탐욕으로 본 것이다.

사마천이든 악비든 의식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사를 확실하게 가릴 줄 아는 기본기를 주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나라의 존망과 직결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때 정치가이자 문장가였던 가의(賈誼)는 “나라가 있음으로 집을 잊고, 공적인 일이 있음으로 사적인 것을 잊는 것이다(국이망가; 國而忘家, 공이망사; 公而忘私)”라고 했다. 모두가 공사 구별의 기본을 쓴 소리들이다. 이런 쓴 소리들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리더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는 길이다.

문제 해결의 지름길은 예방

민간에 전하는 편작(일설에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명의 화타(華佗)라고도 한다)과 관련된 다음 일화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위(魏) 나라 군주가 편작에게 “당신 3형제는 모두 의술에 정통하다는데 대체 누가 가장 의술이 뛰어나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편작은 뜻밖에 “큰 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제가 가장 떨어집니다”고 대답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위왕은 다시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의 명성이 가장 뛰어나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이에 편작은 “큰 형님의 의술은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형님은 병의 원인을 사전에 제거합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명성이 외부로 전해질 수가 없지요. 그리고 둘째 형님의 의술은 병의 초기 증세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가볍게 치료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명성이 마을 정도에 머물 뿐이지요. 저는 중병만 주로 치료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맥에다 침을 꽂고 피를 뽑고 피부에 약을 붙이고 수술을 하는 등 법석을 떨기 때문에 제 의술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명성이 전국에 알려질 수밖에요”라고 답했다.

“달무리가 서리면 바람이 불고, 주춧돌이 축축하면 비가 온다”는 속담도 있듯이 인간사가 대개 그렇듯 일의 과정에는 징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또 많은 경험을 통해 그 징후를 예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경험하기 전에 일의 기미와 징후를 살펴 대비하는, 다시 말해 예방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는 다가올 일의 징후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편작이 말하는 명의의 조건은 단지 의술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정치, 경영, 조직 모두에 해당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적이다. 문제는 이를 무시하는 우리의 무감각과 독선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몹시 병들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끄러움을 회복하여 사리사욕과 탐욕을 털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공사분별의 기본기를 갖추어서 백성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심기일전해야 한다. 이것이 개혁이다. 역사는 준엄하게 경고한다. 이를 해내지 못하거나 거부한 나라는 역사에서 예외 없이 퇴출당했다는 것을!

▲명장 악비의 충고는 더 말이 필요 없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악비의 고언을 새긴 비석으로 절강성 항주 악비사당에 있다
▲명장 악비의 충고는 더 말이 필요 없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악비의 고언을 새긴 비석으로 절강성 항주 악비사당에 있다

김영수 교수

김영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대 한·중 관계사로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92년 박사 과정 수료 후 학위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중국 공부에 나섰다. 중국 소진학회 초빙이사, 외국인 최초의 중국 섬서성 한성시 사마천학회 회원이며, 영산 원불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년 동안 중국을 다니며 중국사의 현장과 연구를 접목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사서『사기(史記)』를 통해 인간관계를 통찰하는 ‘응용 역사학’ 분야를 개척했다.

저·역서로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사마천, 삶이 역사가 되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성찰.김영수의 사기 경영학』, 『사기의 리더십』, 『완역 사기 본기本紀 1, 2』, 『완역사기 세가世家 1』, 『현자들의 평생 공부법』, 『사마천과의 대화』, 등이 있다. 『고대 중국 야철기술발전사』(역서)로 과학기술처 장관상을, 『사마천,인간의 길을 묻다』로 섬서문학창작연구회로부터‘吉春史學奬’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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