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버려진 K드림
K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다가 병들고 다친 뒤 거리로 내물린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도, 현황을 파악한 통계도 없다. 민간이 떠안는 임시 처우에 의존하는 동안 길 위의 삶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다.
K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다가 병들고 다친 뒤 거리로 내물린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도, 현황을 파악한 통계도 없다. 민간이 떠안는 임시 처우에 의존하는 동안 길 위의 삶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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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숙인은 계속 늘지만 이들을 관리할 제도는 없다. 거리에서 발견돼도 장기 보호가 불가능하고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다. 법적 근거가 없어 쉼터 입소도 제한되면서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외국인 노숙인을 관리하지 못하면서 치안과 위생 문제 발생 우려가 커진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 노숙인에게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 한 경찰관은 "중국 동포 같은 외국인 노숙자가 시내를 활보하지만 한국인이 아니라 보호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관도 "대소변, 담배꽁초 투기 민원이 반복되지만 마땅한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관내에 중국인 밀집 지역이 있는 구로경찰서는 외국인 노숙인을 발견하면 중국동포교회와 같은 민간이 운영하는 쉼터로 안내하고 있다. 구로서 관계자는 "입소를 했다가도 거부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보내려고 해도 안 가려고 하기도 한다"며 "쉼터에서 얼마나 지냈는지 정착을 했는지 나와버렸는지 따로 알아볼 수 없고 그런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노숙인으로 전락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은 절대적으로 민간에 의존하는 구조다. 현행법상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외국인 노숙인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과 소방 등이 외국인 노숙인을 발견하면 지역 노숙인센터나 민간단체로 인계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0원'이다. 외국인을 떠안은 시설들은 재정적 한계에 처한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경기도 최대 규모 노숙인 지원 시설 '수원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는 경기도와 수원시로부터 내국인 대상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된다. 외국인 노숙인에게도 인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지원을 제공한다. 안재금 수원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장은 "경찰, 소방,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외국인 노숙인을 센터로 인계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인 대상 지원금은 없어 예산이 늘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외국인 노숙인을 대상으로 △응급상황 시 119 신고 및 치료 △무료 급식 제공 △거처 수배 △신원 및 체류 자격 확인 등을 지원한다. 지자체 지원이 내국인 대상인만큼, 임금이 제공되는 자활근로나 최대 60일까지 숙박이 가능한 임시보호소 등 지원에선 외국인이 배제된다.
#한국에서 12년 넘게 일하다 희귀병으로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요리사 김석철씨(49). 건설 현장과 공장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다가 척추 기형이 악화돼 노숙 생활을 시작했던 김종씨(46). K드림을 꿈꿨던 두 사람은 고국인 중국으로 돌아갈 비용조차 없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다시 일을 찾고 싶다"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김석철씨와 김종씨의 거처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6층짜리 중국동포교회. 구로경찰서와 구로소방서가 외국인 노숙인을 발견하면 이곳으로 인계한다. 노동자에서 노숙인으로 전락한 중국 동포 40여명이 생활한다. 지하철역 등 거리를 떠도는 외국인 노숙인들과 비교하면 운이 좋은 사례에 속한다. ━희귀병이 앗아간 K드림…"속이 끓는다"━ 중국 국적 김석철씨는 고국에서 15년 넘게 요리사로 일하다 H-2(방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자식이 태어나며 많은 돈이 필요했다. 2013년 아들이 세 살 되던 해, 한국에서 첫 일자리는 평택 중식당 요리사였다. 28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았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해요. 그런데 몸을 제대로 쓸 수가 없어서…. " 지난달 25일 경기 수원 팔달구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중국 국적 김기춘씨(70).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잠자리는 수원역 환승센터 근처다. 역을 오가는 인파 사이에 그가 이부자리로 쓰는 박스와 담요가 있다. 김씨는 2005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15년간 그는 공사현장 잡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지냈다. 몸이 망가진 건 3년 전이다. 김씨는 2022년 여름 갑작스레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돈이 부족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계속 일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던 어느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어깨가 골절됐다. 수술을 받았지만 예전처럼 몸을 쓸 수 없었다. 공사장 일도 고시원 방도 금세 잃었다. 수원역을 찾은 것도 그때쯤이다. 끼니는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일주일에 한 번 예배에 나가 2000원을 받는다. 김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일하고 싶은데 제 몫을 못 하니까 절 써주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