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흔드는 여의도
국가 백년지대계인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마저 선거용 표몰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미 첫 삽을 뜬 용인 클러스터를 흔드는 정치권의 '아니면 말고'식 발언이 기업과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해악을 고발한다. 상편에서는 '인재와 인프라'라는 현실적 이유로 용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절박함을, 하편에서는 반복되는 '정치 리스크'의 비용과 이를 끊어낼 제도적 제언을 담는다.
국가 백년지대계인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마저 선거용 표몰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미 첫 삽을 뜬 용인 클러스터를 흔드는 정치권의 '아니면 말고'식 발언이 기업과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해악을 고발한다. 상편에서는 '인재와 인프라'라는 현실적 이유로 용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절박함을, 하편에서는 반복되는 '정치 리스크'의 비용과 이를 끊어낼 제도적 제언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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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먼저 흔든 건 경기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산업단지였다. 무리수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타깃이 바뀔 수 있지만 반복되는 정치권의 선거용 기업 흔들기 자체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4년 전 사례를 돌아보면 이번에도 각지의 후보자들은 대거 기업 유치 공약을 내걸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삼성 반도체 유치'를 도정 제1공약으로 내걸었다. 맞붙었던 이광재 후보도 강원 횡성에 현대차 자율주행·로봇 부서 등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산업 기반이 약한 경기북부에서는 너도나도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전국에서 나온 주요 대기업 유치 공약을 합치면 기업들이 단기간에 몇 배로 규모가 커져도 이를 충족하기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만 놓고 봐도 선거철 때마다 엄청난 세수를 올릴 수 있는 반도체 공장은 대부분 공약으로 제시하고 그 외에도 경북 구미는 스마트폰 생산 확대, 대구는 삼성 발상지로서 투자 확대, 호남에서는 홀대론을 들고나오는게 이제 일상적인 현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위해 대기업을 팔아도 기업 입장에서는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다. 기업은 정치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을 금기로 알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 사장(무선사업부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의 말이다. 작년말부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정치인의 말 한 마디가 우리 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실례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기업 입장에선 정치권에 입장을 밝히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기업의 대규모 사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면 제도적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절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사업 공정이 적잖이 진행된 상황에서 나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전북) 이전 주장은 기업 입장에선 상당 규모의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을 부담하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론'에 대한 불씨는 여전하다. 청와대가 호남 이전을 검토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산업계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단 비판도 제기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단 지적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지난 20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가 산업에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혹시라도 개입이 필요한 경우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며 "용인 반도체 산단 논란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의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논란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면서 불거졌다. 김 장관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꼭 거기(용인)에 있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며 "삼성과 SK가 용인에서 쓸 전기가 원전 15기 분량이라 전기가 많은 지방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지역화폐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인천e음'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인천e음 앱엔 지역화폐 결제 외에 택시, 배달, 장보기, 기부, 쇼핑몰 등 5개 부가서비스가 통합됐는데 인천광역시가 이를 모두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실제 분리가 될 경우 부산에서 인기를 끌던 동백택시가 지역화폐 동백전의 서비스 분리로 이용률이 크게 줄어든 것처럼 시민 불편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시는 현재 264만명이 가입한 인천e음 앱에 통합된 부가서비스 분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택시 서비스 운영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됐는데, 기존 운영사인 코나아이만 단독 참가해 재선정됐다. 인천시는 나머지 서비스도 분리를 검토하고 있다. 인천시가 시민 만족도가 높은 인천e음 서비스를 갑자기 분리하려는 표면적 이유는 직원들의 업무 과부하와 부서 간 역할 분담 문제 때문이다. 인천시는 특별위원회까지 꾸려 분리 작업에 나섰다. 기존 통합 서비스 운영사인 코나아이에 대한 각종 조사를 통해 정치적 압박도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지역균형발전이다. 지역 분산을 통해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논리다. 전제는 맞다. 문제는 실행 방식이다. 어느 지역이나 좋은 일자리를 얻고 싶어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긴다. 여기에 정치가 개입하면 지역균형발전은 '성장'이 아닌 '나눠먹기'로 변질된다. 지역 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성장 전략을 고민하기 보다 지역 정치인의 업적 챙기기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혁신도시다.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추진된 사업이지만 현재까지 평가는 실패에 가깝다. 혁신도시 입주가 본격화한 2012년 이후에도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은 계속됐다. 2000년 46. 3%였던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19년 50%를 넘었고 지금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혁신도시 조성에 수조원을 쏟아부었으나 효과는 제로인 셈이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지적된다. 효과적인 지역발전을 이루려면 지역의 기존 산업과 연계한 산업·경제의 육성과 집중적인 자원 투입이 필요하다.
지난 16일 오후 5시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불금'을 앞둔 통근버스 탑승장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을 방불케 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경광봉을 든 주차 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버스 엔진음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머리 위 표지판에는 양재·강남·사당 등 서울 주요 지역과 기흥·용인·수지 등 수도권 30여개 노선이 빼곡히 안내됐다. 강남과 사당 등 인기 노선 플랫폼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버스 한 대가 출발하면 곧바로 다음 차량이 왔다. 화성캠퍼스 통근 버스는 서울·경기 주요 지역과 1시간 안팎으로 연결된다. 이날 탑승장에서 만난 40대 A씨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편도 1시간 정도 통근한다"고 소개한 뒤 "경기 평택캠퍼스가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며 "회사가 멀어진다면 가족들도 함께 이사해야 하는데 이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삼성전자는 360조원을 투자해 경기 용인시 이동읍과 남사읍에 들어설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6개의 팹(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완공되면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가 된다.
"(뺏어오자는 발상이) 불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남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A의원) "우리 당 안에서는 (이전하지 않기로) 논의가 끝난 거죠. "(경기 지역구 민주당 B의원)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북지역(새만금) 이전 요구에 대한 같은 당 의원들의 반응이다. 수혜 당사자가 될 수 있는 호남 지역 의원들까지 우려한다. 이미 확정된 용인 반도체 산단 건설 계획의 기둥을 뽑아오자는 주장에 뒤따를 후폭풍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제기되면서 파장이 더 커졌다. 전북 지사 출마를 저울질하는 안호영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19일 이전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국회 내 대표적 환경론자로 이재명 정부에 입각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같은 달 26일 "이전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해 기름이 부어졌다. 이후 용인 지역 의원들의 반대와 전북 지역 의원들의 옹호로 공방이 이어졌고 지역 갈등으로 확산할 우려가 커지자 결국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다.
전북 새만금은 반도체 공장 입지로서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공장은 전력과 용수 확보뿐 아니라 지반 안정성이 수율과 직결되는 초정밀 산업 시설로 입지 조건이 일반 제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반도체 공정은 나노미터 단위의 정밀도를 요구한다. 공정 미세화가 진행될수록 공장 내부의 진동 관리 중요성도 커진다. 특히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핵심 설비는 설치 단계에서부터 지반 진동 등에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업계 관계자는 "EUV 장비는 공장 내에서도 진동이 별도로 관리되는 구역에 설치된다"며 "사람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진동이나 장기 침하로 장비 정렬이 틀어질 경우 수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새만금이 바닷가의 연약 점토층 위에 매립토를 쌓아 조성된 간척지라는 점이다. 자연 내륙 지반에 비해 강성이 낮고 지반 특성이 불균질한 구조다. 새만금개발청의 '새만금지역 암반층 현황도'에 따르면 새만금 산업단지의 암반층(연암)까지 깊이는 해수면 기준 약 7m에서 최대 53.
용인은 인재 유치, 교통 접근성, 전력·용수 수급 등 종합적인 면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에 최적의 입지로 평가된다. 기흥, 화성, 평택 등 인근에 조성된 반도체 산단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국가 전략 거점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에서 인재 유치 경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 육성도 중요하지만 고급 인력이 수도권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현실적 문제를 외면할 순 없다. 특히 IT 업계에서는 판교 등 수도권 남부를 '남방한계선'으로 여긴다. 수도권의 정주 여건과 인프라 등을 지방 근무에서 충족하기 어렵다. 문재인정부 당시 수도권 과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용인을 반도체클러스터로 정한 것도 인재 유치가 필요하다는 반도체 업계의 요구 때문이었다. 용인에는 경부·영동·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등 대규모 교통망이 지나는 수도권의 교통 중심지다. GTX-A 등 수도권 전철망과도 연계돼 출퇴근에도 용이하다. 평택항과도 인접해 있어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고 중간재나 장비 등을 수입하는 데도 장점이 있다.
삼국시대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조선시대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중심지였다. 정보와 인재가 흐르는 통로이자 시장, 교육 등 생활기반 인프라가 모이는 곳이 용인이다. 21세기엔 국가 미래를 좌우할 반도체 산업이 자리한다. 반도체 산단이 자리 잡게 된 중심엔 전력과 용수가 있다. ━◇"연결 준비 끝"…공장 가동 전까지 안정적 전력 공급 완료━지난 19일 방문한 용인 일반산단은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19일 방문한 용인 일반산단은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용인 일반산단에는 SK하이닉스가 들어서며, 용인 국가산단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및 관련 기업들의 공장들이 자리잡을 예정이다. 용인 일반산단은 123만평 규모로 4개의 반도체 공정이 들어서며 월 평균 80만장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보유할 반도체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직은 뼈대만 올라가 있는 공장과 달리 부지 외곽에 완성된 건물 하나가 위용을 드러내며 서 있었다. 용인 일반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한국전력 동용인 변전소다.
삼국시대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조선시대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중심지였다. 정보와 인재가 흐르는 통로이자 시장, 교육 등 생활기반 인프라가 모이는 곳이 용인이다. 21세기엔 국가 미래를 좌우할 반도체 산업이 자리한다. 반도체 산단이 자리 잡게 된 중심엔 전력과 용수가 있다. ━◇"연결 준비 끝"…공장 가동 전까지 안정적 전력 공급 완료━지난 19일 방문한 용인 일반산단은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19일 방문한 용인 일반산단은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용인 일반산단에는 SK하이닉스가 들어서며, 용인 국가산단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및 관련 기업들의 공장들이 자리잡을 예정이다. 용인 일반산단은 123만평 규모로 4개의 반도체 공정이 들어서며 월 평균 80만장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보유할 반도체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직은 뼈대만 올라가 있는 공장과 달리 부지 외곽에 완성된 건물 하나가 위용을 드러내며 서 있었다. 용인 일반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한국전력 동용인 변전소다.
"돋보기로 색종이 태우기 놀이하나요?" 기업은 기가 막힌다.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서 수백조원씩 쏟아붓는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여기는 정치권의 행태 때문이다. 전력과 용수, 생태계 등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입지로 공장을 옮기자는 비상식적 주장은 태양과 돋보기만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수준의 논리라는 얘기다. 우선 전력부터 걸림돌이다. 용인 산단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약 15GW(기가와트)의 전기가 필요하다. 내년 5월 1기 팹(공장)의 첫 클린룸 완공을 목표로 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총 5. 5GW(4기 모두 완공됐을 때 소요량) 중 2개 팹 분량인 2. 83GW에 대한 송전선로 공사도 마무리 단계다. 삼성은 이미 6GW 전력을 한국전력으로부터 확보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거론하는 새만금은 끌어올 수 있는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이 0. 1GW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구축한다면 국내 평균 태양광 설비 이용률 16%를 적용했을 때 새만금 매립지 90% 이상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