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 돌파구, 독일에서 찾다
AI 전환(AX)·녹색 전환(GX)으로 요약되는 산업 전환기이자 '경제안보'로 대표되는 지경학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시대다. 전통 제조업 강국 독일이 어떻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생존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5회에 걸쳐 조명한다.
AI 전환(AX)·녹색 전환(GX)으로 요약되는 산업 전환기이자 '경제안보'로 대표되는 지경학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시대다. 전통 제조업 강국 독일이 어떻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생존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5회에 걸쳐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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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센주의 TSMC 투자 유치는 유럽연합(EU) 차원의 거대한 산업정책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준다. EU는 지난 2023년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고 아시아·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EU 반도체법(EU Chips Act)'을 발효했다. 이 법의 핵심 목표는 현재 10% 수준인 유럽의 글로벌 반도체 생산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EU는 공공· 민간 투자를 포함해 약 430억 유로(약 74조 원) 규모의 지원·투자 패키지를 추진한다. ━전략자산 된 반도체…유럽도 공급망 구축 속도━ 최근에는 'EU 반도체법 2. 0'에 대한 논의도 본격됐다. 기존 법안이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와 긴급 공급망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2. 0은 양자 컴퓨팅용 차세대 칩과 AI 반도체 설계 등 기술 고도화에 방점을 찍는다. 보조금 경쟁에 따른 국가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유럽 전체를 유기적인 생태계로 묶는 '범유럽적 협력' 강화도 핵심이다. EU 반도체법 발효는 팬데믹이 촉발한 공급망 혼란이 방아쇠가 됐지만, 그 이면에 기술 패권이 국가 안보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변화가 있다.
독일 작센주의 TSMC 유치는 독일 특유 연방제가 구축한 '분업체계'의 결실로도 볼 수 있다. 연방정부가 입지 선정을 지원하고 주(州)정부는 실무를 도맡는 체계다. ━연방은 입지 선정, 지방 정부는 기업 맞춤형 지원━외국 기업이 독일에 투자를 결심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연방정부 산하 독일 무역투자진흥청(GTAI)이다. GTAI의 저력은 독일 16개 연방주와 기업을 잇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데 있다. 기업의 요구사항을 분석해 후보지를 골라내는 과정을 GTAI가 맡는다. GTAI를 통해 입지가 특정 주로 좁혀지는 순간, 본격적인 실무는 주정부 차원에서 진행된다. 이들은 지역의 산업 지형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로서, 특정 지자체만이 제공할 수 있는 맞춤형 인센티브·인프라 지원·인적 자원 수급 방안 등 정책 패키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분업 시스템은 초기 의사결정 단계에서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각 주의 전문성이 결합하며 타국이 갖지 못한 '디테일' 발휘로 이어진다.
독일 남동부 작센주 주도(州都) 드레스덴 인근 아우토반 13호선(A13)을 달리다 드레스덴 공항 인근에 이르자 지평선을 메운 거대한 기중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은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인피니온·보쉬·NXP 등 유럽 반도체 기업들과 합작한 ESMC의 반도체 팹(fab·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현장이다. ESMC는 이 곳에 100억 유로(약 17조 원)를 투입해 월 4만 장의 300mm(12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을 갖춘 팹을 구축한다. 올해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양산하는 게 목표다. TSMC가 첫 유럽 진출지로 이 곳을 낙점한 데엔 유럽연합(EU)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이 마중물 역할을 했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EU 내 입지 중 왜 독일이었고, 독일 중에서도 16개 주 중 하나인 작센이었는지를 살피는 과정은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 ━ TSMC의 첫 유럽 공장…유치 핵심 '산업 클러스터'━지난달 21일 작센주 총리 집무청사에서 만난 토마스 호른 작센주 경제개발공사(WFS) 대표는 TSMC 유치의 핵심 요인을 묻자 "이미 형성된 클러스터"를 첫손에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