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돈'엔 번뜩, '쓴 돈'엔 관심 없는 국회…올해는?

"2015년을 대한민국의 결산이 제대로 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말 '국회 결산심사 강화 방안 학술대회'에서 이 같이 선언했다. 매년 반복되는 '졸속 늑장 결산심사'의 사슬을 끊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정 의장의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려면 충분한 결산심사 기간을 확보하고 시정요구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2014년도 예산 9조2079억원 가운데 7조4906억원만 집행하고 1조6064억원을 불용처리했다. 나머지 1109억원은 이월됐다. 산업부 전체 가운데 약 17%가 실제로 집행되지 않고 불용으로 처리된 셈이다.
다른 부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정부 전체 예산 불용액은 17조5000억원으로 잠정집계됐다. 지난해 총 예산 309조원7000억원 가운데 약 6%에 달하는 규모다.
예산 불용의 상당부분은 세수 부족으로 집행할 예산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따지는 국회 결산심사가 졸속으로 이뤄져 사후검증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는 점이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세수부족으로 집행할 예산이 없는 것도 애초부터 예산 수립이 주먹구구식으로 됐다는 말과 상통한다.
실제로 결산보고서는 정부가 제출한 안 그대로 국회를 통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숱한 수정을 거치는 것과는 비교된다. 결산심사는 사후적 성격이 짙어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별로 빛이 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국회의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결산심사 결과를 토대로 국회가 정부에 시정요구를 해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충실한 결산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 결산 시정요구사항 가운데 정부가 기한 내 조치를 완료한 비중은 91.2%(2010년)→86.4%(2011년)→79.0%(2012년)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
이같은 '대충 결산'에 대한 해법으로는 결산 시정요구사항이 다음해 예산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결산심사를 조기에 마치는 방안과 시정요구 조치결과에 대한 심사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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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결산제도가 도입된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11년간 국회가 결산심사를 법정기한인 8월말까지 마친 경우는 2011년 단 한차례 뿐이었다.
국회 관계자는 "결산이 법정기한 내에 처리되지 못한 것은 예산안에 비해 결산심의 기한을 준수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결산심사 결과를 예산안에 충실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 모두 기한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령 법정기한인 8월말까지 결산심사를 마친다고 하더라도 다음해 예산안에 시정요구사항을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예산안이 대개 9월 중순 국회로 넘어온다는 점에 비춰볼 때 8월말은 이미 정부 예산안이 대부분 짜여진 시점이다. 결산심사 개시시점과 법정기한을 자체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신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결산에 대해 조기 심사를 강화해 정부 예산안의 방향성을 미리 잡아줘야 한다"며 "(심사를) 대충해 시간에 쫓겨 우물쭈물 넘어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17% 안 쓴 산업부…'대충 결산' 폐해

연말이 되면 국회는 다음년도 예산심사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전년도에 썼던 '돈'은 주목하지 않는다. 원래 계획과 다르게 썼거나, 남은 돈이 넘쳐나는데도 정부도 국회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 회계년도에 집행되지 않은 예산 중 가장 큰 규모는 '이월액'이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2009년부서 2013년까지 5년간 정부의 예산 이월액은 55조원 규모다.
이월은 한 회계년도 내에 마치기로 한 사업들이 부득이하게 다음년도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다. 이월은 해당 정부 사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그 해에 사용되지 않더라도 사업 진행경과에 따라 곧 지출될 예산이다.
더 큰 문제는 '불용'처리된 예산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약 24조3000억원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채 불용처리됐다.
지난해의 경우 정부 전체의 예산 불용액은 잠정집계 기준으로 17조5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총 예산 309조원7000억원 가운데 약 6%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는 2014년도 예산 9조2079억원 가운데 7조4906억원만 집행하고 1조6064억원을 불용처리했다. 나머지 1109억원은 이월됐다. 산업부 전체 가운데 약 17%가 실제로 집행되지 않고 불용으로 처리된 셈이다.

이월이 사업수행 시기에 대한 잘못된 예측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불용은 애시당초 사업 계획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용액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불요불급한 사업에 충분한 예산이 투입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매년 5조원 가까운 엄청난 규모의 불용액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묻지마 예산확보' 때문이다. 각 부처가 사업의 '타당성'보다는 '필요성'을 더 강조해 무리하게 예산을 배정받으려고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예산확보 욕심도 한몫한다.
불용액이 크게 발생하는 데에는 국회의 잘못이 크다. 전년도에 불용사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증하고 차년도 예산 심사에서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데 결산심사가 형식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세부적인 이월이나 불용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감시를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 의원실 한 관계자는 "정부 뿐만 아니라 국회도 '예산' 따는 데에만 주목할 뿐 '결산'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세부사업에 대한 불용내역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점도 고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결산보고서, 국회로 한달 일찍 넘겨라" 가능할까?

조기결산제도가 도입된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국회가 결산심사를 법정기한인 8월말까지 마친 경우는 단 한차례(2011년)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는 결산심사를 일찍 시작하기 위해 정부의 국가결산보고서 제출을 앞당기는 내용의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현재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정부 결산보고서의 조기제출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2건이 계류돼 있다.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낸 개정안은 현행 5월말인 결산 제출일을 15일 앞당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납폐쇄기한을 현행 2월10일에서 1월25일로 당기고, 다른 일정도 이에 맞춰 15일씩 앞당긴다는 것이다.
홍의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낸 개정안은 결산 제출일을 총 30일 앞당기는 내용으로, 이를 위해 각 중앙관서의 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내는 중앙관서결산보고서 제출일을 1개월 앞당기도록 했다.
이 경우 현행 기재부 장관이 감사원에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는 시점은 4월10일에서 3월10일로, 감사원이 다시 결산검사 결과를 기재부 장관에게 제출하는 시점은 5월20일에서 4월20일로 순차적으로 당겨진다. 결국 이를 통해 결산보고서의 국회 제출이 현행 5월31일에서 4월30일로 빨라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산보고서 조기제출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는 의문이다. 현재 출납폐쇄기한을 2월10일까지로 정하고 있는 것은 각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들이 회계연도(1월1일~12월31일)가 끝난 뒤에도 사업에 대한 비용 지급 등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기 위함이다.
정부 관계자는 “회계연도가 끝나고 정산작업이 마무리된 뒤 결산작업이 시작되는데 만약 이 일정을 당긴다면 정산이 끝나지 않은 사업들까지 다 미세하게 미리 조정해서 세출입을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부가 결산보고서를 아무리 일찍 제출하더라도 국회가 결산심사를 미룰 경우 막판 부실 결산심사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 국회 결산 시정요구 21% '무시'…대책은?

국회가 매년 결산 심사를 하는 주된 목적은 결산에서 발견된 문제가 반복하지 않도록 다음해 예산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결산 심사를 통해 정부에 내린 '시정요구사항'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정요구만 할 뿐 그 시정요구사항들이 실제 이행됐는지에 대한 심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9∼2011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처럼 시정요구사항에 대한 조치결과 보고를 전체회의 안건으로 올려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27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매년 국회가 결산 결과를 토대로 정부에 내린 시정요구사항 가운데 기한 내 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사항의 비중은 2010회계연도 7.9%에서 2011회계연도 13.6%, 2012회계연도 21.0%로 크게 늘어났다.
예컨대 국회는 2012년 11월 기획재정부과 국세청을 상대로 세금 체납을 줄이기 위해 징수 관리를 강화하라고 시정요구를 내렸다. 그러나 2013회계연도 결산 결과, 국세청의 미정리 체납액은 전년 5조9089억원에서 6조5400억원으로 오히려 11% 늘어났다.
현행 국회법상 국회는 매년 정부의 이전 회계연도 결산 보고서를 본회의에서 의결한 뒤 부당한 사항에 대해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시정요구 받은 사항을 지체없이 처리하고 그 결과에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시정요구사항 이행률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같은 내용의 시정요구가 반복되는 사례도 매년 늘고 있다. 결산시 반복 시정요구 건수는 △2010회계연도 153건 △2011회계연도 166건 △2012회계연도 190건이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국회의 시정요구에 대한 정부의 조치 미완료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국회의 결산 심사권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회 시정요구사항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국회 입장에서는 별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다. 예산 사업에 대해서는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 심사 때 해당 예산을 깎는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있지만 예산 사업이 아닌 경우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이에 예산정책처는 각 상임위원회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차원의 시정요구사항 조치결과 보고와 심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실제로 기재위는 2009∼2011년 매년 '결산 시정요구 조치결과 보고의 건'을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토대로 심사를 실시해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당시 기재위원장은 새누리당 소속인 김성조 전 의원과 서병수 현 부산시장이다.
당시 기재위원이었던 김광림 국회 정보위원장은 "2010년쯤 기재위에서 의사일정에 결산 시정요구 조치결과 보고를 포함시키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며 "당시 기관장이 조치결과를 보고하고, 의원들도 질의를 하자 이후 조치 미완료 비중이 획기적으로 줄고 반복 시정요구도 거의 사리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예산정책처는 결산 시정요구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당해 연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시정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매년 추가 조치 사항을 누적해 보고하도록 제도화하고 △시정요구를 불이행하는 경우 다음 예산안 심의 때 해당 사업 예산을 감액하며 △조치결과가 심각하게 미흡한 경우 기관의 기본경비 예산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결산위원회도 없는 美, 결산 잘하는 비결은?
우리나라 국회의 결산심사가 허술한 것이 비단 관련 기구가 없어서 만은 아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에는 있는 기구가 없음에도 오히려 결산을 더 실효성 있게 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는 예산을 다루는 세입·세출위원회가 있을 뿐 별도의 결산위원회는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산특위'일 뿐 결산은 다루지 않는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결산제도는 주요 정책예산에 대한 평가 등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델로 꼽힌다.

의회 소속의 막강한 감사원(GAO)이 예산집행 과정을 상시 감시하기 때문이다. 재정집행이 끝난 뒤가 아니라 집행과정에서부터 들여다보는 게 특징이다. 지출내역의 숫자를 맞춰보는 검사보다는 예산안의 효율성과 집행성과를 따지는 성과평가 중심이다. GAO는 미 재무부와 예산관리처(OMB)가 제출하는 연방정부 재무보고서를 감사하는 역할도 맡는다.
결산은 비록 사후적 개념이지만 드러난 문제점을 차기 예산 편성 때 바로잡도록 하는 게 핵심 목표다. 미국이 재정집행 과정에서 상시 회계검사를 하는 것도 기존 예산의 문제점을 가능한 빨리 포착해 다음 예산 편성 때 반영하기 위해서다.
내각제 국가여서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영국도 집행과정의 상시감사 등 결산을 깐깐하게 수행한다. 크게 3단계인 결산서 작성은 감사원 격인 국립회계원(NAO)이 초안을 작성하는 녹서(그린페이퍼) 단계, 이를 의회 결산위원회가 보완·채택하는 청서(블루) 단계, 정부가 시정조치계획을 의회에 보고하는 백서(화이트) 단계로 진행한다. NAO는 의회 소속이다.
이밖에 캐나다, 일본도 의회의 결산위원회가 정부의 예산집행을 상시 감시한다.
우리나라도 이들처럼 결산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감사원이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이라는 한계를 감안하면, 우선은 감사원의 역할 강화가 요구된다. 지금처럼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결산서를 감사원이 사후 감사하는 과정을 하나로 합치거나 감사원의 결산감사를 성과평가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회는 언제라도 감사원에 결산감사를 요구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결특위 소속 의원이 타 상임위와 겸임하지 않고 예결특위에만 전념케 하거나 결산관련 예결특위 의결사안의 강제력을 키우는 방안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