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유명무실 청원제도

[런치리포트]유명무실 청원제도

임상연 정영일 김태은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6.08.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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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국민 고충·민원 중요하다더니 청원제도는 '나몰라라'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김용태 의원 사무실에서 100번째로 열린 '민원의 날' 행사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등이 민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김용태 의원 사무실에서 100번째로 열린 '민원의 날' 행사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등이 민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하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의 ‘국회의원 부정청탁 예외조항’(제5조2항3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 청원제도를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 고충·민원 전달’이란 명분 아래 국회의원은 청탁금지법 적용에 예외를 뒀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인 민의전달창구인 청원제도는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사문화해서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 청원권을 보장하고,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전자청원제도 도입 등 청원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청원하면 뭐하나” 19대 청원실적 역대 최저=10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19대에 접수된 청원은 227건, 이중 국회에서 채택된 청원은 국립현충원 일본수종 제거, 울산 혁신도시 고가차도건설 반대 등 2건에 불과했다. 청원접수와 채택건수 모두 국회 청원통계가 공개된 지난 13대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국회 청원접수는 지난 16대 765건을 정점으로 17대 432건, 18대 272건으로 8년 만에 3분의 1토막으로 급감했고, 19대에선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청원접수는 큰 폭으로 줄었지만 처리실적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국회 채택과 불부의, 철회 등을 모두 포함한 청원 처리율은 지난 13대 64%가 넘었지만 19대 22%로 급감했다. 청원 10건 중 7건 이상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자동폐기 처분된 것이다.

국회 청원실적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정치권의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회법 및 국회청원심사규칙상 국회는 상임위원회 내에 청원심사소위원회를 두고 국민들의 청원을 처리할 의무가 있지만 임기 내내 청원심사소위를 한번도 열지 않는 상임위도 수두룩하다.

실례로 지난 19대에서 국회 안정행정위원회(43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청원이 접수됐던 법제사법위원회(32건)는 4년간 청원심사소위를 단 한차례도 열지 않았다. 이에 법사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처리하기 힘든 재판 관련 민원성 청원도 많고, 법안 심사로 바빠 청원심사소위를 개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처리하기 힘든 청원이라도 다른 안건들과 함께 청원심사소위에 상정해채택 및 부의 여부 등을 결정하고, 그 처리결과를 청원인에게 통보하는 등 법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회 한 고위관계자는 “회기를 거듭할수록 청원접수가 크게 줄고 있는 것은 청원을 접수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청원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사유를 면밀히 분석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음성적 민원전달 대신 청원제도 활성화해야”=1961년 제정된 청원법이 지난 55년 동안 단 세 차례 개정에 그친 것도 정치권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나마 세 번의 법 개정 중 의원입법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유일하게 개정안이 발의됐던 지난 19대 단 한차례에 그친다.

국회 청원심사 가이드라인인 국회청원심사규칙도 1984년 마련된 이후 지금까지 딱 한번(1995년 3월) 일부 개정작업을 거쳤을 뿐이다. 학계나 시민단체 등에서 청원제도를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회 차원에서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대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김경협, 이학영 의원 등이 청원제도 개선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된 채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민의수렴이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음성적 민원전달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청원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소개가 있어야만 청원이 가능한 현행 규정을 폐지하고, 해외 선진국처럼 전자청원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무기한 연장 가능한 청원 심사기간을 제한하는 방안과 청원접수부터 심사, 조사, 처리까지 전담할 수 있는 국회 내 특별기구를 설치하는 방안 등도 활성화 대책으로 거론된다.

이선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국회의원이 청원 처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의정활동 평가나 지역구 인지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이라며 “청원 문턱을 낮추는 것과 함께 국회의원의 청원 처리 활동을 내외부적으로 감시하고, 평가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대 첫 청원 '훈민정음 국보1호로' 어떻게 처리될까

청원은 국민이 정부에 어떠한 행정 처리를 요구하는 일을 말한다. 헌법 26조에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청원에 대해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원법에는 △피해의 구제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징계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그 밖에 국가기관 등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 등에 대해 청원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독일 연방하원의 청원위원회 포털.
↑독일 연방하원의 청원위원회 포털.

청원은 청원인의 성명과 주소를 기재하고 서명한 문서로 해야한다. 다수가 공동으로 청원을 할 때에는 처리결과를 통지받을 대표자(3인 이하)를 선임해 이를 청원서에 표시해야 한다. 필요한 때에는 참고자료를 첨부할 수 있다. 국회에 청원할 경우에는 국회의원의 청원소개의견서가 첨부돼야한다.

국회의장은 청원서가 일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청원서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청원이 접수됐을때 국회의장은 청원요지서를 작성해 각 의원에게 배부하고 청원서를 소관위원회에 회부해 심사케 해야한다. 국회가 채택한 청원으로서 정부에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의견서를 첨부해 정부에 이송한다. 정부는 이를 처리하고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해야한다.

국회 각 상임위별로 청원심사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 상황에 따라 3~7명의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청원심사소위원으로 활동중인 A의원실 보좌관은 "청원심사소위 활동에 따른 별도의 수당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는 13개 청원안이 접수된 상태다. 10일 현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6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3개의 청원안이 계류된 상태다. 외교통일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등에 1개의 청원안이 접수된 상태다.

20대 국회 1호 청원안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안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이 청원했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소개했다. 현재 국보1호 숭례문이 일제시대 조선총독이 지정한 것이라며 겨례의 얼이 서린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1호로 지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용산 화상 경마장 관련 청원도 4건 접수됐다. 용산 화상 경마장 인근 성심여중고 김율옥 교장수녀 등 1555명은 학교 인근 대형 사행행위장 설치 요건을 강화하는 학교보건법 개정안과 교육환경보호법 개정안, 사행산업통합감독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마권 장외발매소를 설치하거나 이전, 변경시 해당 시·군·구 거주 19세 이상 주민 과반의 찬성을 받도록하는 마사회법 개정안 입법청원도 내놓은 상태다.

19대 국회에서 처리된 청원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국립현충원 일본수종 제거' 청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심어져 있는 왜향나무와 노무라 단풍 등 일본 수종들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김영준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가 2013년 6월 대표 청원했다.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2014년 4월 처리가 됐고 같은 해 5월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 직후 정부에 이송됐지만 아직까지 정부 측의 처리 결과는 국회에 접수되지 않았다.

국민 청원은 '뒷전' 票되는 지역 민원엔 '올인'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민원인의 날'을 열고 있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청원소위원회가 개점휴업 상태인 것과 180도 다른 분위기다.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로 제도화된 청원 제도는 외면한 채 선거에 도움이 되는 지역 민원 처리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그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원 권력이 불투명하고 음성적인 방식으로 남용될 여지가 있어 일부에선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적용 예외에 반론도 있다.

◇"국회의원 전화 한통만"…민원과 청탁사이

"○○○○번 버스가 △△지구에서 직통으로 □□역에 정차합니다. 우리구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좀 열받는 일이네요. 가는 길에 정차만 하면 됩니다. 돈도 안드는 일이고 ◇◇교통공사에 부탁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민원의 달인'으로 불리는 한 국회의원 앞으로 이 같은 지역구민의 민원이 올라왔다. 해당 국회의원 측은 버스정류장 증설 문제는 간단히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말씀하신 대로 적극 알아보려 한다"며 민원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냈다.

이 민원대로 국회의원이 ◇◇교통공사 혹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번 버스 노선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거나 추가 정차를 제안했다고 가정해보자. 국회의원은 각종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예산 심사를 담당한다. 국회에 '돈줄'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국회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위원이라면 그 영향력은 직접적이다. 국회의원의 의견 전달과 제안·건의가 단순한 민원 처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 구청장이나 군수 등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회의원들이 의견이나 건의 사항으로 전달한다 하더라도 해당 관청이나 기관들에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국회의원실에는 지역 건설사 등이 보낸 입찰 자료가 들어있는 서류 봉투가 전달돼 공사를 발주한 부처나 공기업에 전화 한번 넣어달라는 요청이 수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국회의원의 전화 한통이 청탁 이상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의원에게 직접 연락이 오는 민원은 통상 정상적인 절차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결국 국회의원의 권력을 이용해 음성적으로 해결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너도나도 '민원인의 날'…공익성 여부 '갸웃'

대가성이 없고 공익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이 선거를 의식해 민원 처리를 빙자한 권한 남용이 적절하게 제한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2010년 시작한 '민원인의 날' 행사는 19대 국회를 거쳐 20대 국회에 이르러 보편화됐다. 김용태 의원이 야당 텃밭에서 3선 수성에 성공하자 다음 선거를 대비하고자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민원 행사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지역민들로부터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려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거를 염두에 두고 민원 처리에 '올인'하게 되는 본말전도 현상도 종종 나타난다.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 일원이 기초 의원 수준의 민원 해결사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도록 채용된 의원 보좌진들이 국회의원 개인의 지역구 관리나 표 밭 다지기에 소모되는 경향도 강해진다. 한정택 서강대 교수가 연구조사한 '18대 국회 의정활동 평가; 원외활동 평가 모델의 탐색'에 따르면 4급 보좌관들을 심층 면접한 결과 1주일에 7일, 즉 매일 국회 밖, 주로 지역구 활동에 시간을 투자한다고 답했다. 원내 활동과 원외 활동의 비율에 대해서는 평균적으로 원내 활동에 30%, 원외 활동에 70%의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외 활동의 대부분은 지역구 유권자들을 만나고 이들의 민원 처리에 소요된다.

이 같은 배경에는 국회의원에 재선되기 위해서는 지역구 관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지역의 한 중진 국회의원 보좌관은 "민원 처리 요청이 들어오는 것 중 실제 의원실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국회의원이 지역구 이슈와 지역민들에게 신경쓰고 있다는 '어필'로 봐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거용 건물서 흡연 제한하자" 獨 전자청원제도 어떻게?

지난 6월 29일 독일 연방하원의 전자청원 사이트에는 주거용 건물에서 흡연을 제한하도록 하는 법안에 대한 청원이 올라왔다. 4주 간 5만명이 이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면 연방하원 청원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이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다. 청원자는 공청회에 참석해 이 법안의 필요성을 직접 설명할 수도 있다.

독일 연방하원은 2005년 9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전자청원제도를 시행했다. 시행 후 4000건 이상의 전자청원이 제안됐으며 이 가운데 5만명 이상이 동의한 5~6개의 청원이 의회에서 다뤄졌다. 5만명의 서명을 얻지못해도 안건에 따라 청원위원회 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의회에 상정된다.

독일은 '누구나 의회에 청원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 기본법 17조에 따라 전자청원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쉽게 청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익명 청원도 가능하며 청원자의 진술과 시민 참여 기회를 보장한 것이 특징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청원 안건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게 했다.

청원위원회는 이렇게 상정된 청원 안건에 대해 매달 본회의에서 처리 상황을 보고하고 연간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청원 안건이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폐기될 가능성이 낮다.

스코틀랜드 의회도 1999년부터 전자청원제도(e-petition)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적극 운영하고 있다. 1707년 폐지됐던 스코틀랜드 의회를 재구성하면서 공개·접근·참여의 3대 원칙을 실현하는 차원이다. 에딘버러나피어 대학 내에 전자민주주의 센터(International Democracy Center, ITC)를 설립하고 청원이 종이문서와 전자문서로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규정을 개정했다.

독일 의회와 마찬가지로 청원자가 게시를 원할 경우 청원 내용이 일정 기간 사이트에 게시되며 그동안 지지 서명과 찬반 토론이 이뤄져 보다 많은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의회는 의원을 통한 제출과 함께 직접 제출이 가능하며 스코틀랜드 의회는 의원 소개 절차를 아예 요구하지 않는다. 영국 하원의 경우 청원의 공식적 제출방식 외에 의원 개인이 청원서를 보관함에 투입하는 방식의 비공식적 제출방식이 인정되는 독특한 관행이 있다.

한편 프랑스 의회의 경우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위원회가 정부에 대한 청원 이송을 결정할 수 있고 정부로부터의 답변을 청원인에게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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