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세', 10년 동안 자연과학 연구하며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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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2시. 민학기 씨의 세 식구는 건국대에서 매주 열리는 ‘특별한 뇌과학 강좌’에 참가해 강의를 듣는다. 지난해 9월 초부터 듣기 시작한 강의로 사람의 생각, 감정, 운동, 기억, 언어 등을 가능케 하는 두뇌의 실체를 알기 위해 뇌의 발생과 진화 과정을 다룬다.
5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강의에선 칠판 판서를 베껴 그리는 것만으로도 일이다. 두 번 갈아엎어지는 칠판 판서 내용을 옮겨 적다 보면 A4용지 10쪽 분량은 가뿐히 나온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사람들이 우르르 칠판 앞으로 몰려 내려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못다 적은 내용을 기록한다. 못 알아듣는 소리로 넘쳐나는 강의지만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즐거움에 공부를 멈출 수 없다. 이곳 강의실은 민 씨 가족과 비슷한 열망으로 넘치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이다.
박자세.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을 줄인 말이다. 인간의 의식을 포함한 137억 년 우주의 진화 전체를 통합해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습 단체이자 자연과학 문화운동 단체다. 이곳에선 137억 년 우주의 진화, 특별한 뇌과학에 관한 강의 내용을 암기해 발표하거나 뇌과학 교과서를 선정해 함께 학습한다. 최근엔 논문 발표도 이뤄졌다. 2009년부터는 그동안의 뇌과학 공부를 바탕으로 뇌, 인지과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박자세’ 뇌과학 심포지엄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답사를 통해 강의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지식을 탐구하기도 한다.
설명만 들으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과학과 멀어진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나 버거운 모임이다. 하지만 이 모임에는 전공자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수두룩하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강의에서 알아듣는 말이 절반도 채 안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칠판 내용을 받아 적고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 모임에 참여하기 위한 열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고, 베트남에서 매주 와서 강의를 듣는 이도 있다.

비행기 타고 날아와 강의 듣는 열정
이 유별난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문호 박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자연과학 공부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박자세가 주창하는 자연과학 문화운동은 어렵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박 박사의 전공 역시 물리학이나 과학철학이 아니다. 그는 반도체 연구로 학위를 받은 전자공학도 출신이다. 왜 자연과학이냐는 우문에 박 박사는 “자연에서 사는 사람이 자연을 공부하는 게 뭐가 이상하느냐”고 반문한다.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별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관심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자연과학 공부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자연과학에 미친 집단, 박자세
그에 따르면 박자세는 ‘자연과학에 미친 집단’이다. 그동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자연과학은 등한시됐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스스로 나서서 미치겠다는 얘기다. 그는 읽어서 쉽게 이해되는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자연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자연과학 공부를 하면 자신이 지금껏 알고 있는 것들에 ‘속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사막이나 별을 체험하거나 양자역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엔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 박테리아 등 다른 생명체도 많이 있다. 사람의 일생은 이것들을 모르고 죽느냐, 의미를 알고 죽느냐의 차이다.”
박자세에서는 종교나 정치 관련 논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자연과학만 공부한다. 일반인이 대학·연구소 수준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교수와 일반인이 어우러져서 학문을 탐구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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