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년은 2054년, 입사 동기와는 13살 차이

내 정년은 2054년, 입사 동기와는 13살 차이

이현수 기자
2013.05.03 06:15

[Beyond 혁신경제] 한국석유공사 한상호씨

한상호씨(19)는 올해 수원공고를 졸업하고 석유공사에 취직했다. 그는 "학력별로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나뉘지 않는다. 오히려 고졸이기때문에, 같은 또래들이 대학 다닐 동안 경력을 쌓고 실무에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상호씨(19)는 올해 수원공고를 졸업하고 석유공사에 취직했다. 그는 "학력별로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나뉘지 않는다. 오히려 고졸이기때문에, 같은 또래들이 대학 다닐 동안 경력을 쌓고 실무에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8세에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했다. 입사 동기는 31살이다. 정년은 2054년. 앞으로 41년이 남았다. 올 초 수원공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석유공사에 취직한 한상호씨의 얘기다.

한씨는 입사 후 평택지사에 발령받았다. 석유공사 평택지사는 서해 평택항에 인접해있다. 그가 안전모를 벗으니 봄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 드러났다. 오전 내내 현장에 있다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청자켓과 청바지, 작업화가 현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줬다.

"바다에서 근무를 해서 좋아요. 친구들은 대학 강의실에 있을 텐데, 저는 먼저 산업 현장에 나와 직접 만지고 경험하는 거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입사 동기들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똑같이 연수받았어요. 대학은 군에 다녀와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대학 대신 선택한 '현장'

한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수원공고를 택했다. 수학과목에선 한번도 1등급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에도 소질을 보였지만,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마음을 굳혔다.

"아버지도 수원공고를 졸업하고 현재는 판금 일을 하고 계세요. 영향을 많이 받았죠. 기술을 배우는 게 중요하고, 남의 눈에 비춰지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일러주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공고에 가는 걸 반대하셨지만, 아버지가 설득해주셨습니다."

공고에 입학한 후에는 기계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생활 내내 용접, 선반, 밀링, 캐드 같은 기술을 배웠다. 성적이 좋아 고교시절 내내 전교 1등을 유지했다. 그 탓에 고 3때는 다시 대학과 취업의 갈림길에 서야했다. 전교 1등인 한씨에게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권유했다. 공대로 가서 더 배운 뒤 꿈을 펼치라는 조언이었다.

"공고에서도 대학에 가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교무실로 저를 불러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권유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옆 자리에서 다른 학생이 상담하는 얘길 우연히 듣게 됐어요. 석유공사에서 학교로 지원서를 보냈다는 얘기였습니다. 귀가 번쩍 뜨였어요. 제가 당장 지원하겠다고 했고, 마감 하루 전날 지원 서류를 챙겨서 접수를 하게 됐습니다."

한씨는 고3 5월에 석유공사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평택지사에서 5개월 간 인턴생활을 한 뒤, 지난해 말 최종합격에 이름을 올렸다.

◇"대졸보다 낫습니다"

한씨가 석유공사에서 하는 일은 입출항 업무다. LPG가스를 실은 유조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배를 접안하고 배관을 연결해서 가스를 육상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로딩암(지상탱크와 선박탱크를 잇는 파이프 설비)을 운전하는 게 가장 보람되고 재밌어요. 배에 실린 가스가 파이프 배관을 통해서 비축기지로 옮겨지는 거예요. 통제실에서 펌프를 가동하고 밸브를 여는 작업도 같이 하죠. 오늘은 월간 점검 차 펌프 가동을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LPG같은 경우 겨울철에 수요가 많기 때문에, 9월부터 배가 많이 들어올 것 같아요."

자체 작업도 한씨의 몫이다. 파손된 기물을 용접으로 붙이는 작업이다. "외주를 주면 돈을 더 쓰게 되니까 제가 자체적으로 용접하는 거예요. 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내용이라 따로 배울 필요가 없어요. 용접으로 받침대를 만들 때도 있고요. 기물이 망가진 부분을 붙이고 유지 보수 하는 차원입니다."

평택지사 관계자는 "한씨는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나와서 현장 적응이 빠르다"고 흡족해했다. 그는 "대학을 나온 사원들은 용접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야한다"며 "고졸 사원들은 이미 다 배워왔기 때문에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고, 그러다보니 현장 적응도 빠른 편"이라고 덧붙였다.

용접뿐만 아니라 도면 수정작업 역시 한씨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웠던 기술이다. "전 시설물이 다 도면화돼 있는데, 수정할 때 기술이 필요한 거죠. 헤드 등을 간단히 작업할 때, 배웠던 게 있어서 수월한 편입니다."

◇가족 대학 등록금도 척척

한씨는 고졸 사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시간'을 꼽았다.

"대졸 사원들하고 같이 연수받을 때 많이 느꼈어요. 대졸 분들은 28, 29세니까요. 평택지사에 있는 동기는 33살이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일찍 들어왔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에게선 '대단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고 했다. "대학생활 안 하고 바로 취업하니까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얘기도 하지만, 돈도 벌고 사회경험도 쌓으니 친구들이 부러워하기도 해요.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데요, 저는 공사에서 월급을 받으니까요. 가족들에게 선물도 하게 되고요. 지금은 용돈 쓰고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하고 있습니다."

한씨는 올해 대학 2학년 1학기에 접어드는 형의 등록금도 마련해줬다. "첫 월급 타서 아버지는 등산복, 어머니에게는 가방, 형에게는 노트북을 선물했어요. 가족들이 행복한 게 좋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받는 차별이 두려워 특성화고 진학을 꺼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사해보니 차별은 없어요. 일하는 데 있어서 학력별로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나뉘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고졸이기때문에, 같은 또래들이 대학 다닐 동안 저는 경력을 쌓고 실무에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씨는 내년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취업을 결정짓고 군생활을 하는 셈이다. "군대 다녀와서 다시 일을 하게 되겠죠. 10년 뒤엔 서른 살인데, 공사 감독이 돼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로딩암 시설점검이나 히터 쪽 공사를 하는 일인데 그 땐 막내를 벗어나겠죠? 나이가 어리더라도 경력은 10년이니까 나름대로 책임감도 가지고 주도적으로는 이끌어갈 수 있을 것도 같고요. 더 시간이 지나면 해외 가스전, 해외 광구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씨의 카카오톡 배경엔 "하고싶다는 생각만으론 할 수 없다. 노력은 누구나가 하는 것이다. 간절히 원한다면 움직여라. 그러면 이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라는 글귀가 써져있다. 주어진 틀에서 노력만 하기보다, 움직이고, 틀을 깨고, 방향을 정하면 결국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몸소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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