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한국 문화재 '관리소홀' 문제 부각…"지자체아닌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인증마크 획득을 위한 전시행정인가, 아니면 진정한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가치창출인가.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불국사, 종묘, 창덕궁, 남한산성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유형) 등재 문화재들이다. 등재 문화재는 세계에 널리 알리고 ‘보호할’ 가치가 높다는 인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각 국이 ‘인증마크’ 획득을 위한 각축전을 벌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11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고,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서원, 한양도성 등 17곳이 앞으로 등재 잠정 목록에 올라와 있다. 27일 오후 프랑스에선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무형) 등재 심사를 앞두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유산들이 갈수록 ‘세계적 공인’을 받고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관리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나 ‘등재 만을 위한 등재’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등재 이후 정작 문화재 보호와 관리는 소홀해지고 있다”며 “등재 문화재를 관광도구로 이용해 경제적 이득에만 몰두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 ‘인증마크’ 획득한 문화재조차 관리 허술…관광객 모으기에 ‘급급’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은 최근 엄청난 수의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올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관람객이 69%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남한산성을 찾은 사람은 총 140만9290명(하루 평균 1만 1458명)으로 집계됐다.
방문객수는 늘었지만 관리는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안전도 특별점검에서 천장 균열, 기둥 옹이 탈락, 여담 균열 및 파손 등 보수정비가 필요한 ‘E등급’이 나왔다.
앞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 인천 강화 고인돌을 비롯해 김포 문수산성, 청주 상당산성 등 문화재 곳곳에서 균열, 침하 현상이 나타나는 등 문화재 사후 관리 및 운영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인증마크를 단 세계유산도 관리와 운영이 부실한데, 우리의 숨은 문화재들은 말할 것도 없다며 정비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0월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남한산성 부실 관리는 문화재 복원작업의 연속성 부재와 최저입찰제도에서 비롯됐다”며 “세계문화유산의 복원과 수리는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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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평우 문화재전문위원은 “세계유산 추가 등재에 열을 올리기 전에 문화재를 제대로 보호하고자 하는 정부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각국의 ‘각축전’…경쟁 치열한 이유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을 발굴 및 보호하자는 취지로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생겨났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은 전 세계 161개국 1007곳에 이른다.
등재 문화재 1007곳을 살펴보면 서양 국가들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이탈리아 50곳, 중국 47곳, 스페인 44곳, 독일·프랑스 각 39곳으로 상위 5개국이 전체 유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과시하는 중국은 자국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2006년부터 약 100억 위안(약 1조 6200억 원)을 들여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대운하를 복원해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문화재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인증마크가 붙으면 다양한 이익이 발생한다. 국가 및 지역 공동체의 자긍심이 올라가고 세계적으로 보호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라는 인식이 생기며, 무엇보다 방문객 증가에 따른 경제 활성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왜곡 역사 포장용과 원조 논쟁…한·중·일 ‘정치적 기싸움’

세계유산 등재는 이웃 국가 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역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한·중·일 3국이 등재 과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인 강제징용자 4700명이 착취당한 나가사키 조선소와 한국인 122명이 목숨을 잃은 해저탄광이 위치한 하시마를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에게는 근대 유물이지만 한국에게는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등재의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한·중·일은 인류무형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 부문에서도 ‘원조 논쟁’을 벌이며 갈등하고 있다. 한·중간에는 단오제, 아리랑, 온돌 등을 놓고, 한·일간에는 해녀(海女)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은 일본의 역사 도발에 맞서 위안부, 난징대학살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했으며 한국은 위안부 관련 증언기록을 등재 추진할 예정이다.
양희제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초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국가 브랜드 상승 효과가 나타나면서 각국이 등재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치적 의미로 접근하기 보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존한다는 본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표심 공약 ‘자제’하고 국민적 관심 높여야

국내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열풍이 거세진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너도나도 “지역 내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공약을 남발하기 때문.
지난 6월 지방 선거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였던 김황식 전 총리는 서울 사대문 안 전체를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으며 재선에 도전한 박원순 시장은 한양도성이 세계유산 잠재목록에 올라간 것을 주요 업적으로 꼽았다.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한 정병국 의원도 비무장지대(DMZ)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겠다고 공언했다.
문화산업 한 관계자는 “선거에 등재 구호가 많이 쓰이는 것은 지역 인지도 상승에 따라 ‘표심’을 쉽게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전문가는 등재 문화재가 관광자원화했을 때 얻는 자금을 유산을 보호하는 기반 구축에 사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연대 우리역사바로알기 허필열 사무국장은 “유네스코 등재유산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며 “문화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자체를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