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봄에 삼성과 LG는 그룹 최고위급 차원에서 담합 근절을 선언했다. 앞으로 담합에 관여하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인사 조치까지 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과 LG소속 계열사들은 거의 매년 담합 행위로 적발되어 오고 있었지만 그동안 담합 근절을 선언한 적은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없다. 그랬던 삼성과 LG가 올 들어 담합 근절을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소비자단체는 올해부터 기업의 위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소비자들을 모집해 집단적으로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소비자소송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들의 이율담합 건과 전자제품회사들의 가전제품 가격담합 건 등 2건에 대해서 이미 소송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연초에 그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삼성과 LG가 담합 근절을 선언한 것은 그런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삼성과 LG는 소비자 소송이 활성화될 경우 피해 소비자들에 대한 막대한 손해배상 이외에 무엇보다도 앞으로 담합할 경우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스스로 담합 근절을 선언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집단적인 소송을 통해 자신들이 시장의 주인이라는 점을 기업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단순히 자신들의 피해를 구제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삼성과 LG의 담합 근절 선언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보다 근원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소비자소송 지원 이외에 올해는 소비자단체, 소비자원, 그리고 정부가 협력해 경쟁상품간의 가격과 품질을 종합적으로 비교한 정보나 유통 단계별·채널별 가격정보를 생산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주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등산화·변액연금보험·어린이음료·무선 전기주전자를 대상으로 가격·품질 비교정보가 제공됐고 유모차·전기다리미·후라이팬·위스키 품목에서 수입제품들을 대상으로 유통 단계별·채널별 가격정보가 제공됐다.
고가의 수입 유모차를 대상으로 국내 소비자 가격이 외국에 비해 적게는 1.3배에서 많게는 2.2배까지 비싸다는 정보가 제공된 후, 한 달 정도가 경과해 수입업체들은 해당 제품의 가격을 10%에서 14%까지 인하했다.
등산화 품목에 대한 비교정보가 발표된 당일 그 정보를 수록한 매체인 ‘스마트컨슈머’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접속자수가 3만 명에 달해 스마트컨슈머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정보제공 후 추천제품의 매출액이 약 2.4배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변액연금보험 상품을 대상으로 한 수익률 비교정보의 제공은 금융 분야에 존재하는 정보비대칭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소비자들의 구매선택에 유용한 정보가 보다 알기 쉬운 형태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금융당국도 그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금융상품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지난주에 발표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구매선택을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해봤자 기업이 행한 광고가 고작이었다. 광고의 경우 기업에게 유리한 정보만 담기기 마련이어서 소비자가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정보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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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비교정보나 유통 단계별·채널별 가격정보가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제품의 구매선택을 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소비자에 대한 정보제공이 활성화되면서 앞으로 기업들은 같은 품질이라면 보다 싸게, 같은 가격이라면 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해야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이 기업들을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의 장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