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주 52시간제 특례 논의가 노사간 사회적 대화의 진통 속에서도 입법 단계로 넘어갔다. 산업계와 산업통상부가 연구개발(R&D) 인력의 근로시간 유연화 필요성을 강조해 온 가운데 여당이 노동특례를 담은 초광역특구법을 발의하면서다. 노사 간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초광역특구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근로시간 제도 개선 논의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지방주도 성장을 위한 초광역권 전략산업 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은 노동특례를 제외한 별도 법안도 발의하고 두 법안을 병합 심사해 최종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산업계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반도체 R&D의 특성이 있다. 공정 개선과 제품 검증은 업무가 특정 시기에 집중될 수 있어 필요한 시점에 인력을 투입해야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7월 국가첨단전략기술 분야 기업 468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0.6%가 특구에 필요한 노동 규제 특례로 R&D 인력 근로시간 유연화(화이트칼라 이그젬션)를 꼽았다.
산업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8월6일 관훈토론회에서 "주52시간제는 손을 봐야 한다"며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근로시간 유연화 필요성을 밝혔다. 초광역특구가 투자 유치를 넘어 연구개발과 기술 사업화 성과로 이어지려면 산업 특성을 반영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는 호남 반도체 산단의 성공적인 추진과도 맞닿아 있다. 부지와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확보뿐 아니라 연구개발 인력을 적기에 투입할 수 있는 여건도 기업의 투자와 기술 개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특구 지정과 투자 지원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할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고용노동부는 특례 도입 여부를 사회적 대화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메가특구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과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제안으로 지난 9월 시작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이날 5차 실무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노동부는 노사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대화가 이어지는 것과 합의에 이르는 것은 별개다. 양대노총은 여당의 특례 법안 발의를 비판하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앞에서는 사회적 대화와 협치를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노동계와 협의도 끝나지 않은 노동특례 입법을 추진하는 건 이중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노사정 회의가 수차례 거듭됐지만 특례 도입을 둘러싼 핵심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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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국회 심사에서는 특례 적용 대상을 핵심 R&D 인력이나 고소득 전문직 등으로 한정할지, 추가 근로 보상과 건강권 보호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가 쟁점이다. 초광역특구가 호남 반도체 산단을 비롯한 첨단산업의 투자와 기술 개발 거점으로 자리 잡으려면 산업 현장에 필요한 근로시간 유연성과 노동자 보호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특례 도입 가능성은 높다는 판단이다. 정부도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