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최대훈과 즉흥 연기…서로 믿었기에 가능"
"내 수다가 누군가에게 위로라니…일상에서도 보답하고파"
"식당서 사인해주겠다고 말했다가 '왜요?' 소리 듣기도"

배우 윤경호는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이다. 서글서글한 웃음도, 사람을 향한 관심도, 솟구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함도 화면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무엇보다 정말 말이 많다. '연예계 대표 수다쟁이'답게 아이즈(IZE)와 인터뷰 역시 예정된 시간을 20분 넘겨서야 끝났다. 말이 많아도, 아니 말이 많아 더 사랑스러웠다.
지난 25일 종영한 SBS 금토 드라마 '김부장'은 전국 시청률 최고 23.1%를 기록하며 2026년 미니시리즈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윤경호는 과거 '전장의 신'으로 불렸던 비밀 요원이자 현재는 딸밖에 모르는 아버지 박진철을 연기했다. 위기에서도 멈추지 않는 수다와 묵직한 액션을 오가며 작품의 웃음과 타격감을 동시에 책임졌다.
뜨거웠던 시간을 모두 마친 윤경호는 마지막이라는 말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인터뷰 답변 도중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인 그는 "인터뷰 매 타임마다 혼자 웃었다가 울었다가 모노드라마를 찍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놀라운 시청률까지 경험하고 나니 마지막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아요. 내려놓고 차분해지려고 하는데도 먹먹하네요. 방송 끝나고서는 일부러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다시 아빠이자 남편으로 돌아가 제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었죠.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저를 교만하게 만들지 않도록 성찰하려고 합니다."

윤경호에게 최근 1년은 쉼 없이 정상으로 치솟은 시간이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한유림으로 '유림핑'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사랑받았고, 영화 '좀비딸'과 예능 '핑계고',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거쳐 '김부장'까지 연달아 흥행했다. 그는 이 과정을 세 단계의 감정 변화로 설명했다.
"'중증외상센터' 때는 마냥 신났어요. 차태현 선배도 한유림을 인생 캐릭터라고 해주셨고 사람들이 제게 호감을 느껴준다는 사실이 신기했죠. 이후 '좀비딸'과 '핑계고'가 잘됐을 때는 불안했어요. 다른 곳에 가서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싶어 몸을 사리기도 했고요. '취사병 전설이 되다'와 '김부장'까지 사랑받으니 이제는 다시 제로베이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이어 선보인 코믹한 이미지가 진지한 연기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다. 그러나 윤경호는 유쾌함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삼고 그 안에 슬픔과 공포, 분노를 녹이는 방향을 찾았다. 이미지 고착을 걱정하기보다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적 동력이 생겼다고 받아들였다.
독자들의 PICK!
'김부장'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소지섭, 최대훈과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소지섭과는 앞서 두 작품에서 만났고, 동갑내기 최대훈과는 자녀끼리도 어울릴 만큼 가까운 사이다. 윤경호는 "소지섭, 최대훈, 윤경호가 한자리에 있다는 그림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셋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면 어떤 장면이 나올까 싶어 굉장히 흥분됐다. 실제로 고깃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찍을 때 정말 설렜다"고 말했다.

다만 원작 웹툰에서 박진철은 압도적인 피지컬과 전투력을 지닌 최강자로 그려진다. 주변의 기대도 상당했다. 윤경호는 친한 친구의 아들로부터 "삼촌이 박진철이에요? 제일 센 캐릭터니까 진짜 잘해야 해요"라는 말을 듣고 긴장감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원작의 체격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만 매달리는 대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박진철을 찾았다. 평소에는 수다스럽고 친근한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예상보다 훨씬 강한 이른바 '힘숨찐' 캐릭터로 방향을 잡았다. 무술팀에는 액션만큼은 최상의 수준으로 보이고 싶다고 먼저 요청해 강도 높은 훈련도 이어갔다.
"조인성 씨가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조건에 똑같이 최악으로 맞서지 말고 차악으로 맞서라'고 해줬던 말이 떠올랐어요. 원작처럼 피지컬을 키울 수도 없고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 장점을 녹였죠. 기본값은 친근한 아저씨로 낮추되 액션에서는 진한 타격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세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할지 알 수 없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윤경호는 소지섭, 최대훈과 함께한 현장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내비쳤다. 세 사람은 카메라 안팎으로 끊임없이 서로의 장점을 나눴고 아이디어를 교류했다. 탄탄하게 쌓인 신뢰 덕에 현장에서는 즉흥 연기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윤경호는 계산만으로 만들 수 없는 호흡이었다며 모든 장면의 바탕에는 서로를 향한 믿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윤경호는 계산만으로 만들 수 없는 호흡이었다며 모든 장면의 바탕에는 서로를 향한 신뢰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많은 배우와 호흡했지만 이렇게 애드리브로 길게 달려본 적은 처음이에요. 세 사람 모두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한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더 오래된 우정처럼 보일까', '민지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를 계속 고민했죠. 즉석에서 아이디어가 절묘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서로를 믿었기 때문이에요. 작품이 끝난 지금 가장 아쉬운 것도 그 두 사람이 그립다는 겁니다. 셋이 함께 신나게 놀았던 현장이 정말 그리워요."

윤경호의 수다는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도구다. 그렇다고 언제나 말이 많은 것은 아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장면을 두고 고민이 깊을 때는 조용히 있고 싶다고 주변에 솔직하게 밝힌다. 다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분장실에서 스몰 토크를 나누고 리허설에서 애드리브를 주고받으며 입과 몸을 함께 푼다. 그때 수다가 연기의 에너지로 바뀐다.
"머릿속에 산발적인 생각이 많아서 신나게 풀릴 때도 있고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 때도 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제는 '사실 늘 말이 많은 건 아니다. 오늘은 조용히 있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그래도 슛이 들어가면 최상의 컨디션을 내야 하니까 분장실에서부터 스몰 토크를 시작합니다.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애드리브를 주고받다 보면 제 수다가 비로소 터져요."
그런 윤경호가 시청률 13% 돌파 공약으로 선택한 것은 13시간 묵언수행이었다. 방송 2회 만에 시청률이 13%를 넘어서자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침묵의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시청자에게 재미있게 전달할지 소속사 직원들과 진지하게 회의했다. 막상 공약을 이행하는 날에는 동료와 제작진이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결국 네 차례 입을 열어 수행 시간이 20분 늘어났다.
"그날 진행한 팬사인회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저를 보기 위해 멀리서 와주셨다는 사실이 정말 뭉클했어요. 묵언수행이 풀리고 팬분들이 주신 편지를 집에서 한 자 한 자 소리 내 읽었는데 정말 벅차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제 수다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제가 유명인으로서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는데, 작품 속 모습뿐 아니라 일상에서 툭툭 건네는 말로도 무언가를 드리고 싶더라고요. 그럴 수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윤경호의 선한 오지랖은 웃픈 굴욕담을 낳기도 했다. 식당에서 열심히 서방을 해주던 직원에게 감사의 의미로 사인을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가 "왜요?"라는 답을 들었다고.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았다며 누군가에게 즉석에서 보답하는 순간이면 혼자만의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라고 웃었다.
오랜 무명과 수많은 단역·조연을 거친 시간은 윤경호의 연기 안에 보이지 않는 보따리처럼 쌓였다. 당시에는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감정과 사투리, 삶의 희로애락이 지금의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재료가 됐다. 딸을 향한 박진철의 감정에도 실제 딸을 둔 아버지로서 마음과 개인적으로 겪은 상실의 기억이 함께 녹아들었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참여한 작품도 13편에 달한다. 윤경호는 "휘몰아치는 태풍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고 표현했다. 하남에 사는 자신을 데려다주기 위해 인천에서 오가던 매니저의 다크서클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며 주변 사람들의 헌신에도 감사를 전했다. 이제는 욕심을 조금 줄이고 주어진 작품에 쓸 에너지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주에 원래 바빠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서 바쁘고, 바빠야 불안하지 않아 계속 무언가를 찾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생 캐릭터를 골라달라는 질문에는 메뉴 하나도 쉽게 정하지 못한다며 난감해했다. 한 역할을 선택하면 다른 캐릭터들이 서운해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다만 이날 하루만 놓고 본다면 박진철이라고 답했다. '김부장'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더 강하고 단단해진 몸으로 돌아와 자동차 선루프를 가볍게 넘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며 박진철의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