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교사→'기리고' 무당→'결혼의 완성' 납치범
올해만 세 작품, 매번 얼굴 갈아 끼우며 강렬 존재감

올해 배우 이상희가 연기한 세 인물은 닮은 점이 없다. 넷플릭스 '참교육'에서는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책임을 놓지 않는 교사였고, '기리고'에서는 딸을 살리기 위해 신에게 매달리는 애석한 무당이었다.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KBS2 '결혼의 완성'에서는 잔혹함과 절박함이 뒤엉킨 납치범이다.
이 세 작품의 크레디트에는 모두 이상희가 적혔지만 화면 속 인물들은 좀처럼 한 배우로 포개지지 않는다. 단순히 머리 모양과 옷차림이 달라서가 아니다. 인물의 내면부터 말투와 분위기까지 모두 달리해 얼굴 자체를 갈아 끼운 결과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낙차를 보여주는 인물은 '결혼의 완성' 김경애다. 안도를 경악으로, 경악을 감탄으로 바꾼 소름 돋는 열연을 펼치며 말이다.
김경애가 처음 등장한 6회는 이상희의 진가를 단번에 보여줬다. 납치범 노만희(김대명)에게서 탈출한 고세윤(이설)을 차에 태운 그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뭐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라며 다정하게 안심시켰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수면 스프레이를 뿌려 세윤을 다시 기절시켰다.

김경애는 납치범 노만희의 아내이자 고세윤 감금에 가담한 공범이다. 옆방의 피해자 이선자로 위장해 세윤의 경계심을 허문 뒤 탈출한 그의 앞에 구조자로 다시 나타날 만큼 치밀한 인물이다. 이상희는 피해자와 납치범의 얼굴을 순식간에 갈아 끼우며 등장과 동시에 극의 판도를 뒤집었다.
특히 노만희와 얽힌 사연은 김경애의 또 다른 얼굴을 끌어냈다. 김경애는 과거 빚쟁이에게 폭행당하던 자신을 구하려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노만희를 지키기 위해 그의 자수를 막고 사건을 덮었다. 사랑과 죄책감, 집착으로 얽힌 괴랄한 부부의 요상한 순애보는 이상희의 연기를 만나 묘한 설득력을 얻었다. 무섭고도 로맨틱한 살인범 부부의 멜로까지 완성하며 작품에 다단한 재미를 불어넣었다.
이처럼 이상희는 잔혹함과 절박함, 사랑과 광기가 뒤엉킨 김경애를 폭넓은 연기로 소화했다. 구수한 사투리와 다정한 말투로 친근함을 자아내다가도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에는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광기를 폭발시켰다. 생활 연기부터 격렬한 감정 폭발까지 거침없이 오가는 넓은 진폭이 김경애를 단순한 악역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올 한 해에만 '참교육'의 정선영, '기리고'의 업순, '결혼의 완성'의 김경애까지 세 번이나 얼굴을 갈아 낀 이상희. 상처를 묵묵히 받아내는 교사부터 신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무당, 타인을 위협하고 몰아붙이는 납치범까지. 모두 같은 사람이 연기한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매번 이전 얼굴을 완전히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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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자신의 존재감보다 캐릭터를 먼저 남기는 이상희는 지금 단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분량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등장하는 순간 장면의 공기를 바꾸고, 자신이 맡은 인물이 서사에 필요한 이유를 연기로 납득시킨다.
그래서 크레디트에서 이상희의 이름을 발견하면 이번에는 어떤 얼굴로 나타날지부터 궁금해진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인물로 전작의 자신을 지우고 '같은 배우가 맞나'라는 감탄을 끌어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