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살' 등 카운슬러 예능서 독보적 존재감
깊은 통찰력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솔루션 제공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어디서든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울 것 같은 이미지. 고전부터 이렇게 아낌없이 주는 사람의 모습은 미국 소설가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라는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그런데 2026년 방송가에는 ‘엄청 큰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모습은 ‘키다리 아저씨’ 그 자체지만 만만치 않은 독설과 단호함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상대를 향한 뭉근한 애정도 숨어있다. 서장훈의 이야기다.
관찰 카메라를 통해 무언가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정적이든 이성적이든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솔루션 예능’ ‘카운슬링 예능’ 등으로 칭한다면, 서장훈은 그중에서 가장 앞줄에 있다. 그의 행보가 가치를 말해준다.
2019년 3월부터 시작된 KBS Joy의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벌써 7년을 넘겼다. 2024년 8월 막을 연 JTBC ‘이혼숙려캠프’는 2년을 이제 넘긴다. JTBC가 안팎의 어려움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지만 ‘이혼숙려캠프’의 변동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올해에만 두 개의 ‘카운슬링 예능’에 추가로 합류했다. 지난 6월23일 방송을 시작한 JTBC ‘연애전쟁’과 내년 1월 방송되는 tvN STORY의 ‘상속전야’(가제)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이 매주 월요일 방송이고, ‘연애전쟁’이 매주 화요일 저녁, ‘이혼숙려캠프’가 매주 목요일이므로 시청자들은 매주 월, 화, 목요일 3일은 서장훈의 ‘잔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에 토요일 JTBC ‘아는 형님’, 일요일 SBS ‘미운 우리 새끼’ 거기다 수요일 방송하는 EBS와 E채널 공동제작인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를 합치면 금요일을 빼놓고는 일주일에 매일을 서장훈과 만날 수 있다. 일주일에 6일을 나온다는 말은 형식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전성기 유재석이나 강호동도 쉽지 않은 스케줄이다.
서장훈에게는 강호동의 카리스마와 리더십, 유재석의 부드러움과 친근함이 없지만, 방송가가 그를 찾는 이유는 확실하다. 바로 깊은 통찰력과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화술이 있기 때문이다. 서장훈은 강호동에 비해 좌중을 감정적으로 후려잡지는 못하지만, 분석과 논리가 있다. 유재석처럼 친근하거나 부드럽지 않지만 말 안에 숨겨진 관심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한다.

모든 뿌리에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이 있다. 2019년 2월 파일럿으로 공개된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과 이수근을 유심히 본 여운혁PD가 둘을 빼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이름과 ‘천기누설 무릎팍도사’의 콘셉트,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내용을 담고 있다.
독자들의 PICK!
2015~2016년부터 방송가를 어슬렁거리던 서장훈은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통해 처음 분장을 시도했다. 2m가 넘는 그가 ‘선녀 보살’ 복장에 연지곤지를 한 모습은 누구나 기함하게 했지만,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연자를 보던 서장훈의 솔루션은 놀랍도록 현실적이었다. 케이블 채널인 탓에 꽤나 수위가 높은, 이를테면 양성애자의 연애, 가족 상담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사연자 등도 등장했지만 그는 놀랍도록 차분하게 사연자를 바라보고 직언을 쏟아냈다.

그래서 요즘은 함께 나오는 ‘동자’ 이수근의 분량보다 서장훈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공을 쌓은 서장훈은 농구선수 시절부터 타고난 자기객관화 능력과 통찰력을 이용해 ‘이혼숙려캠프’에서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연애전쟁’에서는 연애 상담으로 분야를 특화했다. ‘상속전야’(가제)에서는 상속을 둘러싼 가족들의 갈등에도 현미경을 들이댈 예정이다.
서장훈의 상담 태도는 거의 비슷하다. 일단 사연자의 이야기를 대부분 듣고, 조용히 말을 꺼낸다. 대부분은 사연자가 놀랄 만큼 직언이 많다. 꿈이 있는 사연자는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행동이 잘못된 연인이나 부부에게는 쓴소리를 먼저 한다. ‘연애전쟁’에서도 감정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이효리와 달리 이성적으로 들어간다. 최근 외도를 합리화하는 여성 출연자에게는 “비상식적인 짓을 사랑으로 포장하지말라”며 일침을 날려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마냥 사안을 이렇게만 본다면 서장훈이나 김구라나 사실 큰 차이는 없게 된다. 서장훈에게는 사안을 직시하는 눈만큼 이를 공감하는 능력도 갖춰져 있다. 어려운 사연을 가진 사연자를 꾸짖기도 하지만, 기꺼이 솔루션을 하거나 직접 도움을 주는 일도 마다 않는 등 공감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향은 ‘미운 우리 새끼’나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SBS ‘합숙맞선 시즌 2’를 통해 도드라진다.
상담에 앞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상황을 끝까지 판단하고 사건을 꿰뚫는 하나의 요소를 잡아내 상대의 마음과 호흡을 잡아내는 능력은 그의 농구선수 시절 플레이를 닮았다. 서장훈은 207㎝의 장신으로 골 밑을 휘저었지만, 말년에는 슛 능력치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팀을 이끄는 득점자로 변신했다. 결국 이러한 능력이 상담자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상황을 본 시청자들도 그렇게 만든다.
방송가를 장악한 ‘예능 공룡’이었던 서장훈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복장과 공간은 다르지만 모두 어딘가 엇나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상황을 듣고 ‘단호박’의 솔루션을 내밀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물론 아이에게는 오은영, 강아지에게는 강형욱, 부부에게는 이호선이 있지만, 이 모두를 통틀어 보면 서장훈이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민이 많은 시대, 걱정도 많은 시대. 하지만 누구에게 명쾌하게 속 깊은 처방을 들을 수 없는 단절의 시대. 서장훈은 마치 사람 사이의 모든 담장을 그 큰 키로 넘겨다 보기라도 하는 듯 남다른 아우라로 우리 모두의 엄청 큰 ‘키다리 아저씨’가 돼주고 있는지 모른다.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