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영우-김소현의 열연에 섬세한 안감독의 연출에도 2%대 시청률

드라마 연출자 가운데 자신만의 색깔로 시청자의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 안판석 감독은 그중에도 으뜸으로 꼽힌다. 평범한 대화와 무심한 시선, 말과 말 사이 침묵에도 인물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짧은 눈빛 하나로 긴 대사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드라마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졸업’까지. 일상에 스며든 사랑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안판석 표 멜로는 그렇게 특별해졌다.
고(故) 안판석 감독의 유작이 된 ENA 월화드라마 ‘연애박사’(극본 민효정, 연출 안판석)에도 그 익숙한 매력이 살아 있다. 공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박민재(추영우)와 의류학과 대학원생 임유진(김소현)이 로봇 연구실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한때 수영선수였지만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민재와 부당한 일을 바로잡으려다 학업과 진로에 어려움을 겪게 된 유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두 청춘은 대학원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이성적인 민재는 상대의 감정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살피지만, 제 상처가 부담될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반대로 불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유진은 마음이 정해지면 먼저 다가간다.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연애는 요란하지 않다. 안판석 감독은 이들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친절하게 설명하는 대신 일상의 작은 순간에 담아낸다. 술에 취해 골목에서 나눈 키스를 유진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나 민재의 의족에 운동화를 신겨 주던 유진이 울컥하는 장면처럼 커다란 사건 없이 지나가는 장면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채운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지나쳤을 순간들에 마음이 머물고, 무심하게 건넨 말 한마디가 의미를 얻는다. 천천히 레이어를 쌓아가는 연출이기에 가능한 풋풋한 설렘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살리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추영우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얼굴 뒤에 번지는 민재의 불안을 표정의 미세한 변화와 망설이는 눈빛에 담아낸다. 말로 풀어내지 않아도 무엇을 삼키고 있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시청자에게도 그의 감정이 전달된다. 김소현이 연기하는 유진은 거침없이 다가서다가도 상대의 아픔 앞에서는 속절없이 흔들린다. 직진하는 사람의 단단함과 그 아래의 여림이 한 얼굴에 함께 드러난다. 두 배우의 연기는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이란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화면 속 인물들을 실제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며 연애하고 있을 법한 청춘으로 느끼게 한다. 이들의 표정과 호흡, 몸짓을 통해 화면 너머로 감정이 전해지는 순간 ‘역시 안판석표 멜로’라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는 서툰 청춘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소소한 순간을 바라보는 데서 잔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추영우와 김소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호흡, 이들이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을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하는 연출은 드라마를 편안하게 따라가게끔 만드는 힘이다. 감정의 축적에서 조금 더 깊은 울림을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 있더라도, 화면에 머물러 두 사람의 다음 마음을 지켜보고 싶게 하는 매력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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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시청률을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연애박사’는 첫 방송 이후 2%대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대만큼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하고 있다. 시청률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안판석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두 배우의 매력이 더 많은 시청자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빠른 전개와 강한 사건으로 시선을 붙드는 작품이 익숙한 환경에서 일상의 작은 변화와 인물의 감정을 차분히 따라가는 멜로는 시청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천히 쌓이는 감정이 주는 즐거움 또한 드라마가 선사할 수 있는 분명한 매력이다.
여기에 ‘연애박사’는 안판석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무게까지 지녔다. 더는 그가 연출한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익숙한 장면마저 한 번 더 곱씹게 만든다. 그동안 그의 드라마에서 특별하다고 느꼈던 시선과 감정의 결을 이번 작품에서도 발견하면 반갑고, 그 순간들이 예전만큼 깊은 여운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에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지나쳤을 장면까지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무조건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작품에 남은 아쉬움만으로 그가 보여준 연출의 매력까지 놓칠 필요도 없다. ‘연애박사’에는 여전히 인물의 작은 표정과 행동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안판석 감독의 시선이 있고, 그 시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두 배우의 연기가 있다.
안판석표 멜로는 여전하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반갑고, 그 여운이 더 많은 시청자에게 닿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안판석 감독이 마지막으로 그려낸 두 청춘의 연애가 궁금하다면, 조금 느린 호흡에 발맞춰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봐도 좋겠다. 담백한 장면 사이에서 문득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왜 많은 시청자가 안판석표 멜로를 기다려왔는지 다시금 떠올릴 수 있을 테니.
조이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