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전성시대 갔다…'사'자의 몰락
전문직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현실을 조명합니다. 변호사,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겪는 소득 감소, 취업난, 사회적 변화와 고충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전문직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현실을 조명합니다. 변호사,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겪는 소득 감소, 취업난, 사회적 변화와 고충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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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시중은행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제공하던 대출금리 우대 관행을 없애기 시작했다. '자격증'만 갖고 은행을 방문했던 전문직들은 "소득증빙 서류를 가져오라"는 말에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 국민은행이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상품 'KB닥터론'과 법조계 전문직들에게 제공하는 'KB로이어론'의 대출 잔액은 2010년말 4181억원에서 지난해말 3665억원으로 줄었다. 과거에는 저렴한 대출금리와 조기상환 수수료 면제로 전문직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 은행 대출심사가 강화되면서 '퇴짜'가 늘었다. 전문직들의 몰락 속도가 심상치 않다. 경기 악화와 자체 경쟁 심화, 정부 정책과의 불협화음이 어우러지며 전문직들마다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요즘 법원에 일반회생을 신청하는 이들 중 절반 가량은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라고 귀띔했다. 대부분의 전문직들이 꼽는 첫번째 위기 원인은 '경쟁 심화'다. 3년내 2만명 시대를
# 최근 치과의사 A씨(40)는 수도권의 목 좋은 자리에서 치과로 쓰던 건물 2층을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놨다. 개업한 지 5년이 지나면서 주변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경쟁 치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반값 임플란트'를 내세우는 경쟁업체의 출혈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다. A씨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날 때 권리금 수억원까지 얹어주며 개원했지만 아파트보다 경쟁 치과가 더 많이 늘어난 것 같다"며 "권리금을 일부 조정해서 내놨지만 방문해서 둘러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영난을 호소하며 문 닫는 치과들이 늘고 있다. '임플란트', '양악수술' 등 수익 창출 모델은 다변화됐지만 경쟁격화로 안 되는 치과들은 여전히 안 된다. 빚을 내 시작한 치과를 헐값에 되팔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루 2곳씩 문닫는 치과 지난 3년 동안 2321곳의 치과가 폐업했다. 매일 2곳 넘는 치과가 문을 닫은 셈이다. 1990년대 중반 1만여명을 조금 넘었던 치과의사 수는 지난
# 20년차 세무사 A씨(66)는 최근 사무실 직원 수를 줄였다. 20년째 세무대리 수수료는 제자리인데 사무실 월세와 보증금은 치솟았다. 덤핑 공세를 펼치는 경쟁 법인들에게 빼앗긴 거래처가 올해만 십여곳이다. A씨는 "1년 동안 기장료, 조정료 안 받고 서비스해준다는 세무사까지 속속 등장하는 등 '제살 깎아먹기'가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1만명'(8월말 기준) 시대를 맞은 세무사들이 신음하고 있다. 일부 회계사, 변호사 뿐 아니라 심지어 무자격자들의 세무업무 대리까지 늘어나면서 세무사들의 몫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좌절한 일부 젊은 세무사들은 급기야 '탈세 브로커'라는 '어둠의 길'을 찾기도 한다. ◇20년째 똑같은 수수료 한 세무사는 "한달에 개인사업자 10만원, 법인 20만원이라는 시장 가격이 20년째 도통 오르지 않는다"며 "월 2~3만원만 내고 기장대리 해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도 수두룩하지만, 할인을 거부하면 거래 끊을까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2002
송호성 수의사(31·가명)는 최근 군복무를 대신한 공중방역수의사 3년 근무를 끝낸 뒤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소형 동물병원에서 경험을 쌓으려 했지만 몸값이 10년 전과 똑같았다. 월급이 120만원 뿐인 곳도 있었다. 송씨는 "공중방역수의사로 일할 때는 수당까지 합쳐 한달에 200만원까지 받다가 월급 120만원 받고 일하려니 도저히 엄두가 안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직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수의사 평균 연봉은 약 50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개원해서 자리잡은 수의사까지 포함한 것이고, 대개 수의사 월 초봉은 150만원 수준이다. 송씨는 "영리법인 진출과 애완견 진료 부가가치세 부과 등으로 수의사들이 다른 자영업자들과 별 차이가 없게 됐다"며 "정말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가 됐지만 가끔 '개장수' 소리까지 듣다보면 내가 왜 6년간 열심히 공부해 수의사가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영리법인 동물병원의 위협 병원은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만 차릴 수 있다. 그러나
# 14년차 한의사 A씨(38)는 최근 경기도 한 도시에 한의원을 냈다. 지난 2000년 한의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에 한의원을 냈다. 처음에는 제법 돈도 만졌지만 최근 수년간 보약 짓는 손님이 급감하고 경쟁업체가 난립하면서 힘들어졌다. 결국 경쟁자가 적은 곳을 찾아 서울을 떠났다. A씨는 "주변사람 말만 듣고 연세대 의대 포기하고 한의대 간 게 후회스럽다"며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점잖고 돈 많이 버는 전문직'으로 알려진 한의사가 예전 같지 않다. 각종 건강식품과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의 부상으로 '보약 매출'이 급감했다. 수입이 줄어드니 자흉침(가슴확대 침구 시술) 등 미용 시술로 시장을 넓혀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A씨는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지 오래인데, 해마다 한의사는 800명씩 쏟아진다"며 "한의원 취직해봤자 월급 300만원도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그마저도 취직이 안 돼 아우성"이라고 했다. ◇한의사 잡는 비아그라와 홍삼 한의사 업계
올해 약사가 된 A씨(23·여)는 최근 약국 측의 요구로 호객 행위에 따라 나섰다. 서울 송파구 소재 한 대형 병원 앞에서 환자들에게 파스와 명함을 나눠주고 승합차에 태워 약국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병원 앞에서 환자로부터 처방전을 받자마자 무전기로 약국에 연락해 '조제 지시'를 내리는 것이 A씨의 역할이었다. 한번은 병원 측에 적발돼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 대형 병원은 교통 통제 등을 이유로 이 같은 호객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A씨는 "술집 호객꾼들이 불법 전단지 돌리다 단속되는 거랑 뭐가 다르냐"며 "나 스스로가 한심해 죽겠다"고 말했다. A씨가 처음 출근한 날 일을 가르쳐준 사람은 약사가 아닌 이른바 '카운터'라고 불리는 '약국 직원'이었다. 연봉도 A씨보다 높다. 약국을 찾은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각종 영양제며 건강드링크를 팔아치우는 데 '선수'다. 환자들은 가운 입고 상담하는 '카운터'를 보며 약사라고 착각한다. A씨는 뒤편에서 묵묵히 처방전에 따라 약봉지를 쌀 뿐
# 지난달 20일 오후 정신과 전문의 A씨(53)는 경남 거제도의 한 공원에서 칼을 들고 경찰과 대치했다.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참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것. 경찰이 30분 동안 설득한 끝에 칼을 빼앗고 A씨를 가족에게 돌려보냈다. 한때 '사위로 맞으려면 열쇠 3개(집·차·금고)는 기본'이라던 의사들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인건비 등 병원 운영비 부담은 늘어나는데 의료수가는 제자리걸음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진료항목'은 점점 늘어나는데, 통상 수가의 반토막으로 책정되니 병원 적자 폭이 늘어난다. 최근 포괄수가제 확대 적용으로 가뜩이나 어렵던 '수술하는 과'(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인기는 더욱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의료수가 의사들마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급여항목 수가가 비현실적이다"라는 것. 급여항목이란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 일부를 부담하는 질환 및 수술 항목을 말한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 질환)의
# 최근 여의도에 '애널리스트 연봉 50% 삭감'이라는 괴담이 돌았다. 한 증권사에서 퇴사를 유도하려고 지난해 연봉의 절반으로 재계약을 제의했으나 한 애널리스트가 받아들였다는 것. 한 애널리스트는 "연봉 50% 삭감 사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20~30% 삭감된 동료들은 꽤 있다"고 말했다. 거래대금 급감으로 증권사들의 실적이 대폭 악화된 때문이다. # 한 대형증권사 RA(Research Assistant: 보조연구원)로 3년 동안 근무한 A씨(30)는 최근 자산운용사로 이직했다. '증권시장의 냉철한 분석가' 애널리스트가 되길 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보고서(리포트) 작성도 힘들지만, 이는 전체 업무의 3분의 1도 안됐다. 영업 지원 자료를 만들고 지점 교육 다니는 '영업 2중대' 생활이 계속됐다. A씨는 "정작 본업으로 생각했던 리포트 업무가 적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고액연봉자', '꿈의 직업'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투자분석사)들의 처우가 예전 같지 않다. 애널리스트 숫자는
# 사법연수원 수료식이 열린 지난 1월2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 대강당.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절반 넘는 연수원 수료생들이 일자리를 찾아다니느라 수료식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군입대 인원을 제외한 645명 가운데 302명(46.8%)만이 판·검사 임용 및 로펌 취업에 성공했다. 연수원생들은 "그나마 지난해 취업률(40.9%)보다는 높아졌다"면서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 지난해 한 재경지법 국선전담 변호인으로 뽑힌 A변호사(35)는 지금도 한번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41명 선발에 388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무려 9.46대 1에 달했던 때문이다. A변호사는 "법조시장이 위축되다보니 월급 600만원 받고 2년마다 재계약하는 국선전담변호인도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격증만 딴 채 '손가락 빠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변호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매해 1000명씩 사법시험 합격자가 나왔다. 로스쿨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한 2012년 이후로
# 지난해 한 '메이저' 회계법인에 입사한 A씨(29)는 행정고시 응시를 고민중이다. 3년여 공부해 공인회계사가 됐는데 대기업보다 못한 초봉 3800만원을 받고 나니 속이 쓰렸다. 입사 4년차 선배 월급도 세전 350만원 가량이다. 올해 성과급이 200만원도 안 된다는 소문도 돌았다. 선배들은 "업무량이 2배 늘어도 성과급은 깎인다"고 씁쓸해했다. # 지난해 9월 상장폐지된 업체의 소액주주들이 회계법인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업체 직원이 위조서류를 내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를 잘못 만든 것"이라고 판시했다. 해당 회계법인 관계자는 "업체가 주는 서류마다 깐깐하게 검토하면 다음해 거래가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제대로 된 자료를 요청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CPA(공인회계사)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1등 신랑감'은 커녕 부실법인 감사를 맡았다가 같이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부실법인 감사로 배정되면 퇴사까지 고려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