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삼성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가 남긴 경영 철학과 사회적 영향력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가족, 재계, 사회 각계의 반응과 함께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며, 그가 남긴 유산과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삼성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가 남긴 경영 철학과 사회적 영향력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가족, 재계, 사회 각계의 반응과 함께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며, 그가 남긴 유산과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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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하기로 한 것에 관심이 모아진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재계 거목들의 빈소에 보낸 '메신저'와 달라서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대기업 전·현직 회장이 별세했을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보냈다. 정책실장은 경제 및 사회 분야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급으로, 재계와 소통을 위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김상조 정책실장 대신 노 실장을 보내는 건, 격을 높여 예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8년 5월 구본무 LG그룹 회장 별세 땐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빈소를 방문했다. 지난해 12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와 올해 1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김상조 정책실장이 문 대통령을 대신해 조문했다. 장 전 실장과 김 실장은 문 대통령의 애도의 뜻을 빈소에서 유족 측 등에 전달했다. 여권 관계자는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故)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4시57분 이 부회장은 검은색 SUV를 타고 자녀 2명과 함께 빈소에 도착했다. 검은색 양복 차림에 검은 넥타이를 한 이 부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왔으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장례식장 전용 출입 QR코드를 발급 받고 빈소가 차려진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세계적인 기업가지만, 스포츠계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스포츠맨'이다. 삼성전자는 25일 "이건희 회장께서 2020년 10월 25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린다"라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했고,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87년 별세한 이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랐고,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포츠에도 강한 애착을 보였다. 자신이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고,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았다. 이건희 회장의 재임 시기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 7개, 아시안게임 29개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40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최정상에 군림했다. 야구 사랑도 각별했다. 야구를 럭비, 골프와 함께 그룹 3대 스포츠로 선정하기도 했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를 지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군 훈련장인 경산
재계의 거목이자 한국 사회의 큰 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삼성을 전 세계 기업들 사이에 우뚝 세우고(建: 세울 건), 그 사이에서 밝게 빛나게(熙: 빛날 희) 한 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70여 년의 세월을 쉼 없이 달리며 꿈꾸던 그는 지난 2014년 5월 10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6년 5개월 15일(2361일)동안 긴 잠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항상 꿈꾸는 혁신가였다. 그를 '은둔의 경영자'라고 일컫는 일부 평가는 그를 알지 못한 무지의 산물이다. 이 회장은 혁신가이자 고뇌하는 미래학자였다. 이 회장은 자신의 꿈에 대해 워낙 깊이 있게 생각하다 보니 남들과 어울릴 시간이 적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평가는 그렇게 이름 붙여졌지만 그는 기술을 통한 인류의 행복과 미래를 바꾸는 데 관심이 컸던 혁신가이자 도전자다. 고인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수십 번 반복하며 주인공의 입장은 물론,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가운데 범삼성가인 신세계그룹도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회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등은 조만간 빈소를 찾아 조문할 예정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날 "부고를 접하고 신세계그룹 역시 큰 슬픔을 함께 하고 있다"며 "고인은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아직 그룹 차원의 조문에 대해선 결정된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명희 회장 등의 조문 일정 역시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빈소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희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막내딸로 이건희 회장의 유일한 동생이다. 지난 2010년 고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리셉션에서 이건희 회장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두손을 맞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이날 새벽 3시59분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재용 부회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여야 정치권이 일제히 애도를 표했지만 고인의 생전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은 기업가로서의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업적을 강조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선 '그림자'를 언급하며 재벌개혁 등 '새로운 삼성'으로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보수야권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 "경제계의 큰 별"━ 국민의힘은 이날 배준영 대변인 명의의 공식논평을 내고 "고인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 1위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며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셨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 '마누라, 자식 빼놓고 모두 바꿔라'라는 혁신의 마인드는 분야를 막론하고 귀감이 됐다"며 "미래를 선도할 인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지금도 인재육성의 교본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 이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26일부터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이 재개되는데 이 부회장은 장례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재판은 1월17일 공판을 끝으로 중단된 지 9개월 만에 열리는 재판이다. 앞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이번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라는 취지의 소환장을 보낸 바 있다. 이 재판은 또 한편 삼성이 설치한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져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재판에 출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준법감시위의 검증 논의도 연기될 전망이다. 이 회장의 영면은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사법부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에 이 부회장이 관여했는지 여부가 이 재판의 핵심이다. 지난 준비기일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
문재인 대통령이 고 이건희 회장 빈소에 조화를 보낸다. 문 대통령은 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애도의 메시지를 유족 측에 직접 전달할 계획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출입기자단에 공지를 통해 "문 대통령이 이 회장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노 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이 빈소가 마련되는 대로 조문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 회장의 별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노 실장이 유족들에게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측은 이날 오후 빈소가 차려지면, 가족과 친지를 중심으로 조문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후 26일부터 삼성과 관계사 등 외부 조문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청와대 측은 빈소가 마련되는대로 유족측과 협의를 통해 노 실장 등의 조문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재계의 거목들이 별세했을때마다 조화를 보내고, 청와대 정책실장을 보내 애도의 메시지를 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5월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 빈소에 조화를
25일 청와대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다. 3만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인 1993년 6월7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임원과 해외 주재원들을 소집해 이같이 질타했다.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며 혁신을 강하게 몰아붙였던 이 회장의 질타 이후 삼성전자는 환골탈태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보통주 시가총액 359조3800억원, 우선주 시총 43조8600억원 규모의 회사가 됐지만 '프랑크푸르트 선언'(소위 신경영 선언이라고도 불린다)이 있기 전의 삼성전자는 결코 지금의 위상이 아니었다. 신경영 선언 직전인 1993년 5월말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는 최근일 주가(6만200원)의 150분의 1에 불과한 405원이었다. 이 '405원'은 이후 삼성전자의 유상증자, 액면분할, 주식소각 등을 모두 반영해 현 시점에서 과거 주가를 재환산한 숫자다. 프랑크
중소기업계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앙회)는 이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5일 오후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 경제를 앞장서 이끌어온 재계의 거인"이라고 평가하며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 유가족과 임직원 여러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특히 "중소기업을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하며 애정을 베풀어 줬다"며 "평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한배를 탄 부부와 같다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1997년 경기 용인에 ‘중소기업인력개발원’ 건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중앙회는 이 회장이 중소기업과 공동 기술개발을 위해 '혁신기술기업협의회'를 운영했으며, 중소기업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하는 등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강조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이 회장은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통해 세계굴지의 초일류 글로벌기업을 일궈내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한 가운데, 삼성그룹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상속 등의 이유로 눌려있던 기업 가치가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016년 6월 30일 이 회장의 사망설이 시장에 돌면서 당일 삼성그룹주 주가는 일제히 올랐다. 당시 삼성물산은 전 거래일 대비 5500원(4.68%) 오른 12만3500원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8.51% 급등했다. 이밖에 삼성SDS 3.99%, 삼성전자 2.08%, 호텔신라 1.95% 등도 동반 강세였다. 루머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주가는 다시 원위치했지만, 당시 삼성그룹주는 왜 올랐을까.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 회장의 지분을 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상속세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상속세 마련에 효과적인 방편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주의 지분가액은 18조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