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삼성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가 남긴 경영 철학과 사회적 영향력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가족, 재계, 사회 각계의 반응과 함께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며, 그가 남긴 유산과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삼성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가 남긴 경영 철학과 사회적 영향력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가족, 재계, 사회 각계의 반응과 함께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따라가며, 그가 남긴 유산과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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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추모 메시지의 결은 달랐다. 국민의힘은 '빛'에 초점을 맞췄고 정의당은 '그늘'에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회장의 '빛과 그늘'을 모두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25일 배준영 대변인 명의의 공식논평을 내고 "고인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 1위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며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셨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 '마누라, 자식 빼놓고 모두 바꿔라'라는 혁신의 마인드는 분야를 막론하고 귀감이 됐다"며 "미래를 선도할 인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지금도 인재육성의 교본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 이건희 회장님의 명복을 빈다"며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이건희 회장의 기업사를 후대가 기억할 것이다. 일생 분초를 다투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의 타계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경련은 25일 별도의 입장을 통해 "이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라고 칭송하고 "남다른 집념과 혁신 정신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먹거리 산업으로 이끌었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이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하면서 국격을 크게 높였고, 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상생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고인의 혁신 정신은 우리 기업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타계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경총은 25일 논평을 통해 "경영계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견인하셨던 재계의 큰 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님의 별세 소식에 존경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도전을 멈춰서는 안된다(삼성전자 40년사 발간사)'던 고 이건희 회장님의 말씀이 생각난다"며 "생전에 기술 발전에 대한 열정이 높으셨던 이건희 회장님은 흑백TV를 만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 삼성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회고했다. 이어 "특히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님의 1993년 '신경영 선언(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은 강도 높은 품질혁신으로 삼성이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돼다"며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수출과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는 사업보국(事業報國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장례절차를 마치는대로 용인 삼성가 선영에서 영면에 든다.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모친 박두을 여사 곁이다. 전자와 반도체,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삼성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부자가 한 공간에서 후대를 내려다본다. 삼성 선영은 용인 포곡읍 가실리 일대로 국내 최대 테마파크인 에버랜드 부지 내에 위치해 있다. 삼성 용인 선영은 대표적인 명당으로 손꼽히는 자리다. 이병철 회장의 증조부의 묘소가 있었던 경남 의령군 선영의 위치와 1970년대 중반 이병철 회장의 연이은 선영 이장, 이와 연계되는 삼성그룹의 급격한 사세확장 등은 풍수지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단골로 언급하는 스토리다. 삼성 용인 선영 토지는 2015년 등기 기준으로 8만2069㎡(2만4869평) 규모다. 인근에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 삼성인력개발원 등이 있다. 대부분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취득한 땅이다. 이병철 회장의 묘소 앞쪽으로 사람이 몰려야 이건희 회장 등 후손에 유리하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한 데 대해 일본언론도 긴급히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일본과의 인연을 언급한 매체도 있다. 주요 경제매체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 회장 별세 소식을 빠르게 전하며 "1987년 삼성 회장에 취임한 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 역시 이 회장을 '한국 최대 재벌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라고 설명하고, 삼성전자를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시켰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 회장의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일본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신문은 이 회장이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때 자동차 등 사업은 정리하고 반도체 등 유망 사업에 거액 투자를 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썼다면서, 삼성그룹 회장 취임 후 25년 만에 그룹 매출액을 30배, 시가총액을 300배로 급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전망에 대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수장이기 때문에 경영상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봤다. 이어 요미우리는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외신들도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삼성 이건희 회장 78세로 별세. 전자 거대기업 만들었다'는 제목으로 속보를 실었다. NYT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서울에서 78세로 별세했다"면서 "그는 삼성을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칩에서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1987년 아버지이자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별세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삼성을 할인점에서 파는 값싼 텔레비전과 신뢰도 낮은 전자레인지를 만드는 회사로만 알고 있었다"면서 "이건희 회장은 회사의 기술 수준을 계속적으로 높였다. 1990년대초 삼성은 일본과 미국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메모리칩 최강자가 됐다. 화면이 가벼워지면서 평면 디스플레이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2000년대 휴대폰이 강력한 컴퓨터 장치가 되면서 중급 및 고급 모바일 시장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새벽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유족들은 이건희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른다. 가족과 친지에 한해 조문을 받고 간소하게 나머지 장례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건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다중이용시설로 코로나19(COVID-19) 방역수칙 의무화 대상 시설이다. 음식점, 카페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과 동일하게 출입자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출입자 명단 관리. 주기적 환기·소독 등 핵심 방역수칙을 따라야 한다. 해외에 있던 가족들의 장례식 참석은 가능하다. 장례식, 발인 참석 등 ‘인도적 목적’ 등에 한해서 해외입국 시 적용받던 '2주 격리'를 제한적으로 면제받는다. 격리면제 대상은 본인·배우자의 직계존속의 배우자(재혼부모), 직계비속의 배우자(며느리사위) 등이다. 조문객이 50인 이상 모이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이 경우에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2m(최소 1m 이상) 유지 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새벽 3시59분 별세했다. 항년 78세. 이 회장은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부인 홍라희 관장 등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유족들은 장례를 총 4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으로 오는 28일 발인 예정이다. 삼성은 이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 18호, 19호에 빈소를 마련했다. 다음은 이 회장의 주요 경력 및 업적이다. △1966년 10월=동양방송 입사 △1968년 12월=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8월=삼성물산(주) 부회장 △1979년 2월=삼성그룹 부회장 △1981년 2월=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82년 1월=한국청소년연맹 이사 △1982년 3월=대한 레슬링협회장 △1987년 12월=삼성그룹 회장 취임 △1988년 3월=제2창업 선언 △1988년 11월=삼성전자, 반도체통신 흡수합병 △1993년 3월=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199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향년 78세 일기로 타계한 가운데 삼성 그룹을 명실상부 재계 1순위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어온 그가 남긴 '말의 유산'도 재조명되고 있다. ━다음은 고인이 된 이 회장의 주요 어록.━"다시 한 번 바꿔야 합니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합니다." (2014년 1월 신년사)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합니다."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만찬) "도전하고 또 도전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더 멀리 보면서 변화의 흐름을 앞서 읽고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찾아내야 합니다." (2013년 1월 신년사) "우리가 꿈꾸는 초일류 기업의 모습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고 부단히 성장하는 기업, 늘 활력이 샘솟는 창의적인 기업, 고객과 주주는 물론 국민과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그룹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를 글로벌 IT 기업으로 육성한 장본인이다.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그룹을 승계받았을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과 흑백TV가 주력제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해 3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평면 고화질 TV시장에서 8년 연속 판매 1위를 달성하는 등 명실상부 글로벌 '종합전자회사'로 발돋움했다. 그는 선대 숙원사업이었던 반도체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끌었다. 연구인력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후발주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탈바꿈했다. 특히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점유율 30%대 이상으로 확고한 1위를 기록 중이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성공신화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밝힌 '신(新) 경영' 선언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며 철저한 '자기혁신'을 주문했다. 이는 경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25일 향년 78세 나이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한국 경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신 기업가"라고 평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며 이같이 적었다. 유 전 의원은 "고인께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반도체, 휴대폰, 가전으로 삼성을 세계 1등기업으로 일으켰다"며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우리 경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라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죽음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25일 오전 삼성서울병원이 이날 별세한 이건희 회장 장례식 준비로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장례를 위해 급하게 빈소를 꾸리는 등 장례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삼성은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 19호, 20호에 빈소를 마련한다. 조문은 이날 오후부터 받을 예정인데 가족과 친지들의 위문만 받을 예정으로 외부 조문은 26일 오전 10시 이후 삼성사장단 조문을 시작으로 진행한다. 이 회장은 이날 새벽 3시 59분에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 회장 유족들은 장례를 총 4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으로 오는 28일 발인 예정이다. 장지는 선대회장이 묻혀 있는 용인 선영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