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덫에 빠진 수사
검찰의 함흥차사 수사가 늘고 있다. 6개월 넘도록 처리하지 못한 장기미제사건은 지난해 6500여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이후 2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장기미제가 늘어날수록 검찰의 민생범죄 대응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의 함흥차사 수사가 늘고 있다. 6개월 넘도록 처리하지 못한 장기미제사건은 지난해 6500여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이후 2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장기미제가 늘어날수록 검찰의 민생범죄 대응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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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6일 오후 11시를 넘은 심야. 인근 다세대주택 공사장의 흙막이가 무너지면서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이 붕괴됐다. 경찰은 사고 발생 4개월 만인 2019년 1월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지만 더 이상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잦은 인사와 사건 재배당으로 검찰은 3년이 지난 2021년 11월30일에야 시공사 안전책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지난해 10월 1심에선 피고인 11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사고 발생 5년 만이었다. 사고 당시 상도유치원을 다녔던 7살 아이는 그 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다. 26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최근 10년간 전국 지방검찰청 미제사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건수리 이후 6개월이 넘도록 처리하지 않은 사건이 6594건으로 집계됐다. 10년 전인 2014년 989건과 비교해 차이가 크다. 2021년 수사권 조정 당시 2503건에 견주면 3배가량 늘었다. 전체 수사사건에서 장기미제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요새 공격적인 사업 계획이나 투자 안건이 올라오면 '삼성 좀 봐라'라고 합니다." 최근 만난 재계 한 인사의 얘기다. 삼성물산 부당합병 혐의 사건 이후로 재계에서 웬만큼 파격적인 공격 투자는 자취를 감췄다는 뜻이다.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 사건 재판은 2020년 10월 첫 공판부터 올 2월 무죄 선고까지 1심에만 3년 5개월이 걸렸다. 오는 27일부터는 다시 2심 재판이 시작된다. 이 인사는 "수사는 그렇다 치고 삼성만한 기업이 재판에만 이렇게 3년 넘게 시달리는데 어느 기업이 예전 같이 과감한 사업 계획을 짤 수 있겠냐"고 말했다. 삼성만이 아니다. '국정농단·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6년 6월 검찰수사를 시작으로 3년 4개월이 지나서야 사법 리스크가 해소됐다. 재계에서는 "요즘 재판은 기본이 3년"이라는 한숨이 나온다. "길어지는 재판이 최대 리스크"라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다. 재판이 늦어지면 기업 경영 차질은 피할 수 없다. 반도체업계에
"수사지연이 '뉴노멀'이 됐어요. 장관이 나서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검사들이 몇이나 될까요." 검찰이 6개월이 넘도록 수사하는 사건 수가 지난해 6500건을 넘기면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을 두고 검찰 출신 한 법조인이 꺼낸 얘기다. 검찰 내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수사지연이 일상화된 만큼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법조인은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서 체감하는 사건 처리 기간은 2배 이상 늘었다"며 "고소해서 사건이 처리되기까지 기간을 전에는 1년 정도로 생각했는데 (검수완박 후) 지금은 2년이 넘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한다"고 말했다. 수사지연이 일상이 된 원인으로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행 이후 검찰과 경찰 사이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점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많다. 과거에는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검사가 4개월 안에 기소든 무혐의 종결이든 처리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저희도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디지털포렌식 절차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사건 수사에서 핵심 증거로 빠지지 않는 디지털 증거를 조사·분석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건 처리가 줄줄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검찰 분위기는 해법 모색에 지치다 못해 무기력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디지털증거 분석 기술력의 수준이나 예산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검찰의 하소연이다. 기업 서버뿐 아니라 개인용 PC와 스마트폰 보안도 고도화한 데다 데이터 용량도 빠르게 늘면서 증거물 1건을 분석하는 데 드는 시간 자체가 늘었다. 재경지검의 한 포렌식수사관은 "USB나 스마트폰을 꽂으면 모든 정보가 촤르륵 나오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며 "포렌식 기기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 데이터는 데이터가 저장된 기기의 출력속도에 따라 나오기 때문에 일단 데이터가 출력되는 것만도 멍하니 기다릴 수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