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극한직업
‘지금까지 이런 직장은 없었다. 이곳은 직장인가 지옥인가. 네 OOO 의원실입니다.’ 영화 ‘극한직업’을 본 한 보좌진의 자조적 목소리다. 풍운의 꿈을 안고 국회 입성했으나 사적 심부름에 동원되기 일쑤다. 정책을 연구하고 정치를 배우는 길은 요원하다.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하고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가는 보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까지 이런 직장은 없었다. 이곳은 직장인가 지옥인가. 네 OOO 의원실입니다.’ 영화 ‘극한직업’을 본 한 보좌진의 자조적 목소리다. 풍운의 꿈을 안고 국회 입성했으나 사적 심부름에 동원되기 일쑤다. 정책을 연구하고 정치를 배우는 길은 요원하다. 부모님의 기대를 뒤로 하고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가는 보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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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모 의원실의 비서관 A씨는 '연휴'가 두렵다. 해외 여행에 나선 의원 가족의 비행기표 때문이다. 여행객과 티켓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이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맞추기가 더 힘들다. 출발과 도착 시각부터 자리 위치, 항공사까지 원하는 것도 많다. 티켓별로 결제자가 달라 티켓 구매 일은 두 배가 된다. 무엇보다 사적 심부름에 동원된다는 사실이 괴롭다. # 다른 의원실에 근무하는 B씨에게는 연말 정산이 고역이다. 의원의 소득과 소비 내역을 다루는 사적인 일을 B씨가 처리한다. 그는 의원은 물론 선배 보좌진의 연말 정산까지 '막내 직원'의 몫이라고 말한다. "잘 모른다", "어디 간다", "바쁘다" 등 이유도 다채롭다. B씨는 "'영감'(국회의원을 뜻하는 은어) 연말 정산도 보좌진의 업무인가"라고 한숨 지었다. '정치 유망주'를 꿈꾸는 청년 보좌진들이 국회를 떠난다. 뿌리 깊은 '의원실 갑질'을 호소하며 극심한 취업난에도 국회를 등진다. 청년 정치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청년 보좌진은
# 한 초선의원실의 비서관으로 일했던 A씨는 2017년말 국정감사 직후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외부인사로 영입됐다가 1년여만에 실업자가 됐다. 뚜렷한 이유도 듣지 못했다. 국감 직후 A씨가 주도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실적도 괜찮았다. 국감 준비 기간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업무에 열중했기에 허탈감은 더욱 컸다. 이에 수석 보좌관과 갈등이 해고의 원인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국감 질의 순서를 두고 다소 마찰이 있었다. 기업이나 정부부처와 달리 복잡한 해고 절차가 없는 의원실에서 A씨의 해고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A씨의 면직요청서가 국회 사무처에 전달된 직후 A씨는 짐을 쌌다. 전격 해고에 따른 업무 부담은 남은 보좌진의 몫이다. 당시 해당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는 "기자 출신 비서관 영입을 고집해 2개월 넘게 공석이 있었다"며 "의원이나 수석보좌관은 비서관 한 명 자르면 그만이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업무가 몰려 괴롭다"고 말했다. 여의도 국회 의원실에 '해고
#92년생 김지영씨의 직업은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비서다. 입법 전문가를 꿈꾸고 들어온 국회에서 '김지영 비서'는 여러 입법과 정책 아이디어를 내며 일을 배우고 있다고 자부한다. 오늘은 '영감(모시는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국회 보좌진의 은어)'을 한 정부 부처 관계자가 찾아왔다. 김지영씨도 정책 입안을 위해 자주 통화하는 인사다. 영감이 갖다 달라는 정책 자료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가려던 와중에 남성인 부처 관계자가 "이 방은 여자가 너무 많아서 가끔 대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영감이 "우리 의원실에 여자가 이미 많아서 여자는 더 안뽑고 있다"고 맞장구 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김지영씨가 회의실을 나오자 전화벨이 울린다. 지역구에서 걸려온 민원 전화다. 상대방은 통화 시작부터 "국회가 일을 왜 이렇게 안 하냐"고 욕설을 퍼부었다. 종종 있는 일이라 김지영씨는 "네, 네~"하며 응대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여자가' 전화를 왜 그렇게 받느냐"며 "남자 바꿔"라는 호통이 떨어졌
기업이 변하고 있다. 카카오 등 IT 기업에서 시작된 수평적 기업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존칭없이 영문 이름을 부르거나 상사도 부하에게 '~님'이라고 하는 호칭 변화가 대표적이다.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조율하고 업무만 마무리하면 정시 퇴근도 문제없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생)의 사회 진출이 이뤄지면서는 이같은 기업 문화 변화가 빨라진다. 변하지 않으면 뛰어난 직원을 뽑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묻어난다. 기업들은 변화를 공부하고 적용하며 문화를 개선 중이다. 그런데 바뀌지 않는 곳이 있다. 선거철만 되면 "세상을 더 낫게 바꾸겠다"고 표를 얻어간 국회의원들이 모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일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폐쇄와 고립을 상징하는 '갈라파고스'가 됐다. 도망갈 길 없이 노동에 시달리는 '섬노예'라고 자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의원들의 갑질만이 다가 아니다. 의원실 피라미드 최하층에 위치한 청년 보좌진들이 넘어야 할
#지난해 2월27일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최대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26일부터 이어진 1박2일 마라톤 회의 내내 보좌진들은 의원들의 옆을 지켰다. 법안 합의를 마친 의원들은 밝은 얼굴로 회의장을 빠져나갔지만 보좌진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뿌듯함보다 자괴감이 컸다. 당시 현장을 지킨 비서관은 "법안이 통과돼도 주 52시간 근무는 나와는 무관한 얘기"라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들이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엄연한 노동자이지만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 각종 노동관련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서류 한 장 제출에 채용·해고가 이뤄지는 '파리목숨'이지만 국회의 비밀주의 탓에 제대로 된 통계조차 구하기 어렵다. 당장 주 52시간 근무부터 언감생심이다. 국회 보좌진은 근로시간 단축의 사각지대에 있다. '별정직' 공무원이다보니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무원법을 적용받는다. 주 52시간을 준수할 근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