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여의도 '극한직업']③입법전문가 꿈꾼 여성 보좌진…성차별에 가려진 국회의 여성들

#92년생 김지영씨의 직업은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비서다. 입법 전문가를 꿈꾸고 들어온 국회에서 '김지영 비서'는 여러 입법과 정책 아이디어를 내며 일을 배우고 있다고 자부한다.
오늘은 '영감(모시는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국회 보좌진의 은어)'을 한 정부 부처 관계자가 찾아왔다. 김지영씨도 정책 입안을 위해 자주 통화하는 인사다.
영감이 갖다 달라는 정책 자료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가려던 와중에 남성인 부처 관계자가 "이 방은 여자가 너무 많아서 가끔 대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영감이 "우리 의원실에 여자가 이미 많아서 여자는 더 안뽑고 있다"고 맞장구 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김지영씨가 회의실을 나오자 전화벨이 울린다. 지역구에서 걸려온 민원 전화다. 상대방은 통화 시작부터 "국회가 일을 왜 이렇게 안 하냐"고 욕설을 퍼부었다. 종종 있는 일이라 김지영씨는 "네, 네~"하며 응대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여자가' 전화를 왜 그렇게 받느냐"며 "남자 바꿔"라는 호통이 떨어졌다.
#김지영씨는 전화를 끊고 상임위와 관련된 질의서를 쓰기 시작했다. 옆에서 의원실 동료인 남성 비서가 "아, 비서님도 질의서 쓰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조금 있다가 한 출입기자가 찾아와 남성 비서에게만 인사하고 상임위 관련 현안을 질문하고 갔다. 김지영씨는 대화를 듣기만 하며 질의서를 마저 썼다.
#일과가 끝나고 김지영씨가 일하는 의원실은 보좌진끼리 신입 인턴비서를 맞이하는 회식자리를 가졌다. 2차는 노래방을 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성 보좌관이 흥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좌관이 신입비서에게 춤을 청했지만 신입 비서가 머뭇거렸다. 보좌관이 "XX년"이라고 욕을 했다. 다른 보좌관과 비서관이 말리는 사이 김지영씨는 눈치를 보며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13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국회 페미니스트 보좌진 모임 '국회페미' 등의 도움을 받아 국회 내 성차별 사례를 취합하고 여성 보좌진들이 실제 겪은 사례를 인터뷰한 내용을 '92년생 김지영(가명) 비서'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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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보좌진이 '극한직업'으로 불리지만 그 중에도 여성 보좌진은 남성 보좌진에 비해 성차별까지 견뎌야 하는 게 현실이다.
4급 보좌관 등 고위직에는 주로 남성이, 급수가 낮은 '비서' 직위에 여성 비중이 높아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실마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의원뿐 아니라 같은 의원실의 '상사'나 정부 관계자 등 의원실을 찾는 손님들로부터 받는 차별적 언사들에 노출된다.
국회사무처가 지난달 2일 발간한 '2019년 1월 국회인력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별정직 공무원인 국회 의원실 보좌진 중 전체 여성 보좌진 비율은 30.5%에 그쳤다.
여성 비율은 직급이 높을수록 낮고 직급이 낮을수록 많아졌다. 최고 직급인 '4급 보좌관'의 여성 비율은 7.9%에 그쳤다. 5급 비서관의 여성 비중은 20.5%로 집계됐다. '비서'로 불리는 6급부터는 6급에서 23.9%, 7급에서 37.8%가 여성으로 파악됐다. 반면 주로 의원실 행정을 담당하는 8급과 9급은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8급 비서의 59.6%, 9급 비서의 64.9%가 여성이다.
국회사무처 등 국회 내 다른 기관에 비해서도 국회의원 보좌진 사회가 성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점이 통계로도 나타났다. 정책연구위원 등 별정직을 포함한 국회사무처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43.4%로 나타났다.
사무처 역시 2~3급 고위직은 여성 비율이 다른 직급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15.4%(2급), 14.9%(3급) 등으로 4급 보좌관의 여성 비율에 비해서는 2배 정도 높다. △국회예산정책처는 39.9% △국회입법조사처는 40.6% △국회도서관은 73.7% 등의 여성 공무원 비율이 집계됐다.
한 여성 보좌진은 "어느 조직이든 고위직에 남성이 더 많긴 하겠지만 행정비서만 여성이 훨씬 많은 국회 보좌진 사회 구조 자체가 여성을 '행정비서'라는 괴리된 역할에 가두는 것이 아니겠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