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밖으로 나온 재판
법원을 찾지 않아도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영상재판 덕이다. 도입된 후 지금까지 진행 건수가 25만회를 넘었다. 접근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지만 재판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영상재판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법원을 찾지 않아도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영상재판 덕이다. 도입된 후 지금까지 진행 건수가 25만회를 넘었다. 접근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지만 재판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영상재판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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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찾지 않고 영상 장비를 통해 재판을 진행하는 영상재판 누적 실시건수가 25만건을 넘었다.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재판의 집중도 등을 저하시킨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재판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장점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6일 대법원에 따르면 영상재판이 본격 확대된 2021년 11월 이후 2025년까지 누적 실시건수는 25만3348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11~12월 128건 △2022년 6123건 △2023년 2만4976건 △2024년 7만3305건 △2025년 14만8816건이다. 같은 기간 영상재판 신청 건수도 △2021년 11~12월 191건 △2022년 5329건 △2023년 2만5072건 △2024년 6만7118건 △2025년 12만45건으로 증가했다. 개별 재판부가 재판사무시스템에 영상재판 사실을 입력하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 활용 규모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예외적 수단으로 취급되던 영상재판이 하나의 재판 방식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영상재판이 가장 활발히 활용되는 곳은 민사재판이다.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남용 사례 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사소송법이 2021년 8월 개정되면서 민사·가사·행정·특허 등의 사건에서 변론준비기일 비롯한 변론·조정·심문 기일 등에서 영상재판이 가능해졌다. 민사소송법 제287조의2는 재판장 등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당사자의 신청 또는 동의를 얻어 비디오 등 중계 장치에 의한 중계시설을 통하거나 화상 장치를 이용해 변론준비기일 또는 심문기일을 열 수 있다고 정한다. 당사자가 출석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로는 '교통의 불편 또는 그 밖의 사정'으로 규정한다. 민사재판에서 영상재판을 활발하게 활용할 수 있는 건 형사재판과 달리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고, 5~10분 남짓 이뤄지는 기일이 비교적 잦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실시된 영상재판 총 14만8816건이었다. 이중 민사재판은 14만7306건으로 약 98. 9%에 달했다.
형사재판에서 영상재판은 민사재판만큼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과 반대신문권, 직접주의 문제 등이 맞물려 있는 탓이다. 실무적으로도 영상 증인신문 등 일부 절차에만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26일 대법원에 따르면 영상재판 총 실시 건수 14만8816건 중 형사재판 활용 건수는 1510건으로, 약 1%에 불과했다. 2021년 11월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형사재판에서 영상재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토대가 마련됐다. 개정법은 구속 이유 고지 절차를 비디오 등 중계 장치에 의한 중계시설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는 경우 그 사유가 인정되면 검사와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 공판준비기일을 영상 방식으로 열 수 있도록 했다. 또 증인이 멀리 떨어진 곳이나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살거나, 건강상태 등 사정으로 법정에 직접 출석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영상 증인신문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영상재판이 극히 제한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영상재판 전용법정의 영상 방청석 화면에 두 변호사의 얼굴이 크게 나타났다. 변호사들은 각각 실제 법정처럼 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출석했다. 재판 말미 기일을 지정하면서 판사가 "원고대리인 괜찮으시냐"고 묻자, 원고 측 변호사는 약 2초 뒤 "예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변호인들은 실제 법정에서처럼 화면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화면을 껐다. 원거리에서 열리는 영상재판이었으나 실제 법정처럼 정돈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절차가 진행됐다. 음향시설도 좋아 재판부가 혼잣말하는 것도 들릴 정도였다. 서울중앙지법에는 영상재판 전용법정이 5개 마련돼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재판 당사자가 먼 지역에 있는 재판에 참여할 때 주로 사용한다. 지난 16일 영상재판 전용법정 1~3호실엔 각각 △창원지법 통영지원 △춘천지법 홍천군법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서 이뤄지는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재판 당사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헤드셋을 끼고 재판에 참여했다. 영상재판 전용법정 5호실은 영상재판을 볼 수 있는 방청 전용실이다.
호주·싱가포르 등 여러 선진국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영상재판을 정규 재판 방식의 하나로 정착시켰다. 선진국은 영상재판을 단순한 화상회의가 아니라 실제 법정과 같은 규율이 적용되는 온라인 법정처럼 설계했다. 특히 공개재판 방식과 접속 장소·복장·예절까지 세부 기준을 마련해 재판의 품격과 절차적 권리가 훼손될 가능성을 줄였다. 26일 해외 주요 법원의 연례보고서와 실무지침을 종합하면 싱가포르 법원은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1년 형사·민사 본안재판 외 절차의 90%, 민사 본안재판의 60% 이상을 영상재판으로 진행했다. 사람과 사람 간 접촉이 엄격히 금지됐던 시기, 대규모 사건을 영상으로 처리하면서도 재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된 현재 싱가포르 사법부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 영상과 대면재판을 구분하고 있다. 서면증거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신청사건에선 영상심리를 계속 활용한다. 반면 증인 반대신문이 필요한 민사 본안재판은 대체로 법정에서 진행한다. 모든 재판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재판에 적합한 사건을 골라 활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