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50년
삼성전자가 다음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반세기만에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글로벌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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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간 지속적으로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어려운 시기에도 중단하지 않았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지난 6월 첫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도 화성사업장으로 전자 사장단을 긴급하게 불러 이같이 주문했다. 오찬을 겸해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주말 회의는 사실상 삼성전자의 비상경영 돌입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막을 내리면서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환경이 첩첩산중이다. 실적은 반토막 났고, 반도체를 포함한 IT 업황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에다 급기야 7월부터는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겹쳤다. 다음 달 1일 쉰 살 생일을 맞는 삼성전자가 요란한 기념식 대신 조촐한 생일상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50년 역사를 재조명하는 사사(社史·회사의 역사)를 발간하고 DS(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IM(IT&모바일)·CE(소비자가전) 등 사업부문별 대표가 임직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등 간략하게 보낼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난 50년
성공한 기업에는 반드시 비결이 있다. 성공은 필연적으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삼성전자도 그렇다. 1990년대까지 그저 반도 땅덩이에서 잘 나가는 기업이었던 삼성전자가 20여 년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선 과정이 특히 그렇다. ◇ 하드웨어 1등 DNA…애플·구글은 따라오기 어려워 = 삼성전자는 무엇보다 하드웨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업이다. 소프트웨어 역량으로도 단숨에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하드웨어 역량은 짧은 기간에 갖추기 어려운 경쟁력이다. 대규모 투자와 오랜 시간에서 쌓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강점을 활용해 D램에서 낸드플래시로,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전환하면서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했다. 최근 20여년의 성장을 이끈 첫번째 비결이 여기 있다. 이런 역량이 부족했던 노키아는 불과 1~2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글로벌 1위 휴대폰 업체의 타이틀을 내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워크맨과 TV로 세계 가
10년 전 삼성전자가 내걸었던 경영전략 목표인 '비전 2020'. 연매출 4000억달러(당시 기준 약 473조원), 브랜드 가치 세계 5위 진입. 이건희 회장이 2009년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 40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약속'이었다. '비전 2020'의 종료 시점이 가까워진 2019년 올해 삼성전자의 연매출 전망은 232조원, '비전 2020'의 해가 되는 내년 매출 전망은 253조원 수준이다. 사실상 4000억달러 목표 달성은 어려워졌다. 매출 목표 달성은 50% 수준에 머물지만 삼성전자는 글로벌 10대 기업 반열에 올라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비전 2020'을 발표할 당시, 무리한 목표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1999년 창립 30주년 때 '10년 후 매출 100조원, 글로벌 IT업계 3위 진입'을 내걸었고 달성했다. 100조원 목표를 세울 당시 매출이 25조원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즉 "마누라와 자식만 빼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가 직면한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반도체 불황의 파고를 견디며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을 물리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안으로는 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이 경영 불확실성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삼성전자가 발빠른 혁신과 과감한 투자 등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 위기를 돌파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직 내부적으로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 문제가 가장 큰 위험요소이고 사업적으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삼성전자 정도 규모의 글로벌 기업들은 대규모 M&A(인수합병)을 하며 빠르게 새로운 사업영역에 진출하는데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삼성전자는 너무 느리다"며 "최근 IT(정보기술) 분야에서 AI(인공지능) 등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계열사 사장단 등 간부 200여명을 불러모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캠핀스키 호텔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라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훗날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발언은 당시 획기적인 것이었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삼성의 수장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조직 현실을 냉혹하게 진단한 것이다. 1987년 2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1988년 3월 삼성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삼성의 체질을 굳건히 다져 세계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나가겠단 비전을 세우고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전개했다. 그러나 '국내 제일'이란 자만에 빠져있던 삼성에서 혁신은 쉽지 않았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