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의존은 안보 취약성으로 전환
특정 국가·공급원 과도한 집중 피하고
정부 기업이 정보·대응수단 연계해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와 안보는 비교적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됐다. 기업은 비용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했고, 국가는 군사력과 외교를 통해 안보를 관리했다. 그러나 이제 그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반도체와 희토류, 배터리와 에너지, 조선소의 생산능력까지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변화의 본질은 경제적 '의존'이 안보의 '취약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평상시에는 효율적으로 작동하던 글로벌 공급망도 지정학적 갈등이나 전쟁, 수출통제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국가의 약점이 될 수 있다. 특정 소재나 핵심광물의 공급 차질만으로도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방산 등 여러 산업이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세계 주요국이 공급망과 첨단산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가장 싸게 생산할 것인가'만이 아니다. 위기에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 핵심 기술과 생산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기반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한국의 경우 경제안보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 등 주요 제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에너지와 핵심광물, 일부 소재·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과 공급망안정화법을 통해 공급망 안정과 경제안보 품목을 관리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관련 법 개정도 같은 흐름에 있다. 경제안보를 국가 차원의 정보활동 영역에 포함하고 사이버안보 관련 기능을 보완한 것은 공급망 교란과 기술 유출, 수출통제 같은 위험을 보다 일찍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기반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위험을 미리 파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위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수단과 기반이 함께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핵심광물의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필요한 품목은 일정 수준 비축해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방산처럼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서는 핵심 기술과 생산기반, 숙련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산업기반은 한번 약화되면 단기간에 복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맹·우방국과의 협력도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반도체·핵심광물·조선·방산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면 위험을 분산하고 기술과 시장 측면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다만 경제안보를 특정 국가와의 단절이나 경제적 블록화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개방경제인 만큼 세계경제와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특정 국가나 공급원에 위험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독자들의 PICK!
경제안보의 힘은 모든 것을 스스로 갖추는 데 있지 않다. 외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공급망과 기술, 생산기반이 함께 흔들리지 않도록 완충력을 갖추는 데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협력도 중요하다. 정부는 국제정세와 외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파악하고, 기업은 공급망과 생산 현장의 취약성을 가장 먼저 감지한다. 양측의 정보와 대응수단이 연결될 때 국가적 회복력도 높아질 수 있다.
경제안보의 목적은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거나 세계경제와의 연결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공급망이 흔들리고 외부의 압력이 커지더라도 대한민국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선택지를 유지하는 데 있다. 어떠한 위기에서도 국가의 선택이 제약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경제안보 시대에 필요한 '선택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