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궁시파차이(恭喜發財)
외국인 최초 중국 사마천학회 정회원으로 20여년간 사마천의 고향인 섬서성을 비롯해 중국을 120여차례 방문해 현장의 땀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사기(史記)전문가 김영수씨(전 영산 원불교대학 교수)가 21세기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의 역사 속 경제 이야기를 ‘궁시파차이(恭喜發財: 돈 많이 버세요)’로 풀어간다.
외국인 최초 중국 사마천학회 정회원으로 20여년간 사마천의 고향인 섬서성을 비롯해 중국을 120여차례 방문해 현장의 땀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사기(史記)전문가 김영수씨(전 영산 원불교대학 교수)가 21세기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의 역사 속 경제 이야기를 ‘궁시파차이(恭喜發財: 돈 많이 버세요)’로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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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과 공자의 관계 사마천은 자공의 외교 행보를 상세히 소개한 다음 마무리에서 자공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자공은 시세를 보아 물건을 사고팔아 이익 챙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때를 봐가며 그때그때 재물을 굴렸다. 그는 남의 장점을 드러내주는 것을 좋아했으나 남의 잘못을 감춰주지도 않았다. 일찍이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고, 집안에는 천금을 쌓아두며 살았다. 마지막에는 제나라에서 세상을 마쳤다. 위에서 주목할 것은 자공이 남의 장점을 드러내주는 것을 좋아했다는 대목이다. 자공과 공자의 특별한 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논어'에도 자공의 성품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공자가 자공에게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냐고 묻자 자공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남의 생각을 훔쳐서 자신의 지혜로 삼는 자를 미워하며, 불손함을 용기라고 생각하는 자를 미워하며,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며 그것을 정직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미워합니다.('논어' 양화편) 자공은 남의 생각과 장점을 존중하고 그것
◆ 기라성 같았던 공자의 제자들 공자(기원전 551~479년)는 중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인 명인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지 250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의 부가가치는 조금도 시들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 존재가치는 더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의욕적으로 벌이고 있는 국가 홍보 정책의 전면에도 공자가 버티고 있다. 중국은 세계 각지에 '공자 아카데미' 또는 '공자 어학원'을 설립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홍보하고 있다. 이른바 '신중화주의'를 전파하는데 '소프트 파워'를 들고 나섰고, 그 전면에 중화 문화와 공자를 내세운 것이다. 공자의 위상은 사마천 당시에도 대단했다. 이런 공자의 위상을 감안하여 사마천은 공자의 전기를 제후들에 관한 기록인 '세가'(世家)에 편입시키는 파격을 감행했다. 공자는 제후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이나 벼슬로도 세가에 편입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은 공자의 역사적 문화적 지위를 높게 평가해
◇'사기'와 경제 '사기(史記)'는 지금으로부터 2100여년 전에 나온 역사서다. 총 130편에 52만6,500자로 이루어진 3000년 통사다. 사마천은 이 130편 중에 경제와 관련된 편을 두 편 안배했는데, 이는 당시 수준으로는 생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전문적인 경제론을 담고 있는 '평준서(平准書)'와 경제 사상과 경제인에 관한 기록인 '화식열전(貨殖列傳)'이 바로 그 둘이다. 이 두 편을 통해 사마천은 당시 경제 상황은 물론 경제와 정치의 함수관계, 역대 부자들의 치부법 등을 날카로운 필치로 기록했다. 하지만 이 두 편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2000년 가까이 혹평과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뒤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사마천 당시나 '사기'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런 비난은 없었다. 오히려 사마천을 '사마자(司馬子)'로 높이 부르면서 사마천의 경제관을 적극 옹호 내지 수용할 정도였다. 사마천의 경제관이나 경제 사상이 적어도 서한 시대까지는 전
'의리관(義利觀)' 논쟁 사마천은 '사기'의 실질적 마지막 편인 제129 '화식열전'에서 "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어야 짐승들이 노닐 듯이 사람은 부유해야 비로소 인의를 행한다"고 했다. '부(富)'에서 '인의(仁義)'가 따라 나온다는 말이다. 사실 도덕적 관념의 범주에 속하는 '의(義)'와 현실적이고 물질적 개념의 범주인 '이(利)'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무엇이 먼저고 어느 것이 중요하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이를 '의리관(義利觀)' 논쟁이라 부른다.(이제부터 편의상 '의'를 '의리'로, '이'를 문맥에 따라 '이익' 또는 '이해관계'로 쓰기로 한다.) 유가(儒家)에서는 기본적으로 '의리'를 중시하고 '이해관계'를 경시했다. 군자가 이익을 밝히는 것을 천박한 짓으로 보았다. 공자는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한 것은 내게 뜬구름 같을 뿐이다"라 했고, 또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 논어 > '이인편')고도 했
◇틈새시장과 정세(情勢) ‘틈새시장(niche marketing)’이란 마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의 ‘니치(niche)’란 ‘빈틈’ 또는 ‘틈새’란 뜻인데, ‘남이 아직 모르는 좋은 낚시터’라는 은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남이 아직 모르고 있는 좋은 곳, 빈틈을 찾아 그 곳을 시장으로 보고 공략하는 것이다. 주로 특정한 성격을 가진 소규모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목표를 설정하는 것이지만 공략의 성공여부에 따라서는 소비자는 물론 시장의 규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니치 마케팅’ 전략을 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통찰하는 힘과 소비자의 욕구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치밀한 추적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에 따른 소비의 흐름과 욕구를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어야만 틈새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인데, 단순히 시장과 동향분석만으로는 부족하다. 말하자면 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나타내는 단어로 '천금'(千金)이란 것이 있다. 동전 '천 냥'이 아니라 금으로 '천 냥'이란 뜻이니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엄청난 경제적 부 따위를 비유하는 단어라 할 것이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을 잘 보여주는 단어들 중 하나다. 중국인들의 과장, 속된 말로 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는 대개 이런 과장을 비아냥거리는 투로 지적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러워하는 속내가 묻어 있다. 중국인의 과장은 단적으로 그 땅 크기만 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960만㎢의 강역, 남한의 90배 이상이다. 동서로 길이 약 6000㎞, 남북으로도 그와 비슷하다. 시차만 네 시간이 난다.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실감이 잘 안 나는 크기다. 이런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땅과 거기 나는 물산의 엄청남을 '지대물박'(地大物博)이란 네 글자로 간결하게 자랑하기도 한다. 중국인은 연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도 '영원히 사랑해'와 같은 추상적인 과장보다는 '당신을 1만
오늘날 중국의 여성 파워는 어느 나라 못지않다. 가정에서 여성의 위치는 단연 남성을 압도한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의 활약상은 정말 부러울 정도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인구는 약 3억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이 수치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성인 여성의 80% 수준이다. OECD 국가의 평균치인 67%를 훨씬 상회한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중국은 단연 선진국 반열에 있다. 2010년 중국은 제2 국부펀드로 궈신(國新)공사를 설립했는데, 3조 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위해 설립한 회사다. 자본금만 45억 위안(약 900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공사를 대표하는 이사장에 68세의 셰치화(謝企華)라는 여성을 앉혔다는 것이다. 장관급 이상의 고급 관리의 퇴직 연령인 만 65세를 넘어선 여성을 이 엄청난 자리에 임명했다는 사실은 중국이 그녀의 능력을 얼마나 믿고 인정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상 홍순도 외, < 베이징 특파원 중
먹고 입는 문제를 다루는 '치생'(治生)의 원조로 꼽히는 백규는 기원전 5세기 초, 즉 전국시대 초기에 활약한 이론과 경험을 모두 겸비한 수준 높은 경제 전문가였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탄탄한 이론으로 체계화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이론을 남에게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다소 지나치지만 독특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사업상의 노하우를 철저하게 의식하고 관리하는 오늘날 전문 경영인의 모습을 이런 그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백규는 시세의 변화에 민감한 상인이었다. 상인으로서 그는 경제 상황은 말할 것 없고 정치와 사회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남들이 내다팔면 사들이고, 남들이 사들이면 내다파는 효율적인 사업관 내지 경영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는 전문 경영인으로서 갖추어야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근검절약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았으며, 잔꾀로 돈을 벌지 않았다. '상도'(商道)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상도'를 '상덕'(商德)의
사마천은 경제의 기본을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즉 의식주를 충족시키는 일체의 행위와 정책으로 요약한다. 나라의 정책은 부국(富國)에 앞서 백성들을 먼저 부유하게 만드는 ‘부민(富民)’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몇 차례 인용한 바 있는 “창고가 넉넉해야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안다”는 명언은 사마천의 이런 경제관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백성들의 생활이 넉넉해야 염치를 알고 어진 행동을 베풀고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백성을 가진 나라가 부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누구든 자신의 지혜를 활용하여 부를 쌓고, 그 부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라고 말한다. 다만 사마천은 “농부가 있어 먹을 수 있고, 산림과 하천을 개발해야 천연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공인이 있어야 물건을 만들고, 상인이 있어야 상품이 유통되므로” 이 농(農)·우(虞)·공(工)·상(商) 네 가지 직업이야말로 먹고
육신은 사회주의, 영혼은 자본주의라는 소리를 듣는 중국인의 경제관념은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한다. 신석기 시대에 이미 조개껍데기 따위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고, 금속 화폐의 역사만도 2500년을 상회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갑부들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았다. ‘화식열전’에 보이는 부자들 이야기에 앞서 역대 10대 갑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간다. 재부를 절대적 가치로 삼았을 때 유근(劉瑾), 화신, 송자문(宋子文), 오병감(伍秉鑒), 등통(鄧通), 양기(梁冀), 여불위(呂不韋), 석숭(石崇), 심만삼(沈萬三), 범려 등이 최고 갑부로 꼽히는데 이들의 치부 내력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유근 : 16세기 초 명나라의 거물급 환관이다. 그의 치부는 대부분 뇌물이었다. 뇌물로 받아 챙긴 돈만 황금 33만kg(약 8800만돈), 백은 805만kg에 이른다. 이자성이 북경에 진입하여 숭정제 1년 동안의 재정수입을 조사해 보니 백은 20만kg이었다. 그러니 이 자가 챙긴
중국인들은 새해 인사로 ‘꿍씨파차이(恭喜發財)’란 말을 즐겨 한다. ‘돈 많이 벌기를 기원합니다’ 또는 ‘돈 많이 버세요’라는 뜻이다. 얼핏 생각하면 상당히 천박한 인사처럼 들린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날 인사가 하필이면 돈 많이 벌라는 말이라니. 하지만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인사가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어쨌거나 ‘꿍씨파차이’는 중국인의 치부관(致富觀) 내지 경제관을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 국가다. 하지만 경제관념이나 돈에 대한 인식은 자본주의를 비웃을 정도로 철저한 면이 많다. 그래서 혹자는 “중국은 공산주의를 실행한 지는 100년이지만 자본주의를 실행한 지는 5000년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역사 기록을 보아도 중국식 경제 이론이 정립된 것은 무려 2천수백년 전이다. 춘추시대, 지금의 산동반도 바닷가에 위치했던 제(齊)나라는 전통적인 중농주의를 버리고 중상주의를 국가 경제정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