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넘어 보관장소까지 따진다…서방 부유층이 싱가포르 찾는 이유

금값 넘어 보관장소까지 따진다…서방 부유층이 싱가포르 찾는 이유

정혜인 기자
2026.10.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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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금 보유량 800톤 돌파, 2014년 이후 16배↑
전쟁·재정 불안에 보관처 다변화, 해외 고객 90%

싱가포르 대형금고 시설 '더 리저브' /사진=블룸버그
싱가포르 대형금고 시설 '더 리저브' /사진=블룸버그

싱가포르가 미국, 유럽, 중동 등 부유층이 보유한 실물 금의 보관처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지정학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금을 보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까지 따지기 시작했고, 싱가포르가 인기 보관처로 부상한 것이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귀금속 거래업체 제이 로트바트 앤드 컴퍼니는 지난해 기준 싱가포르의 민간 금 보유량이 2014년 이후 약 16배 늘어 800톤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증가분 대부분은 유럽에서 유입된 것이다. 증가세를 지속돼 올해와 내년 금 보유량은 각각 1200톤, 1400톤으로 예측했다.

아시아의 포트녹스(미국 정부의 금 보관소)이자 보관용량 최소 1700톤인 '르 프리보트'의 지하 금고는 지난 5월 금 보관 수요 증가로 대부분 가득 찼다. 싱가포르의 또 다른 대형 금고 시설인 '더 리저브'의 금 보유량도 2020년 이후 3배 늘어 지난달 기준 8.6톤에 달했고, 이 중 90%는 해외 고객이 보유한 금이다.

싱가포르 민간 금 보유량 추정치 추이 /사진=블룸버그
싱가포르 민간 금 보유량 추정치 추이 /사진=블룸버그

싱가포르에서 초고액 자산가 가문에 금융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멀티패밀리오피스 파로캐피털의 마니시 티브레왈 공동 창업자는 "부유층들이 다른 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실물 금 일부는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며 "실물 금을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부유층도 이제 프라이빗뱅크나 귀금속 거래업체를 통해 금을 직접 구매해 싱가포르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유층들은 싱가포르의 통치 체계, 재정 여건, 국방력 등을 높게 평가하며 장기 자산 보관처로 주목하고 있다. 더 리저브의 그레고르 그레거슨 창업자는 "금을 30~40년 동안 장기 보관하려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연금 금을 장기 보관하려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연금제도 위기가 없고,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국가를 선호한다"며 "싱가포르가 바로 그런 나라"라고 전했다.

"서방 고객 문의 1년 새 3배 급증…미국, 1위"

싱가포르 대형금고 시설 '더 리저브'의 직원들이 금고에서 금괴를  꺼내고 있다. /사진=블룸버그
싱가포르 대형금고 시설 '더 리저브'의 직원들이 금고에서 금괴를 꺼내고 있다. /사진=블룸버그

업계에 따르면 미국 부유층의 금 매수 및 보관 문의가 가장 많았고, 캐나다, 영국, 호주가 그 뒤를 이었다. 제이 로트바트 앤드 컴퍼니는 "지난 1년간 서방 고객들의 온라인 문의는 3배 늘었다"며 "이들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귀금속 플랫폼 골드는 "유럽에 거주하는 고객 약 40%가 스위스에 보관하던 금 일부를 싱가포르로 이전했거나, 신규 금 매입 시 보관 장소를 싱가포르로 선택했다"며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자산 동결' 제재를 시행한 이후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스위스의 중립성에 대한 인식이 재검토됐다"고 설명했다.

노무라 국제 자산 부문의 악샤이 프라사드 투자상품 및 자문 총괄은 "최근 중동 등의 고객 요청에 따라 싱가포르에서 실물 금 보관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이들은 일반적으로 편안함과 신뢰를 느낄 수 있는 관할권에서 금을 매입하고 보관하기를 원한다. 싱가포르의 통치 체계에 대한 신뢰가 금 보관 장소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한편 싱가포르 정부는 이런 흐름을 활용해 아시아 금 거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싱가포르거래소는 연말까지 금 장외거래 청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싱가포르 통화청은 해외 중앙은행과 국부 펀드 등 기관을 대상으로 금 보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실물 투자용 귀금속에 투자하는 적격 펀드와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세금 면제 혜택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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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기자

국제부 정혜인 기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 '트민자' 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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