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외 없는 세상 '판자촌의 꿈' 영글다

금융소외 없는 세상 '판자촌의 꿈' 영글다

이경숙 기자
2007.02.1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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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피플]<3-1>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활동 이종수 에이온코리아 부사장

1997년 7월, 경비행기는 캄보디아 국제공항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는 유리창 밖을 내다봤다. 포연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무너진 공항 건물의 잔해와 활주로 뿐.

경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했다. 활주로 근처로 백여명의 외국인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내전을 피해 공항에 온 그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으리라. 그와 일본인 엔지니어 십여명이 탄 경비행기 안은 더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머릿 속에 킬링필드의 해골탑이 스쳐갔다. 20여년이 지났는데도 썩지 않은 웅덩이 속의 옷가지들, 사각기둥 위에 쓰러질 듯 세워진 주택들, 그리고 캄보디아 사람들의 우울한 눈동자들. 숱한 이미지 뒤로 그가 살던 사당동 판자촌의 정겨운 불빛들이 떠올랐다.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이웃들의 눈빛이 어른거렸다.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건 뭐지? 이건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야...’

프롬펜에 도착한 그는 사무실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사표를 보냈다. 그러고는 1년. 그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생각만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세계 최대의 보험중개사 부사장이자 사회연대은행 설립멤버

↑이종수 에이온코리아 부사장 
ⓒ임성균 기자 tjdrbs23@
↑이종수 에이온코리아 부사장 ⓒ임성균 기자 tjdrbs23@

2007년 2월 14일, 그는 서울시 충무로 극동빌딩 20층의 세계 최대 보험중개회사 사무실에 있다. 이종수(53) 에이온코리아 부사장. 언론에는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라는 직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건 그가 무보수로 하는 일이다.

“조수강 에이온코리아 사장님께서 배려해주셔서 할 수 있는 일이죠.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하하.”

그림자 없이 파안대소하는 그의 얼굴에서 판자촌의 유년기와 운동권 청년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74년 그는 소위 ‘민청학련(전국민주학생청년총연맹) 사건’ 때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서대문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딱 7개월 살고 풀려났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졸업해서 취직을 하려고 여기저기 원서를 넣었는데 아무 데도 받아주질 않아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체이스맨하탄은행에 원서를 냈는데 덜컥 합격했죠. 알고 보니 신원조회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하하.” 또 파안대소.

그 후 18여년 동안 그는 3년 이상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살았다. 체이스맨하탄은행에 있으면서도 서울에서 3년, 홍콩에서 3년, 자카르타에서 3년 하는 식으로 돌아다녔다. 새로 지점, 사무소를 내거나 이미 설립된 법인을 재정비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을 했다. 은행 면허 신청부터 인테리어, 인사, 직원 훈련, 재무 관리, 시스템 구축까지 그는 새로운 일을 했다.

“업무 강도가 높은 일만 내리 18년을 하고 살았어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내전이 일어난 캄보디아에 착륙하는 순간, 예전의 내가 떠올랐어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자고 생각했던 저 자신 말입니다. 회심한 것이죠.”

마음을 돌린 그는 사십대중반의 나이에 세계은행의 한 NGO지원기관에 원서를 넣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노동부의 ‘빈민을 위한 직업 개발과 훈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금융업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결국 1년여만에 다시 금융업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는 1999년 외환위기가 일어난 한국에서 금융기관 컨설팅사를 운영하다가 2001년 에이온코리아 부사장으로 옮겨갔다.

ⓒ임성균 기자 tjdrbs23@
ⓒ임성균 기자 tjdrbs23@

◆"은행만 4개 설립했어요"

금융은 어쩔 수 없는 천직일까. 그는 농반진반으로 자신이 설립한 은행만 4개라고 말한다. 웨스트팩은행 한국 지점, 인도네시아 합작은행인 웨스트팩페닌은행, 캄보디아의 ABA(아시아선진은행), 그리고 사회연대은행. 그런데 사회연대은행은 그가 이전에 설립했던 다른 은행과는 영 다르다. 이름은 은행이지만 하는 일은 사회복지다.

사회연대은행은 시중은행은 물론 서민금융기관조차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주고 창업에 성공하도록 훈련, 조언한다. 빌려준 돈은 다시 받아 다른 빈민에게 빌려준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기회’를 준다는 점이 다른 사회복지, 금융서비스와 다르다.

이런 서비스는 빈민을 위한 무담보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라고 불린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지난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5~6년 전만 해도 가난한 사람한테 돈을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는 생소했다. 당시엔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신나는조합’만이 그라민은행으로부터 5만 달러, 우리돈 5천여만원의 대출금을 지원받아 마이크로크레디트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부사장은 또 ‘새로운 일’을 벌였다. 2001년 연구모임을 발족하고, 2002년 (사)함께 만드는 세상 ‘사회연대은행’을 설립한 것이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당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장), 노대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김홍일 신부, 김신양 전 자활정보센터 부장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사회연대은행 발기인들을 처음 만난 건 2001년이었습니다. 당시 그 분들은 한국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연구파일을 접어놓고 있었어요. 근데 저는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서 그게 성공한 것을 보고 왔지 않습니까. 파일을 다시 펼치자,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고 했지요."

이제 사회연대은행은 국내 최대의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됐다. 지금까지 약 400여 업체가 80억여원의 자금을 대출 받아 창업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금 회수율은 90%에 이른다. 이 돈은 국내 다른 빈민에게 대출되기도 하고 러시아 연해주의 고려인과 러시아 빈민의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금으로 기부되기도 했다.

◆금융 소외 없는 세상을 꿈 꾸며

사회연대은행 창립 5년. 3년도 한 자리에 머문 적 없다는 그가 걸음을 멈출 리 없다. 그가 이번에 계획하는 건 금융소외를 없애주는 금융기관, 일을 통해 빈곤을 탈출할 기회를 주는 금융기관이다.

“사회연대은행이 하고 있는 일은 전체 금융 소외에 비하면 아직 작은 일입니다. 일자리가 양극화되거나 그나마도 사라지고,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면서 금융소외는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솔루션이 필요해요. 그것을 위해 금융소외 해소 방안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까 해요.”

이곳저곳의 직장과 지역, 업무를 돌아 지금 이 자리에 왔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어떤 운명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믿는 신의 메시지였다.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는 구절이 있어요. 지금 와서 제 삶을 되돌아 보면 그 말씀만큼 맞아드는 것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 힘이 저를 이끄리라 믿습니다.”

◇이종수 에이온코리아 부사장은

△1954년 경기도 출생

△1973년 서울고 졸업, 서강대 경영학과 입학

△1979년 체이스맨하탄은행 입행

△1985년 웨스트팩은행 서울, 홍콩, 자카르타 재무이사

△1993년 진로 기획조정실장, 동남아본부장

△1996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캄보디아 농촌 빈민 수입 향상 프로그램’ 진행

△1997년 인도네시아 노동부의 ‘빈민을 위한 직업개발 및 훈련 프로젝트’ 수행

△1999년 금융기관 컨설팅전문 ‘캡코’ 설립

△2001년~현재 에이온 코리아(Aon Korea Inc.) 부사장

△2000~2005년 (사)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사

△2002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2002년~현재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

△2004년 보건복지부 민원제도개선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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