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50세 이상 국민 절반이 앓고 있다는 치질. 다 같은 것 같지만 성별에 따라 빈발하는 치질도 다르다. 치질은 크게 항문벽에 혹이 생기는 치핵,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부위에 고름이 잡히는 치루로 구분할 수 있는데, 남성은 치루, 여성은 치열을 주로 앓는다.
남성은 항문 구조 상 청결관리가 쉽지 않고, 잦은 음주와 설사로 '치루'가 많이 발생한다. 치루는 점액질을 분비해 배변을 돕는 항문 안쪽 '항문샘'에 세균이 침입해 곪았다 터지면서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에서 고름이 흘러 나와 터널처럼 연결되는 것이다.
20~30대에 많으며, 남자에게서 4~5배 많이 발생한다. 남성의 항문샘은 여성의 항문샘보다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비슷하게 씻어도 이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세균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괄약근이 튼튼한 것도 이유가 된다. 괄약근 압력이 높으면 항문샘 입구가 좁아져 오물이 많이 쌓이고 염증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병목이 좁으면 물이 잘 안빠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술과도 관련이 있다. 남성들의 잦은 과음은 설사로 이어져 항문샘 입구에 오물이 모이게 하며, 음주 후에는 신체 면역력이 저하돼 항문샘에 염증이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치루가 있으면 처음에는 배변 시 항문 안쪽이 따끔하고 항문 주위에 종기가 난 것처럼 붓는다. 항문에 열이 나거나 감기처럼 온 몸에 열이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견디기 힘들 정도의 통증과 함께 항문이 크게는 계란 크기만큼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며칠 고생하다가 고름이 터져 나오면 시원한 느낌이 들고 통증도 사라진다. 이 때 환부를 만져보면 볼펜심처럼 딱딱한 줄기가 항문 안쪽으로 뻗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동근 한솔병원장은 "흔히 이 단계가 되면 저절로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때부터가 바로 치루의 시작"이라며 "치료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술이나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나 몸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붓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만성 치루로 악화된다"고 강조했다.
치루는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고름이 나오는 치루관을 절개하고 염증을 일으키는 항문샘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항문 주위를 청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변을 본 후에는 물로 씻어주고, 비누 등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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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 많은 '치열'은 항문이 좁아 찢어지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항문이 좁은 편인데다 변비환자도 많아서 인 것으로 추정된다. 변비로 인해 딱딱한 변을 보게 되면 항문에 외상이 생기기 쉽고, 이 상황이 반복되면 치열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살면서 빼놓지 않고 경험하는 임신과 다이어트는 변비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치열과 무관하지 않다. 임신 중에는 임신을 유지시키는 황체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은 장운동을 저하시켜 변비를 유발한다. 다이어트로 인한 식사량 조절은 변의 양을 줄여 딱딱하게 굳게 해 변비나 치열이 생기기 쉽게 만든다.
치열이 생기면 변을 볼 때마다 피가 나고 아프며, 상태가 악화되면 변을 본 후에도 심한 통증을 느낀다. 단순한 열창부터 난치성 열창까지 다양하다. 생긴 지 1개월 미만인 급성 치열일 경우에는 좌욕으로 근육 경련을 풀어주거나 2주 정도 약물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4주 넘게 항문이 계속 찢어지는 만성 치열이라면 내괄약근을 살짝 절개해 항문을 넓히는 수술을 받는 것도 방법이지만 변비를 예방할 경우 90% 이상은 수술 없이도 치료할 수 있다.
남녀 모두에게 가장 흔한 것이 '치핵'이다. 전체 치질의 60~70%를 차지하는 치핵은 화장실에 오래 앉아 신문을 보거나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아있고, 장기간 앉아서 진행하는 업무가 항문 주위 혈관을 팽창시켜 혹을 만드는 질환이다.
증상에 따라 1~4기로 구분하는데, 배변 시 출혈이 있는 것이 1기, 배변 시 치핵이 약간 돌출되었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상태가 2기, 돌출된 치핵을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는 시기가 3기, 손으로 밀어도 들어가지 않거나 다시 나오는 상태가 4기로 분류된다. 이때 치핵이 항문 밖으로 심하게 밀려나와 들어가지 않는 상태를 '탈항'이라 부른다.
반드시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상 치핵의 80%는 수술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 1~2기 정도라면 병원을 가지 않고 자가치료도 가능하다. 하루에 한 번씩 변을 보는 연습을 하고, 식이섬유와 물을 충분히 섭취하는 식습관을 기르는 등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치질이 심해져 고통이 있을 때는 환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 원장은 "요즘엔 마취기술이 발달해 예전처럼 통증이 심하지 않다"며 "3~4일간 입원하면 완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치핵을 단순히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기구를 이용해 치핵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을 묶어 크기를 줄인 후, 늘어진 치핵을 항문 내부에 고정시켜 원인부터 해결하는 '무통치핵동맥결찰술(할앤라르)' 시술도 많이 한다. 시술시간은 35분 가량이며, 아침에 입원해 오후에 퇴원이 가능하다. 이틀이면 일상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 증상이 심한 환자의 경우 늘어진 부분이 다시 돌출될 수 있어 치핵을 고정시키는 과정을 추가로 시행해야 한다.
정순섭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수술과 달리 통증과 출혈, 부작용이 없으며 시술 당일 입원과 퇴원이 가능해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며 "재발률도 낮고 합병증 발생도 억제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