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人' 박태준의 마지막 소원 "내 집에서 쉬고 싶다"

'鐵人' 박태준의 마지막 소원 "내 집에서 쉬고 싶다"

반준환 기자
2011.12.14 20:22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나. 길어야 5년일 테지. 적어도 마지막에는 딸 집이 아닌, 내 집에서 쉬고 싶네…."

대한민국 철강신화를 뒤로 하고 영면에 들어간 고(故) 박태준포스코(347,500원 ▲6,500 +1.91%)명예회장이 구자영SK이노베이션(118,200원 ▲2,700 +2.34%)사장에게 얼마 전 한 말이다. 대한민국 산업을 일으킨 '철인'의 생전 마지막 바램은 의외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훈장을 추서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훈장을 추서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구 사장은 지금은 정유업계를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이지만 20여년 전 포항제철 경영기획실장으로 박 명예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그는 "2개월 전 박 명예회장 내외를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는데, 당시만 해도 건강해서 이렇게 돌아가실지 몰랐다"며 "박 명예회장이 워낙 청빈했던 탓에 오랫동안 집이 없었고, 딸 집에 신세를 지고 계셨을 때였다"고 말했다.

박 명예회장은 서울 아현동에 시세 10억원 정도 되는 집이 있었으나, 2000년대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해 무주택자가 됐다. 박 명예회장은 당시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써 달라"며 집문서를 넘겼다.

구 사장은 "당초 아현동집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난한 박태준'을 보다 못해 사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집을 기부한 후 정작 본인은 거처를 마련할 돈이 없어 딸 집에서 살게 됐다"고 말했다.

박 명예회장은 얼마 전 집을 마련했으나 갑자기 병세가 위독해지는 바람에 그토록 원했던 '자기집'에서는 살아보지 못했다고 구 사장은 안타까워했다.

이 집도 돈을 주고 산 게 아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며 부지를 구해 지은 단독주택이었다고 한다. 집은 담을 맞댄 2채로 지어졌는데, 이중 한 채가 박 명예회장 내외가 살 거처였다.

구 사장은 박 명예회장의 성품에 대해 "뼛속까지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으로가득 차 있는 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국가경제 발전과 철강산업 육성에 정신을 몰두했다"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질 정도였고 사업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리사욕을 챙기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자리에 있었으나, 엄격한 청백리 정신으로 평생을 살았다"며 "쇳물보다 뜨거운 열정에 뛰어난 두뇌까지 겸비했다"고 설명했다.

본인에게 엄격했던 박 명예회장은 그러나 후배들에겐 무척 따뜻했던 선배로 기억된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제철소 근무시절 박 명예회장이 새벽같이 도는 발걸음은 엄하면서도 친근했다"며 "후배들에게 항상 제철보국 선공후사(製鐵報國 先公後私)의 정신을 일깨워 주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쇳물보다 뜨거운 사업열정과 끊이지 않는 아이디어,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1970년대 후반 중국의 덩샤오핑과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이 나눴다는 대화는 박 회장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는 덩샤오핑에게, 이나야마 회장은 "제철소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그러면 한국의 박태준을 수입해야 되겠군…"이라며 낙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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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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