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2012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시련 딛고 지도자 된 이민구 관장
"더 이상 눈을 다치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시합에 나가지 마세요."
이민구 목동다이어트복싱GYM 관장(40)이 3년 전 의사로부터 들은 진단 결과다. 권투선수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스스로 노력해 재활할 수 있는 신체 부위도 아닌 눈을 다쳤으니 암담했다. 시술이나 수술을 한다 해도 어쨌든 선수생활은 끝난 셈이었다.
그래도 복싱에 대한 이 관장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눈을 다친 후 지금까지 다시 링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식은 적 없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눈에 이상신호가 왔다. 체육관에서 혼자 외롭게 운동을 해야 할 뿐 가벼운 스파링조차 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지만 여기서 권투글러브를 내려놓을 순 없었다. 오랜 시간 마음고생 하던 끝에 이 관장은 지난해 12월 말 서울 지하철 목동역 인근에 복싱장을 개관했다. 본인은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이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서다. 올해 이 관장에게 다시 새로운 삶이 열린 것이다.

(사진=류승희 기자)
◆뮤지션에서 복서로 변신하다
이 관장의 본래 직업은 기타리스트였다. 청소년 시절부터 음악과 기타에만 푹 빠져 살았다. 그는 20대 초반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인 한 유명 록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을 만큼 실력도 출중했다.
그렇게 기타만 끼고 살던 어느 날 이 관장은 한 복싱장을 찾았다. 목적은 단순히 살을 빼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 여러 운동을 즐겨했지만 특별히 전문적으로 한 것은 없었고, 복싱도 단지 체력단력과 다이어트의 수단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운동을 하면 할수록 점차 복싱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이 관장은 "복싱을 하면서 집중력도 높아졌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 운동을 할수록 흥미를 느꼈다"며 "어느 순간 직접 선수로 뛰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프로테스트를 통과한 뒤 2005년 겨울 신인왕전에도 출전했다. 안타깝게도 준결승전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어쨌든 늦은 나이에 시작해 불과 3년여 만에 이룬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 관장은 "음악에 대한 열정도 늘 갖고 있었지만 복싱에 대한 열정과 도전 의욕도 그 이상이었다"며 "비록 늦게 시작한 선수생활이었지만 챔피언이 되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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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하다
그러나 한 순간 큰 부상이 이 관장의 선수활동을 가로막았다. 특별히 자랑할 만큼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이젠 더 이상 도전조차 하기 힘든 처지가 된 것이다.
2008년 열린 '다이나믹복싱 한국챔피언 도전자 결정전'에 출전한 이 관장은 전년도 신인왕과 맞붙었다. 쉽지 않은 시합이었고, 결국 이 관장은 판정까지 갔지만 승리를 놓쳤다. 시합이 끝난 뒤 얼굴은 상처투성이었고, 특히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눈 주의가 심하게 부어 있었다.
이 관장은 "평소 시합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서도 눈에 이상을 느꼈다"며 "동네에 있는 작은 안과를 거쳐 꽤 유명한 안과와 종합병원까지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알고보니 망막이 찢어져 있었고 최소한 시술,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물론 수술을 받는다 해도 더 이상 시합을 해선 안 된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후 몇 년간 복싱에 대한 꿈만 가슴에 담고 살던 이 관장은 마음을 다잡고 복싱장을 열었다. 또 그는 선수활동을 할 사람 뿐 아니라 다이어트, 생활체육 등을 목표로 가볍게 즐기면서 운동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도하고 있다.
이 관장은 "언젠가 우리 체육관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모든 지도자들이 그렇듯 후배들이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열의를 갖고 지도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 관장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못다 이룬 욕망이 남아 있는 듯했다. "사실 눈이 완전히 회복돼 다시 링에 오를 수 있는 날만을 꿈꾸고 있다"는 이 관장의 눈빛이 빛나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