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문하는 '해미읍성'…다른 순교지보다 참혹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에 도착하면 성벽에 걸린 '프란치스코 교황님, 해미읍성 방문을 환영 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방문자를 먼저 반긴다.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이곳 해미읍성을 찾아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는 것을 환영하는 주민들의 마음이다.
1790년 정조 때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여 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성지인 '해미읍성'에는 당시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던 걸까.
이곳에서는 세월이 흘러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 나온 뼈들 중에는 수직으로 서 있는 것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는 살아 있는 사람이 생매장 됐던 흔적이란다.
때문에 천주교 측에서는 이곳을 '무명 순교자의 생 매장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천주교 4대 박해 이외에도 이곳에선 지속적으로 이 일대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그 중 병인박해 때만 해도 조정에 보고된 이곳에서의 처형된 천주교 신자 수가 1000여 명으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다. 때문에 그 이전 80여 년 동안 처형된 숫자는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당시 감옥 터에는 손발과 머리채가 묶인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대로 썼던 호야나무가 지금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순교지에서는 볼 수 없는 '자리개질'이라는 처형방법이 자행됐다. 돌다리 위에서 두서 너 명이 천주교 신자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 메쳐 죽이는 방법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교 신자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은 해미읍성 서문 밖 바로 앞에 231㎡(70여 평) 정도의 좁은 순교지에 자리개질 했던 돌다리가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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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는 많은 숫자의 신자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시체 처리의 편리함을 위해 생매장형이 시행됐다. 신자의 수가 적을 경우에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개울 한 가운데에 있는 둠벙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형이 집행됐다. 천주교인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둠벙', 지금은 '진둠벙'으로 이름조차 바뀌어 불려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의 해미성지 모습은 1985년 4월에 해미본당이 설립된 후 전국 신자들의 성금 등을 통해 1998년 말 이곳 생매장 순교지를 중심으로 2만3100㎡(7000여 평)을 확보하게 됐다. 이후 2003년 6월 성당이 건립돼 봉헌됐다.
이렇게 조성된 생매장 순교지 일대는 순교자들이 이곳까지 죽음의 행렬을 하면서 기도하던 '예수 마리아!'소리를 '여수머리' 로 알아듣던 당시 주민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와 지금은 '여숫골' 이라는 이름의 땅이 돼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교황이 오는 15일 아시아청년대회 참가자들과 2시간여 동안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방문하게 될 충남의 또 다른 천주교 성지인 '솔뫼성지'도 주목 받고 있다.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불리는 이곳은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이다.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의 신앙이 싹튼 곳이다.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생가 복원을 결의한 뒤 2004년 9월 22일 생가 안채 복원을 완성했다. 1998년 7월 25일 충청남도는 성 김대건 신부 생가터를 충남도 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했다. 2005년 10월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을 완공했다. 기념관에는 그가 1845년 그린 조선전도를 비롯해 22편의 서한과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또 김대건 신부의 왼쪽 하악골(모조품)과 모발 등의 유해와 그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조선 교우들에게 남긴 '회유문' 등도 보존돼 오고 있다. 이외에도 충남 서북부지역에는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의 중심지답게 많은 성지들이 보존돼있다.
홍주성지(충남 홍성군 고암리)는 기록상 212명의 순교자를 포함, 무명 순교자까지700여 명이 순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있다. 성 안에는 순교자들이 갇혔던 감옥(증거터)이, 읍성 밖에는 교인들이 참수 당했거나 생매장당한 순교터와 매장터 등 3곳이 공존한다.
이곳에서 순교한 충청도의 첫 순교자 원시장(베드로)을 비롯해 방(프란치스코), 박취득(라우렌시오), 황일광(시몬)등 4명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돼 시복·시성을 위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한반도 전체에 걸쳐 아홉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자 대전교구 첫 번째 성당인 충남 아산시 인주면의 공세리 성지·성당은 신유·병인박해 때 32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곳으로 근대 교회건축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도지정 문화재 144호로 지정됐다.
연간 20만 명 이상의 내·외국인들이 찾고 있을 정도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순교와 믿음의 요람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성당으로도 그 명성이 대단하다.
이외에도 충남 당진군 합덕읍의 신리성지는 조선천주교회의 요람으로 초기부터 끊임없이 예비자, 신자, 순교자를 배출했다. 성지 내 초가집은 손자선(손도마, 1866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 성인의 생가인 동시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안주교, 1866 오천 갈매못에서 순교)의 주교관이자 조선 교구청이었다.
2004년 복원 된 생가(주교관)의 기둥과 뼈대는 옛날 그대로이며 대들보, 서까래, 주춧돌, 문지방 디딤돌, 집 지은 연도를 적은 상량문 등 상당 부분의 실물들이 그대로 사용돼 성인들의 숨결과 손때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뿐만 아니라 순교자들이 태어난 집과 마을, 거닐던 길 그리고 경작하던 농토도 그 지명들과 함께 그대로 유지돼 순교자들의 자취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