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장이 시장답지 않다?

[기고]시장이 시장답지 않다?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
2011.06.10 08:15

'슈퍼스타 K'. 대한민국을 오디션 열풍에 휩싸이게 한 방송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환풍기 수리공 출신 허각은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공정사회'의 상징적 존재가 돼버렸다. 올해 '슈퍼스타 K' 신청자 수는 벌써 170만 명을 훌쩍 넘어 2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라고 한다.

'롤러코스터'. 생활 속의 같은 상황에 처한 남녀의 각기 다른 행동을 흥미롭게 묘사한 '남녀탐구생활'이란 코너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블채널의 '킬러 콘텐츠'다.

이런 인기 프로그램들을 IP TV(인터넷TV)에서는 왜 볼 수 없었을까. 대형 케이블방송사들이 담합해 'Mnet'이나 'tvN' 같은 인기채널의 IP TV 공급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케이블방송사들은 IP TV가 유료방송시장의 경쟁자로 크는 것을 막아 자신들의 지역독점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그 결과 IP TV의 활성화가 지연되고, 약 2000만 명 유료방송 가입자의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케이블방송이든 IP TV든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담합행위를 하지 않고 가격과 품질, 그리고 서비스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이다.

시장이 시장답지 않은 또 다른 사례로 석유제품의 유통시장을 보자. 주유소 업자들은 한 번 특정 정유사 폴을 달면 더 싸게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가 있어도 마음대로 정유사를 바꿀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정유사들은 유통망, 즉 주유소를 수직계열화해 지난 10년간 정유 4사의 주유소 점유율 변화가 거의 없었다. 90년대 초중반 정유사 간 주유소 유치 경쟁이 활발했을 때 점유율 변화가 매우 컸던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정유사들이 서로 주유소 빼앗기 경쟁을 하지 않기로 '불가침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이 합의한 이른바 '원적관리'는 주유소가 거래 정유사를 A사에서 B사로 바꾸려 할 경우 A사(원적사)의 동의가 없으면 B사는 그 주유소와의 거래를 거절하는 방식이다. 프로선수가 구단을 옮기려 해도 원 소속 구단의 동의가 없으면 이적을 제한하기로 한 것과 비슷하다.

불가피하게 다른 정유사 계열 주유소를 유치하게 될 경우, 정유사 간에 서로 대응 유치를 양해하거나 주고 받은 것으로 쳐 정산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유사와 계약관계가 종료된 무폴 주유소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폴 변경을 제한했다.

정유사가 주유소를 빼앗아오려면 싸게 기름을 공급하거나 주유소에 자금 또는 시설지원을 늘려줄 수밖에 없는데, 서로 원적사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담합을 하니 얼마나 편했을까.

하지만 그 피해는 주유소, 나아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만약 정유사들이 경쟁을 했다면 주유소 확보를 위해 더 싸게 기름을 팔았을 것이고 결국 소비자가격도 내려갔을 것이다.

혹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제재로 방송수신료 또는 기름 값이 즉각 떨어질 것인지 묻는다. 조급하게 보지 말고 긴 호흡을 가져달라고 답하고 싶다.

어떤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고 사업자들이 오직 실력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시장의 진정한 모습이고, 이런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가격이 자연스럽게 안정되는 것이다. 경쟁을 제한하려는 행위를 하나 둘 근절해 나가면서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어 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경쟁당국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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