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의 삶과 업적을 조명합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과 성장, 사회에 남긴 영향과 유산을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다룹니다.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그리고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의 삶과 업적을 조명합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과 성장, 사회에 남긴 영향과 유산을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 있게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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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가 19일 밤 늦게 신 명예회장의 서울아산병원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서 씨는 친오빠 서진석 전 유기개발 대표 부부와 함께 취재진이 대부분 빠져나간 전날 밤 11시 10분쯤 신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30분쯤 머물다 떠났다. 신 명예회장은 국내에서 사업을 하며 37살 차이가나는 '제1회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어왔다. 1959년생인 서미경은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한 70년대 청춘스타다. 서씨는 1982년 돌연 일본으로 떠났는데 이듬해 신 명예회장의 딸을 출산한 것으로 밝혀졌다. 5년 뒤 신 명예회장은 서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신유미 씨를 호적에 입적했고, '차녀' 신유미씨는 롯데호텔 고문을 맡았다. 신 명예회장은 서 씨와 신유미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시네마 영화관 매점 운영권을 서미경씨 등이 최대주주인 회사에 헐값으로 넘겨 롯데쇼핑에 손해를 끼친 혐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롯데그룹 주 전반이 강세다. 일단 우선주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롯데지주우선주는 상한가에 근접하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롯데칠성우선주도 전날보다 10% 이상 오른 가격이 출발했다. 20일 증시에서 롯데지주 우선주는 전날보다 29.5% 오른 7만5000원에 거래를 시작해 곧바로 상한가인 7만5200원으로 직행했다. 롯데칠성 우선주도 14% 오른 8만원에 출발해 상승폭을 높이고 있다. 9시5분 현재 가격은 8만4000원이다. 이들 우선주 강세는 신 명예회장의 타계로 인해 롯데그룹 경영권이나 지배구조. 사업계획, 주주정책 등에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별세하면서 셋째 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59년생인 서미경은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연예계 활동을 한 70년대 청춘스타다.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9년 영화 '피도 눈물도 없다' '푸른 사과'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서미경은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롯데가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서미경의 나이는 만 13세. 이후 그는 롯데제과 전속모델로 활약했으며, 드라마와 잡지모델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대 '핫 아이콘'으로 부상한 서미경은 1973년 영화 '방년 18세'에 주연으로 출연한 후 '여고교사' '청춘 불시착' '혼혈아 쥬리' '김두한 제3, 4편' 등 영화에 출연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1년 유학을 떠난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2년 뒤인 1983년 신 명예회장과 사이에서 딸을 낳은 사실이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신유미는 현재 롯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재계 1세대 경영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신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아들인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비롯, '롯데가(家)' 구성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이날 오후 4시29분 숙환으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임종을 맞이했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출장 중 상황을 보고 받은 뒤 급히 귀국했다. 신 명예회장의 부인인 하츠코 여사도 지난주부터 곁을 지키며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에 차려졌다. 상주인 신동빈 회장은 오후 5시20분쯤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 등 주요 임원들과 함께 일찌감치 빈소로 들어갔다. 신동주 회장은 오후 5시50분쯤 부인 조은주씨와 함께 빈소를 찾아 10분쯤 머물다가 자리를 떠났다. 공식 장례일정은 오후 7시부터 시작됐다. 두 형제는 오후 8시18분쯤 동시에
19일 타계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형제들과 잦은 불화를 빚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둘째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의 경우 형인 신 명예회장과 사이가 틀어져 아버지 제사도 따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롯데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10남매(5남 5녀)의 장남인 신 명예회장은 사업초기 형제들을 경영에 참여시켰다. 2남이 신철호 전 롯데사장, 3남이 신춘호 농심 회장, 4남이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5남은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다. 유일하게 사업에 참여하는 여동생이 5녀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이다. 형제들중 신선호 회장만이 우호적인 관계였다. ━신격호 "라면사업 안된다"에 의절한 신춘호 농심 회장 ━첫째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사장(작고)의 경우 신 명예회장이 1950년대 한국사업을 맡겼으나 서류를 위조해 회삿돈을 횡령하려다 구속됐다. 이후 신 명예회장과 사이가 멀어졌고 독립해 제과업체를 차렸지만 실패하고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둘째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 명예회장의 일본사
껌 하나로 시작해 국내 5대 그룹 롯데를 만든 신격호 명예회장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장남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분쟁 때문이다. 그동안 베일에 감춰졌던 롯데의 의사결정 방식과 지분구조까지 드러나며 '일본 기업'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또 고령의 나이로 휠체어를 탄 채 법정까지 나가야 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민낯 드러낸 '형제의 난'━롯데의 '형제의 난'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월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였던 신 전 부회장은 대표에서 해임된다. 이후 2015년 7월 신 회장이 대표로 선임된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의 해임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롯데를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는 신 명예회장의 원칙을 어겼기 때문으로 봤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부터 한국 롯데 지배구조의 핵심에 있는 롯데제과 지분을 수차례 사들였다. 신 전 부회장은 해임에 불만을 품고, 신 명예회장을 앞세워 경영권 복귀를 시도했다. 아버지인
━거화취실(去華就實)━롯데그룹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집무실에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도 혼자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 달리 사무실은 협소했다. 크기나 장식이 중소기업 사장 집무실 정도였다. 이는 워낙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신 명예회장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고객과의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합니다."━신 명예회장이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할 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우유 배달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걸로 유명했다. 그러다보니 주문이 늘었고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신 명예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 이 모습에 반한 일본인이 선뜻 사업 자금을 내주기도 했다.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장으로 달려가기를 당부합니다."━한국과 일본을 한 달씩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과 기업보국(企業報國, 기업으로 국가에 기여한다).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은 일제시대 맨손으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 껌사업에서 시작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를 재계 5위 굴지의 기업으로 일궈낸 재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특히 최고가 될 때까지 집중하고 한우물을 파는 뚝심과 실리의 경영자였다. 주변에서 명실상부한 그룹이 되려면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사 하나쯤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자 그는 "무슨 소리,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고 일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 명예회장은 1949년 일본에서 제과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대통령의 요청도 있었지만 언젠가 고국 근대화에 일조하겠다는 '보국안민'의 소신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다른 1세대 창업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한일양국을 오가는 '현해탄 경영', '셔틀경영'이 시작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신격호 롯데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고인은 선구적 투자와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식품·유통·관광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그룹 임직원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19일 세상을 떠나면서 롯데그룹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우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신 회장이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과의 '형제의 난'에서 승리하며 경영권을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다만 신 회장의 한국롯데 지주체제 완성을 위한 호텔롯데 상장이 숙제로 남아있다.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서는 최대주주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재계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의 별세에도 신 회장의 원톱 체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율은 0.4%다. 주요 주주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13.9%), 임원지주회(6%) 등이다. 신 전 부회장은 최대주주인 광윤사 지분 50%+1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종업원지주회, 관계사, 임원지주회가 신 회장을 지지하고 있다. 앞서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진행된 이사회에서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9일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별세한 것과 관련해 “기업보국의 신념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 아낌없이 투자한 신 명예회장의 헌신은 산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를 재건하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초석이 됐다”며 애도했다. 전경련은 “우리 경제계는 반세기 넘게 한국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에 헌신한 신 명예회장이 별세한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선구자이며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을 통해 롯데를 국내 최고의 유통·식품 회사로 성장시켰다”며 “서비스·관광·석유화학 분야까지 사업의 범위를 넓히며 다양한 영역에서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렵다”며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칭만큼 한일 양국간 경제 교류에 힘쓴 회장님의 타계는 우리 경제의 큰 아픔과 손실"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또 “우리 경제계는 고인이 평생 강조하신 ‘기업보국’과 ‘도전의 DN
'상전' 신격호, 창업자 시대 막을 내리다. 시가 총액 상위 10대 그룹 창업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상전(象殿, 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19일 9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밀항해 28세에 (주)롯데를 시작으로 기업을 키워, 국내에서도 유통신화를 이끌어 재계 5위까지 끌어올린 거인 신격호. 그가 타계하면서 한국 재계를 이끌던 대표적인 창업주 1세대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그룹(2019년 11월 기준)은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화, 신세계다. 이 가운데 삼성과 신세계를 창업한 이병철 회장(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생)은 1987년 11월19일에,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을 창업했던 정주영 회장(1915년 11월 25일, 강원도생)은 2001년 3월 21일에 타계했다. 앞서 SK그룹 최종건 창업주(1926년생, 경기도 수원생)는 지천명도 되기 전인 이른 나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