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스타일 美 건국 250주년]

미국이 오는 4일(현지시간) 건국(독립선언) 250주년을 맞아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워싱턴 DC 내셔널몰의 초대형 박람회를 시작으로 뉴욕항의 거대 범선 퍼레이드, 국립공원 인증샷 투어 등 전국에서 기념행사가 이어진다. 독립기념일 당일에는 세계 기록 경신을 예고한 '86만발 불꽃놀이'가 펼쳐지며 축제의 정점을 찍을 예정이다. 그러나 화려한 볼거리 뒤에 분열된 민심도 자리한다.
-건국 기념물서 다문화·소수자 삭제 논란
-의회·백악관 정면충돌…9개 주 행사참여 거부
-"내 미국 이런 모습 아냐"…엇갈린 민심

"제가 평생 믿어온 미국은 피부색과 배경이 달라도 하나의 가치 아래 모일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지금의 건국 250주년 축제는 특정 진영의 승리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생각이 다른 이웃을 배제한 생일파티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미국 건국 250주년(7월4일)을 나흘 앞둔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은퇴 교사 마이클씨(67)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이민자의 나라', '샐러드볼'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가르쳐왔다는 그는 최근 건국 기념행사를 두고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는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이 건국 250주년 행사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0%는 "극단적인 갈등으로 미국이 앞으로 250년을 더 버티지 못하고 분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건국 250주년 축제가 역설적으로 미국 사회의 깊숙한 분열을 드러낸 무대가 된 셈이다.
이런 갈등은 교육 현장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연방 정부가 주도하는 건국 250주년 기념 조형물과 공공 교육 자료에서 다문화·성소수자·소수 인종 관련 내용이 대거 삭제되거나 축소됐다. 당초 다양성과 포용이 중심이었던 초기 기획안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애국주의를 훼손한다는 보수 진영의 압박에 지워졌다. 교과서와 기념관에서 유색인종 이민자의 기여도 표현이 줄면서 이민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우리의 역사를 지우려 한다"는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때마침 이란과 전쟁을 치르면서 여론은 더 분열되고 경제적 충격도 안게 됐다. 민주-공화 양당 지지층에 따라 이란전쟁에 대한 의견은 극과극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이란전쟁을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다. 막대한 전쟁비용도 부담이다. 물가상승에 따라 금리인상 압력이 커지고 이는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큰 미국 정부가 갚아야 할 이자 비용을 늘리게 된다.

◆ 의회·백악관 준비 따로…다양성과 통합의 메커니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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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생일파티를 이끌 사령탑마저 두 조각이다. 연방의회에서 여야 합의로 초당적 준비위원회 '아메리카 250'이 출범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백악관 직속기구로 '프리덤 250'을 따로 세웠다. 의회가 배정한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예산 중 상당액이 백악관 직속 기구로 전용, 여야 공방이 극에 달했다.
정치권의 충돌은 축제의 성격을 180도 바꿨다. '아메리카 250'은 미국의 250년 역사를 성찰하고 다양성을 아우르는 학술·문화 행사를 기획했지만 '프리덤 250'은 애국주의를 과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악관 앞 UFC 경기 개최나 워싱턴DC 시내 한복판을 질주하는 인디카 레이싱(프리덤 250 그랑프리) 같은 행사로 가득한 무대에서 통합 메시지는 자리를 잃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정부가 건국기념일을 정치 선거 운동판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뉴욕 등 최소 9개 주정부가 연방정부의 공식 250주년 축제에 불참하고 자체행사를 따로 연다. 50개 주의 '연방'인 미국에서 주 정부들이 건국기념일을 보이콧하는 초유의 분열이다. 뉴욕타임스 대표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건국 이래 250년 동안 미국을 지탱해온 정체성은 다양성과 이를 하나로 묶어낸 통합의 메커니즘이었다"며 "이민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이를 정치권력으로 이용하려는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미국이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생일을 맞았다"고 말했다.

-7월4일 독립기념일 전후로 행사 풍성

USA투데이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서 열리는 독립기념일 전야 기념행사에서 연설한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고 향후 미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전야제 행사에서는 불꽃놀이와 군악대 공연, 군용기 시범비행, 군 장병 헌정 행사 등이 함께 열린다. 러시모어산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하는 건 트럼프 집권 1기였던 202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러시모어산은 미국 건국과 발전을 상징하는 대통령 4인(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조각돼 있는 랜드마크로 유명하다.

◆ 불꽃 84만발 펑펑…세계기록 바꾼다
트럼프 대통령은 건국 250주년을 맞아 열리는 각종 기념행사의 전면에 나서며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앞서 백악관에서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로 홍보된 UFC 대회를 개최했고, 워싱턴DC 내셔널몰에서는 '위대한 미국 박람회' 개막 집회를 열었다. 당초 개막식엔 대규모 콘서트가 예정됐으나 가수들이 행사의 정치적 성격을 이유로 출연을 취소하면서 집회로 전환됐다.
워싱턴DC는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독립기념일 주간 워싱턴DC 중심가의 호텔 예약률은 지난해 대비 17% 이상 늘었다. 특히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이 인접한 내셔널몰 주변의 고급 호텔들은 만실을 기록 중이다.
독립기념일 당일 워싱턴DC에선 '미국에 바치는 경의'라는 의미의 '살루트 투 아메리카' 행사가 열린다.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관을 잇는 대규모 공원인 내셔널몰을 중심으로 하루종일 공연과 기념행사가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한다.
이날 밤엔 역대 최대 규모의 불꽃놀이도 예정돼 있다. 세계 기록 경신을 위해 약 40분에 걸쳐 86만발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을 예정이다. 공연을 맡은 펜실베이니아 소재 파이로테크니코는 "이번 행사는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애국적 장관일 뿐 아니라 불꽃놀이 역사에 남을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뉴욕서 에어쇼, 선박 퍼레이드…8월 워싱턴DC 레이싱
3일부터 8일까지 뉴욕항에선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해양 축제 '세일 포스 250(Sail 4th 250)' 행사가 개최된다. 세계 각국의 대형 범선과 해군 함정이 뉴욕항에 집결해 역대 최대 규모의 범선 퍼레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4일엔 미 해군 최정예 비행시범단인 블루엔젤스가 뉴욕과 뉴저지항 상공에서 에어쇼를 펼친다. 블루엔젤스는 매년 메모리얼데이를 기념해 롱아일랜드 존스비치에서 에어쇼를 선보였으나 올해는 건국 2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연례 일정을 독립기념일 주간으로 옮겼다.
또한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 홀, 뉴욕 자유의 여신상, 독립전쟁 전적지 등 전국 각지에서도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행사가 진행된다.
행사는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8월 말엔 '프리덤 250 그랑프리'로 명명된 레이싱 경기가 워싱턴DC에서 열린다. 백악관 인근 도로를 포함한 코스에서 경주용 자동차들은 시속 약 300㎞로 질주하게 된다.

국가적 기념일인 미국 건국(독립) 250주년을 앞두고 건국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잇따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얼굴과 이름을 새긴 기념물이 제작되거나 각종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를 강조한 연설이 부각되면서다.
◆ "미국 리더십 보여주는 기념 여권" vs "왕이 되고 싶은 사람 왜 기념"
1일 외신을 종합하면 건국 250주년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의 초상화와 서명을 새긴 기념 여권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직접 여권 이미지를 올리며 "'환영합니다, 그러나 똑바로 행동하세요'라고 적힌 미국의 새 여권"라고 썼다. 백악관도 SNS X에 '애국자 여권'이라는 문구와 함께 여권 이미지를 공개했다. 독립선언문을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먹을 쥔 채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을 앞세운 여권은 건국 250주년 기념 행사 '그레이트 아메리칸 스테이트 페어' 국무부 전시관에서도 공개됐다. 국무부는 USA투데이에 "미국인들이 세계를 여행하며 자랑스럽게 휴대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며 "미국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한정판 기념 여권"이라고 소개했다. 해당 여권은 오는 6일부터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워싱턴 여권국에서 신규로 신청하는 미국 시민권자에게 발급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여권뿐만 아니라 화폐에도 트럼프 대통령 얼굴을 새기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재무부가 트럼프 대통령 초상화를 새긴 250달러 지폐 발행을 추진했지만 연방법에 가로막힌 상태다. 연방법에선 살아있는 사람의 초상화를 지폐에 새길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공화당에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독립기념일은 미국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지 왕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면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에 맞춰 '트럼프 계좌'를 내놓을 예정이다. 2025년부터 2028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에게 1000달러(약 156만원)의 초기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 '트럼프 집회' 된 국가적 행사…취임 후 업적 강조하는 자리로

국가적 기념 행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강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당일인 4일 치러지는 대규모 행사를 아예 '트럼프 집회'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행사를 예고하며 "7월4일 아름답고 안전한 워싱턴DC에서 가장 화려한 트럼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했다. 워싱턴DC에서 역대 최대 규모 불꽃놀이가 열린다.
뉴욕항에선 세계 각국 배들이 모여 범선 퍼레이드를 벌인다.
앞서 지난달 24일 '위대한 미국 박람회' 개막 집회도 사실상 '트럼프 집회'로 치러졌다. 당초 대규모 콘서트가 예정됐지만 가수들이 정치적 성격을 이유로 출연을 거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경제 업적과 이란전쟁에서 거둔 성과를 강조했다. 이 때문에 국가적 기념 행사를 선거 유세식 정치 행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 250억달러를 들여 미국 국기의 짙은 푸른색으로 페인트 칠을 했던 링컨기념관 '반사연못'은 트럼프 대통령의 더 큰 구상 중 일부였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명분삼아 수도 워싱턴 DC 곳곳을 개조하는 일이다. 아직 첫 삽도 뜨지않은 개발 계획이 여러 건이다.
1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원칙은 '활용도가 낮은 토지를 최대한 활용해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새 '미국영웅국립정원'을 지어 미국의 위인 250인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그 부지로 포토맥 강변의 웨스트 포토맥 공원을 지정하면서 "최고급 수변 부동산"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은 내셔널몰과 맞닿아 있어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워싱턴 DC의 상징적 공간이다. 인근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관, 마틴 루터 킹 기념관 등 미국의 주요 국가 기념물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의미보단 부동산 가치를 중요하게 본 셈이다.
이와 함께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공공 골프장은 챔피언십 수준의 코스로 탈바꿈한다. US 오픈, 라이더 컵, PGA 챔피언십 및 기타 주요 PGA 투어 대회를 포함한 메이저 골프 대회를 이곳에서 개최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다.
◆파리 개선문보다 큰 '트럼프 아치' 계획…공공 골프장도 재개발

또 링컨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사이 '메모리얼 서클'에는 파리 개선문을 본 뜬 높이 250피트(약 76m)짜리 아치형 독립문이 세워진다. 메모리얼 서클은 링컨기념관에서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어지는 원형 광장으로 현재는 잔디광장과 조각상 일부만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활용도가 낮은 땅"이라고 지목하면서 독수리 조각상으로 장식된 독립문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아치'로 불리고 있다.
백악관 이스트윙 자리에 신축 연회장은 이미 첫삽을 떴다. 트럼프 행정부는 1942년 지어진 이스트윙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약 360만ft³(세제곱피트·약 1만 1940㎥)규모의 대규모 연회·행사 공간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민간 기부금으로 짓겠다고 했지만 공사비가 초기 추산 2억 달러(약 2900억원)에서 현재 6억 달러(약 8700억원)까지 불어난 상태다.
웨스트윙 옆 아이젠하워 행정관(EEOB)은 백악관과 똑같은 하얀색으로 칠해질 예정이다. 이곳은 1870년대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국무부(전쟁부)와 해군부 소속 공무원들이 이용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못생겼다(ugly)", "회색은 장례식에나 어울리는 색"이라고 불평했다. 주변 경관 어울리지 않고 백악관과도 상징적인 통일감이 없다는 게 공사 이유다.
◆기념물 설치제한법 위반논란, 심의도 졸속?
이 같은 계획은 수도를 중요도에 따라 3개 구역으로 나눠 기념물 설치를 엄격히 제한한 기념물법(Commemorative Works Act)을 정면으로 위반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백악관을 중심으로 한 내셔널몰은 3개 구역 중 'Reserve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신규 기념물 설치는 물론 박물관, 방문자 센터 건립을 금지하고 있다.
웨스트 포토맥 공원, 메모리얼 서클 등 역사적 기념물이 위치한 나머지 주요 장소는 기념물법에서 '에어리어 1' 또는 '에어리어 2'로 지정하고 있다. 이곳에 신규 기념물 설치시 의회 승인을 받거나 심의 기관에서 "지속적인 역사적 중요성"을 충족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 승인 없이 강행 의사를 밝혔고 모든 건설 계획에서 소송이 뒤따르고 있다.

졸속 심의 절차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백악관 연회장의 경우 소관 위원회가 건설 계획을 약 12분간 논의한 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초기 구상부터 최종 시공도면이 확정되기 까지 3개월이 걸렸다. 전 워싱턴DC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인 토마스 갈라스는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초기 구상부터 최종 시공 도면까지 18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필 멘델슨 워싱턴 DC 시의회 의장은 "여기는 국민의 집이지, 도널드 트럼프나 조 바이든, 혹은 차기 대통령의 집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동산 개발 역량을 앞세워 비판 여론을 차단하고 있다. 데이비스 잉글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건축가이자 개발자이며, 미국 국민은 이 프로젝트가 그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