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린 여러 전문가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걸린 여러 전문가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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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21세기의 국가 경쟁력 척도를 사회적 신뢰도로 봤다. 20세기에서 산업화의 정도나 속도로 국가 발전을 평가했으나 이제는 사회가 산업화만으로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 21세기는 개인적 신뢰도가 아닌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21세기에서의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쪽에 속한다. 사회적 신뢰도가 그만큼 낮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문제되는 사건을 보자. 언제나 처음에는 '절대로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이 있다. 그러나 곧 말이 바뀌는 상황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우리사회에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경제는 경제대로 물건의 진위여부를 가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등에서는 물건의 정량, 품질이 표시대로 돼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최근 금리 조기인상이 필요하다는 견해와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조기 금리인상론자들은 선제적 금리인상의 시기를 놓칠 경우 금년 하반기 경 경기과열이 우려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설비투자와 수출이 아직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고 물가상승압력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경기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더 적절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필자는 금리인상을 일찍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최근 실물경제 상황 및 대내외 여건을 살펴볼 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경기상승세를 위협할만한 뚜렷한 위험요인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금년들어서도 제조업생산 및 서비스업활동 지표는 증가세가 확대되고 있다. 낮은 금리수준 및 교역조건의 개선 등을 감안하면 민간소비 및 건설투자 등 내수가 조만간 크게 위축될 가능성은 낮다. 특히 그간 경기회복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던 수출도 금년들어 조업일수 1일당 수출금액이
자만심이 가장 큰 적일 수 있다. 정책 당국자 측면에서는 불균형인줄 알면서도 적절한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고 일정 기간 과실만 향유하려 한다면 세대를 넘어서는 과오를 저지를 지도 모를 일이다. 어마어마한 경제규모를 가진 미국이 과잉투자로 헤메던 작년에도 한국은 견조한 소비활동과 정부지출로 국민총생산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랜 기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한국의 자랑거리였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과 비교하여 더 잘했다고 하는게 뭔가 꺼림칙해서 감히 A등급의 국가이자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일본과 비교하면서 한국의 역동성을 뽐내곤 하였다. 경제의 펀더멘탈을 가장 많이 주시한다는 자본시장에서도 이런 자랑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거나 한쪽면만 바라본다면 이것은 매우 비생산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일본도 자산시장이 꿈같은 시절을 향유하던 때는 소비활동이나 가계대출이 왕성했었을 것 아닌가라는 소박한 질문을 마음속으로 갖고 있다가 일본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에게 자료를
지금까지 대선 후보자간 이념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때로는 이 논쟁이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겉으로나마 지역대결구도를 탈피해 후보자간 이념 검증이 중요 사안으로 등장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원칙적으로 어떤 이념적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느냐는 일상의 경제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가 노동자인가 기업인인가, 재산이 많은가 적은가 등 그가 처한 경제적 위치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보수, 진보 논쟁은 국민이 이를 얼마나 절실하게 인식하는가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과 오랜 유교적 관습, 이런 것들이 우리를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게 하는 조건이다. 또 생활력이 강하고 경쟁심이 강한 기질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각자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우선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역대의
지금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공통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오를만큼 올랐고 내가 사고싶은 종목들도 두배가까이 올라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래 주식시장이란 경기상승을 배경으로 그 탄력을 받는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형태이다. 하지만 최근 십수년동안 한번도 기록된 적이 없는 6개월 연속 양선의 숨가쁜 랠리는 과거 경기가 본격적으로 상승국면을 타고있던 경우에도 없었던 사례로, 현재의 회복초기국면 정도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할수있다. 이런 정도의 경기회복정도로는 주가가 꿈적도 안할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번 랠리를 가능하게 한 이면에는 어떤 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적어도 현재 진행중인 상승트렌드에서는 경기와 실적이라는 전통적인 테마는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주연은 아니다. 경기가 회복되고 조만간 상승국면에 진입한다면 대부분의 주가가 골고루 상승혜택을 누려야 하는데 지금의 흐름은 철저히 우량주 위주로 집중되고 있으며 비우량주의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벤처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경제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기도 하였고 지금도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지만 벤처산업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 기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 벤처업계의 동향은 우려스럽다. 한국 기술벤처의 상징적인 기업들이 부실 경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벤처기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까지 난무하고 있다. 한국의 벤처기업중 최첨단 제품을 만들어 내 세계적인 기업으로 내세울 만한 기업도 없는 실정이다. 미국에 의욕적으로 진출했던 벤처기업들도 다수가 고배를 마시고 철수했다. 한국의 벤처기업들이 실속없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 실리콘밸리의 벤처산업과 비교해보자. 첫번째로 방만한 경영이다. 즉 창업초기의 사업모델을 벗어나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실패를 보는 경우이다. 메디슨이 가장 좋은 예다. 메디슨은 초음파 의료장비 부문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 벤처산업의 간판이었다. 그러나 본
몇해전 이집트에 다녀왔다. 한국 교민은 500여명 정도였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랍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이 이집트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얄라얄라"라고 한다.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특성은 은근과 끈기라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사회의 엄청난 변화속도에 우리는 이미 무감각해져 있다. 문제점은 생각할 시간도 없다. 은근과 끈기는 이제 찾아볼 수도 없고, 미덕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 어디에 기다림이 있는가? 모든 일의 신속처리를 철칙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짧은 시간에 이뤄낸 경제성장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던가? 빨리빨리 문화는 근대화와 그 시점을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나라들이 300년, 400년 걸려 이뤄낸 것을 30년에 이뤄낼 때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1 더하기 1은 언제나 2다. 빨리하는 것이 언제나 좋을 수 없다. 연평균 10%가 넘는 경제성장률만 자랑할 수 없다. 우리 기억에 생
저금리와 기업수익의 회복을 기반으로 주가가 급등, 여의도 증권가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작년 9월 이후 주가가 거의 두배나 상승했는데 아직도 시장 주가수익배수(PER)가 10배를 밑도니 당분간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 삼성증권이 수익추정을 하는 주요 92개 기업으로 이뤄진 삼성유니버스에 의하면 시장 주당순이익(EPS)이 금년에 170% 증가한 후 내년에도 26%의 증가가 예상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서 시장의 레벨 업(re-rating)이 이뤄진다면 지수 1,500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지 않아도 금년에 지수가 1,000을 쉽게 돌파할 것 같다. 그러나 한국 경제와 증시를 둘러싼 두가지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있지만 생각해 보지 못한 점도 있을 수 있다. 요즈음 외국인 투자가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자기가 생각 못한 복병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보다 경험이 많고 여러 시장에서 위기를 겪어본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과 관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별하는 기준은 시장경제의 존재여부이고 시장경제의 중심에 주식시장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꽃은 주식시장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소중하다면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도 이에 상응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객장에 TV 카메라를 들이대면 모두가 얼굴을 가린다는 말이 있듯이 투자자 자신들도 주식투자에 별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지만 개미투자자들은 기업으로부터는 소액투자자이기 때문에 무시당하였고 작전세력으로부터는 봉취급을 당해왔다. 더구나 투자자 보호를 감독의 최우선목표로 삼아야할 감독당국으로부터도 투자자보호는 관심 밖이었다. 건전한 주식투자층이 존재하여야 중산층이 형성된다.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사회가 안정되고 안정된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건전한 투자층의 육성은 자본시장에 국한된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고 국가번영을 위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영국에서는 최초로 한국학 연구기관이 설립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학교와 한국 지도층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패한 직후 이 학교의 클레어 홀에서 머물며 연구생활을 한 적이 있고 작년 12월에는 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바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영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영국은 이제는 비록 미국처럼 국제관계를 좌지우지할 실질적인 힘과 수단을 가진 나라가 아니지만, 한때 세계를 경략해 본 경험에서 얻은 특출한 능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정세 흐름과 그 민감한 변화를 읽어 내고 여기에 자국의 이해관계를 결부시키는 능력이 그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파이낸셜 타임즈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관련 분석기사들이 계속 실리고 있는데 이 달초의 “아시아가 눈을 뜨다(Asia awakes)"라는 기사에서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금리 조기 인상론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 저금리 정책이 지속될 경우 경기가 과열될지 모른다는 것이 그 근거다. 특히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가격의 버블 가능성과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높다. 경기 회복세가 지나치게 빠를 경우 물가상승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금리인상과 같은 대응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금리인상을 서둘러야 할 상황은 아니다. 최근의 경기회복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건설투자와 서비스업이며 그 뒤를 제조업이 따르고 있다. 과거 경기회복이 주로 세계경제 호황에 따른 수출 증가와 제조업의 설비투자에 의해 이뤄졌던 것과 대조적이다. 수출이 1/4분기에 10% 이상 감소하고 이제 2/4분기에 겨우 증가세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경기 과열을 우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비투자 역시 지난해 11% 가까이 줄어든 이후 미미한 회복
금년 들어 소비 및 건설투자 등 내수 호조세가 강화되고 수출회복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정부 정책기조 변화에 대한 요구와 선제적 금리인상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내수를 바탕으로 한 경기회복세가 기대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앞으로 수출 및 설비투자 회복세까지 가세할 경우 상반기 중 이미 잠재성장률 수준에 근접하고, 하반기에는 그 수준을 넘어 총수요압력이 늘어나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세계경제는 금년들어 미국을 선두로 아시아권이 회복세로 접어들었고 , 하반기에는 시차를 두고 유로, 중남미, 일본순으로 경기회복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경기의 체온계 역할을 하는 유가 및 원자재가격은 이미 지난해 말 이후 점진적인 상승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경기의 회복 추세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 경기순환은 수출과 설비투자에 의해 주도되고 시차를 두고 내수가 후행적으로 따라오는 모습이었다. 즉 후행성이 강한 내수가 사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