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떠난다, 한국을
간호사들이 떠나고 있다. 단순한 인력유출의 문제가 아니다. 간호 인력의 부족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국민 건강 저하→의료 관련 사회비용 증가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국민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메르스의 급속한 전파와 신생아 집단감염이 대표적이다. 좌시할 수 없는 간호사 유출의 현장과 문제, 대책을 짚어 봤다.
간호사들이 떠나고 있다. 단순한 인력유출의 문제가 아니다. 간호 인력의 부족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국민 건강 저하→의료 관련 사회비용 증가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국민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메르스의 급속한 전파와 신생아 집단감염이 대표적이다. 좌시할 수 없는 간호사 유출의 현장과 문제, 대책을 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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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간호사들이 환자를 대할 때 윤리와 간호원칙을 담은 나이팅게일 선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불규칙한 교대, 심각한 감정노동,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과 같은 직장 괴롭힘 문화, 인력 부족에 따른 임신순번제…입사와 동시에 사직을 꿈꾼다. 10년 차 간호사 박모씨(32)는 지난해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높은 근무 강도는 물론 간호사 조직의 괴롭힘 문화 '태움'을 더는 견딜 수 없어서다. 박씨는 신규 간호사 시절 선배에게 '머리에 똥 찼냐', '벽에 머리 박고 죽어라' 등 갖은 폭언을 들었다. 머리나 허벅지를 맞는 일도 일상이었다. 이제는 선배로서 또 누군가를 괴롭혀야 할 판이다. 업무와 이민 준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지만 박씨는 현재 생활을 벗어나고자 이를 악물고 공부 중이다. 과중한 업무와 경직된 조직문화에 지친 국내 간호사들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19일 대한간호협회에 따
전북의 한 간호대학에 다니는 3학년 문모씨(22)는 최근 진로에 고민이 생겼다. 언론과 지인 등을 통해 간호사들의 악습인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집단 괴롭힘)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접하면서다. 문씨는 암에 걸린 할머니를 보살피며 간호사를 꿈꿨지만 그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틈날 때마다 공무원 등 다른 길도 알아보고 있다. 만약 간호사를 한다고 해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간호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간호사 지망생부터 현직 간호사까지 절망적 현실에 꿈을 접는다. 고질적 간호인력 부족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1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2016년 기준)는 한국이 3.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9명의 38%에 그친다. 2030년에는 전체 필요 간호사 인력의 44.5%에 달하는 15만8554명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다. 정부는 간호인력
아직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3월의 새벽. 대학병원 5년차 병동간호사 이모씨(27)의 출근길은 고달프다. 16일 오전 5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기는 이른 시각이라 이씨는 택시를 타고 출근한다. 이씨가 들어선 병원 현관에서는 밤샘 근무자의 타자 소리만 들린다. 이씨는 정해진 일정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한다. 신규(수습) 시절 선임 간호사에게 "신규가 일찍 안 오고 뭐하냐"는 꾸중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습관이다. 교대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간호사들에게 2시간 초과 근무쯤은 일상이다. 이씨의 첫 업무는 환자 파악이다. 컴퓨터로 담당 환자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나눠줄 약을 점검하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오전 7시 정식 근무 시작과 함께 이전 근무자에게 업무를 인계받는다. 교대시간은 신규 시절 이씨에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선임과 가장 오래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선임은 "난 신규 알레르기가 있다", "신규 다음 근무를 받으면 화가 나"라는 식의 면박
"한국에서도 알았지만 막상 와보니 차이가 크다. 미국에 오는 게 답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뉴욕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장찬우씨(30)는 확신에 가득 찬 말투였다. 장씨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간호사 이민을 위해 준비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장씨는 미국에 오기 직전 2년 동안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남자 간호사인 그는 당시 생활을 군대와 비교했다. 오히려 군대의 갈굼(군기를 잡기 위한 고의적 괴롭힘)보다 간호사들의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집단 괴롭힘)이 한 수 위라고 혀를 내둘렀다. 장씨는 "바쁜데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선배 간호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중증도 분류와 같이 경험이 쌓여야 할 수 있는 업무를 시켜놓고는 못 한다고 혼내기 일쑤였다. 미국의 문화는 달랐다. 간호사끼리는 물론 의사와도 동등한 관계로 일했다. 장씨는 "한국에서는 의사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메르스 사태와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의 신생아 집단 감염 사건은 간호사의 인력난,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 부실한 교육시스템의 복합적인 문제가 바탕에 깔렸다. 이런 현실에 계속 눈을 감는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나아가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소선 연세대 간호대 교수는 “간호사 한 명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시각으로는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며 “간호사의 인력난과 더불어 훈련이 부족한 현실 등 간호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신규 간호사를 숙련된 경험·기술을 필요로 하는 중환자실 등에 무작정 투입하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도 1~2년차 밖에 되지 않은 신규 간호사가 투입됐다. 배경은 고질적인 인력난이다. 김 교수는 "수행능력이 준비된 뒤 중환자실에 배치하는 게 엄연한 순서"라며 "예컨대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의 경우 3년 이상 경력자에 한 해
국회가 '태움' 악습끊기에 나섰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파장이 커진 데 따른 움직임이다. 의료기관의 직장내 괴롭힘은 당사자의 피해 뿐 아니라 의료 행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 13일 의료기관 내 괴롭힘의 정의를 구체화하고 이에 대한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의료기관 괴롭힘(태움) 방지법'이다. ‘윤소하 안’엔 △의료기관 내 괴롭힘 행위 정의 △괴롭힘 발생에 따른 의료기관장 및 개설자의 조치사항 규정 △괴롭힘 예방교육 실시 의무화 △의료기관 인증기준에 괴롭힘 예방여부 추가 등이 담겼다. ‘태움’이란 간호사간 위계를 바탕으로 한 직장내 괴롭힘을 지칭하는 말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도 지난달 23일 신입사원 괴롭힘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 놨다. 간호사의 '태움'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괴롭힘도 막자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