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속쏙알기(3) 의료
지난해 11월 귀순한 북한 병사 몸에서 나온 기생충은 북한 보건의료 실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북한은 의약품 부족으로 감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무상치료제는 기능을 상실한 채 장마당이 의약품 거래의 중심이 된 지 오래다. 북한 보건의료 현황과 남북 보건분야 협력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지난해 11월 귀순한 북한 병사 몸에서 나온 기생충은 북한 보건의료 실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북한은 의약품 부족으로 감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무상치료제는 기능을 상실한 채 장마당이 의약품 거래의 중심이 된 지 오래다. 북한 보건의료 현황과 남북 보건분야 협력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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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박상민 교수가 2013년 의사 출신을 포함한 북한이탈주민 20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응답자의 69%가 암시장에서 약을 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약이 밀반출되고 유통 단계를 거칠수록 약값이 계속 뛴다고 했다. 약이 귀하고 음성적으로나마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증언이다. 오늘날 북한 보건의료 시장의 민낯이다. 북한 사회주의헌법 제56조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명시했다. 이는 이상적 구호일 뿐 현실은 참혹하다. 약이 부족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국제기구 등으로부터 원조를 받아도 환자에게 가는 물량이 별로 없다. 빼돌려진 의약품은 고가에 팔린다. 북한 무상의료체계는 오래된 풍문처럼 자취를 감췄다. ◇무상의료·호담당구역제… '메디토피아'의 꿈 = 무상의료는 1946년 1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 채택됐다. 초기에는 노동자와 사무원, 부양가족으로 한정됐지만 적용대상이 점차 확대돼 1960년 비로소 전국 모든 인민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호담당구
북한은 결핵, B형간염, 말라리아 등 각종 감염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감염성 질환은 북한 전체 사망자 원인의 31%를 차지한다는 게 세계보건기구(WHO) 판단이다. 한국(5.6%)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북한 감염병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가 기생충이다. 북한의 기생충 감염률은 우리나라의 1970년~1980년대 수준으로 파악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건강조사(2005년~2008년)에 따르면 청소년의 35.5%, 성인의 24.6%가 기생충에 감염된 것으로 추산된다. 남한보다 1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북한에 기생충 감염환자가 많은 이유는 곡물 재배에 인분을 사용하고 민물고기를 날로 먹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고 치료받은 북한 병사의 몸에서도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되기도 했다. 결핵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WHO 결핵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북한 내 결핵 환자 수는 13만명으
지난 6일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어린이어깨동무 등 민간 대북 의료지원 단체 관계자 26명을 실은 버스가 경기도 화성 한미약품 팔탄공장 앞에 섰다. 합성의약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앞선 스마트 운영 시스템을 자랑한다. 단체 관계자들은 같은 날 국내 최대 수액 생산 기지인 JW생명과학 당진공장을 거쳐 이곳까지 왔다. 본격적인 남북 보건의료 협력에 앞서 북한 내 필요한 필수의약품 현황을 살펴보고 생산공장 재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고재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인도협력팀 팀장은 "새로 열리는 남북협력 시대에 대비해 미래 방향성을 살펴보기 위한 시도로 관련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한미약품, JW생명과학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는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민간단체의 북한 관련 세미나나 현장교육 등 지식기반 역량 강화 사업을 통일부로부터 위탁받아 시행한다. 기업들은 이미 북한 보건의료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북한 내 감염병 퇴치가 남북교류의 출발점
'남북한 1호 약사' 이혜경(53)씨는 2002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북받치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번도 어려운 북한 탈출을 두 번이나 성공한 뒤 기어코 도착한 한국이었다. "탈북에 성공했지만 북에 두고 온 둘 째 딸을 잊을 수 없어 제 발로 돌아갔다. 6개월간 구금생활을 겪은 뒤 둘 째를 데리고 2001년 두 번째 탈북을 감행했다" 이씨는 다음 해 한국으로 향했다. 두 번이나 탈북에 성공한 믿어지지 않은 경력(?) 때문에 간첩으로 오해도 받았다. 국정원에서 그를 특이 관찰 대상으로 주시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에서 함흥약대를 졸업한 이혜경 약사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북한은 약학이 의대 안에 포함돼 있는데 유일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약대가 바로 함흥약대였다. 6·25 전쟁통에 북으로 끌려간 어머니도 북한에서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 생활을 했다. "막상 한국에 들어오자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파출부, 빌딩청소부, 마트사원까지 안해본 게 없다. 그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