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과 국회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고, 정권은 교체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그러나 계엄을 잉태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결적 정치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다시 살펴본다.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과 국회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고, 정권은 교체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그러나 계엄을 잉태한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결적 정치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을 다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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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일 밤, 문예창작과 1학년생 채윤씨(20)는 서울 서대문구 집에서 비평 과제를 하고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설을 통해 '문학의 시대적 책임'을 서술하라는 과제였다. 소설의 배경인 1980년의 광주를 공부해 갔다. 머리를 싸매다가 자정이 돼서야 확인한 휴대전화는 뜨거웠다. "계엄이 선포됐다. " 단체 대화방에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져 있었다. 채씨는 "처음엔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라고 생각했다. 계엄일 리가 없지 않냐"며 "뒤이어 유튜브를 켰더니 난리가 난 국회 주변 영상이 보였다. 대통령이 진짜로 계엄을 선포한 건가 싶어 얼떨떨함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나갈 채비를 했다. 채씨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코트를 걸치고 태블릿PC와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넣었다. 심야버스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탔다. "여의도 간다"고 하자 60대쯤 돼 보이는 택시 기사는 "젊을 때 나도 학생 운동했다. 통제 때문에 다는 못 들어갈 테니 가능한 데까지 가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4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철공소 사업을 하다가 은퇴한 백발의 문혁씨(73)가 놀란 건 무장한 군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국회로 달려온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였다. 문씨는 "(청년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문씨는 계엄 당일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지인의 전화를 받고 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몸부터 숨겨라"고 당부했다. 정작 자신은 차를 몰고 국회로 향했다. 평생 서울에서 살며 여러 격동의 순간을 목격한 문씨는 "계엄의 무서움을 알기에 잡히면 큰일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시민들이 국회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했다. 국회 정문 근처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총을 들고 열 맞춰 시민들과 대치했다. 문씨는 "지휘관 지시에 앞줄 군인 8명이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길래 지인과 함께 군인들을 끌어내렸다"며 "군홧발에 얼굴을 찍힐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젊은 군인들은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 10시30분. 직장인 최윤이씨(28)는 장례식장에서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40여년간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선배 세대의 노력으로 쌓여온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흔들린 현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영등포구 집 근처에 군인이 깔렸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동시에 국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에게 "보조배터리와 핫팩을 준비하자"고 말하고 장례식장에서 일어났다. 최씨는 직장을 다니면서 지인과 함께 서울여성회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집회 등 여성혐오에 맞선 여러 활동을 펼쳤다. ━가까스로 잡힌 택시…"위험하다"면서도 출발한 기사━국회로 향하는 택시가 가까스로 잡혔다. 당시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손을 벌벌 떨었다고 한다. 기사는 "계엄인 걸 알고 있냐. 위험하다"고 했다. 최씨는 "국회에 안 가는 게 더 무섭다"고 답했다. 기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데려다주겠다"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12·3 비상계엄의 원인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다소 결이 다른 진단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민 통합과 협치가 중요하다는 점에선 뜻을 함께 했다. 지난해 비상계엄 당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었던 조승래 사무총장은 1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은 정치력이 아닌 물리력으로 (국정동력을) 회복하려 했다"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한 게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조 총장은 "민주주의가 쓸모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우 세력들, 내란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야 통합을 이루고 전진할 수 있을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며 "동시에 여당은 여당으로서 내란으로 붕괴된 사회, 경제적 상황들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욱 민주당 의원은 "국민이 국가를 믿어도 된다는 안정감을 확보하는 게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계"라며 "계엄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국가가 국민을 위협하는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