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진's 종소리]
#지난 한글날 연휴 첫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광주행에 재계는 놀랐다. 총수가 투자 예정 부지를 다녀오는 일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시점이 뜬금없었고 이를 생중계하는 건 더욱이 이례적이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동행했으니 정치 문법이 더해진 것을 볼 수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복합단지) 구축에 유달리 속도전을 강조한 점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용수와 전력 준비가 부족해도 착공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그동안 외국의 투자요청에 맞섰던 대표적 명분마저 내려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프라 미비를 이유로 투자 요구를 거절해 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걱정이다.
#재계는 이번 행사를 SK하이닉스(1,272,000원 ▲10,000 +0.79%)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과 연관지어 바라보는 분위기다. 전형적 중복상장 논란과는 다른 상황인데도 여론의 공격을 받는 까닭에 정부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상장의 문턱을 해소해보겠다는 시각도 있다. 솔리다임의 상장 성공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재계는 이해한다는 눈치다. 사안이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대차(312,000원 ▲16,500 +5.58%)와 LG(103,200원 ▲500 +0.49%) 등 다른 주요 그룹들도 차세대 사업 육성을 위해 인수한 로봇 분야 등의 자회사 상장을 언젠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가 기업의 투자계획과 자금조달 방법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에 사실상의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최 회장의 광주행 이전에도 정권이 주도한 각종 이벤트에 총수들이 나와 나란히 동시다발적 '발표'를 하는 장면이 계속된게 사실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진행됐어야 하는 일도 만천하에 공개되는 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투자 압박의 빌미를 줬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나라의 존망이 걸린 반도체 산업이 특정세력의 정치쇼에 땔깜으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업계에서 들린다.
#정작 기업들이 원하는 건 해주지 않고 있다는게 문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들을 몰아붙여 옥죄더니 주 52시간 예외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중국 창신메모리 등은 밤새워 우리 기술을 쫓아오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불도 꺼지지 않는데 우리만 경쟁국에는 없는 52시간 족쇄를 채워 일하고 싶다는 사람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 기술 유출을 엄벌해달라는 호소에도 응답이 늦다. 수십년 쌓은 노하우가 한순간에 털리는데도 '산업스파이법'은 국회에서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간첩죄를 규정한 법안이 '간첩'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여권의 심기와 맞지 않는다는 한가한 소리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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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로벌 산업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기업인들만 속이 탄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백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는 '삼전닉스(삼성전자(215,500원 ▲5,500 +2.62%)+SK하이닉스)'의 주가가 맥을 못 추는 기현상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