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개혁개방 시기(1970년대말~1990년대)를 상징하는 국민차는 폭스바겐의 산타나다. 폭스바겐은 1984년 상하이자동차(SAIC)와 합작사를 세우며 가장 먼저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1991년 이치자동차와도 합작사를 만들었다. 초창기 산타나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고 나중에는 중국 전역의 택시와 공안차량이 산타나로 바뀌었다.
중국 시장을 발판 삼아 오랫동안 성장을 지속해온 독일 자동차 업계에 최근 큰 변화가 생겼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급성장으로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의 판매량과 영업이익이 큰 폭 감소한 것이다. 중국 시장뿐 아니라 유럽 안방도 중국 자동차가 거침없이 진격하면서 독일 자동차는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전기차 전환으로 본격화된 중국 자동차의 부상
중국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대 중반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중산층을 중심으로 일어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붐을 타고 창청자동차, 지리자동차 같은 민영 기업이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중국 토종 브랜드가 시장을 빼앗아 가기 시작한 '1차 로컬화'다. 이들의 추격과 사드 사태의 영향으로 현대차의 점유율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폭스바겐의 점유율은 굳건했다.
폭스바겐이 중국 기업들에게 밀리게 된 계기는 2020년 11월 중국 정부가 내놓은 신에너지자동차산업 발전 계획이다. 이후 중국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가 가속화됐다. 전기차 전환에 앞서 나간 토종 브랜드가 점유율을 다시 끌어올린 '2차 로컬화'다. 독일 자동차 기업은 중국 판매가 급감하면서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BYD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유럽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8월 중국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1.7%에 달했다. 2023년 1월 2.2%에 불과했던 점유율이 4년도 안 돼 5배 넘게 오른 것이다. 내연기관차를 빼면 점유율은 더 올라간다. 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하이브리드차(HEV)의 점유율은 각각 14.8%와 25.5%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하이브리드 차량(PHEV+HEV)의 연간 수입량(쿼터)을 35만대로 제한하고 매년 6% 늘리는 세이프가드 발동에 나선 이유다.
EU는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BEV에 기본 관세 10%외에 최대 35.3%의 상계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하이브리드 차량은 기본 관세(10%)만 부과되기 때문에 중국 자동차기업은 PHEV 수출을 크게 늘려왔다.
중국 자동차 수출, 6년 만에 10배…올해 1000만대 돌파 전망

최근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내수 부진을 만회하기 해외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1~9월 중국 자동차 수출은 820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65.8% 증가했다. 올 한 해로는 1000만대 돌파가 확실시된다. 2020년 100만대에 그쳤던 자동차 수출량이 불과 6년만에 10배 넘게 급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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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동차 수출을 견인하는 건 전기차다. 올들어 9월까지 BYD, 체리 등 중국 전기차 기업은 400만대를 수출했다. 전년 대비 127.9% 급증한 규모다. 유럽에서 BYD 전기차 가격은 3만~4만5000유로(약 4500만~5750만원)로 5만유로(약 7500만원) 수준인 유럽산 전기차보다 훨씬 저렴해 갈수록 판매가 늘고 있다. 체리의 SUV 제이쿠 7는 지난 9월 영국에서 월간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반면 독일 자동차 업계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3분기 매출이 8% 감소했으며 지난 9월 폭스바겐은 구조조정 비용을 이유로 올해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기존 4.0~5.5%에서 1%로 대폭 낮췄다. 독일 자동차경영연구소(CAM)에 따르면 BYD 등 중국 선두 자동차 기업의 수익성은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에 맞먹는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이자·법인세 차감 전 이익(EBIT) 마진을 살펴보면 스즈키가 10.1%로 가장 높다. 인도 시장을 장악한 영향이다.

그 다음 체리가 7.8%로 2위, 현대차가 6.5%로 3위를 차지했다. BYD(4.3%)는 BMW(5.8%)와 메르세데스-벤츠(5.4%)보다는 낮았지만, 폭스바겐(3.8%)을 앞섰다. 중국 선두업체인 체리와 BYD가 판매량뿐 아니라 수익성에서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맞먹는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값싼 중국 자동차가 해외로 쏟아져 나오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수익성은 급감했다. 상반기 글로벌 완성차 25개 그룹의 합산 EBIT는 16.3% 감소했으며 평균 EBIT 마진은 3.5%로 전년(4.4%) 대비 하락했다. 차량 한 대당 평균 EBIT도 1199유로(약 180만원)에서 1027유로(약 154만원)로 14.3% 쪼그라들었다. 중국 전기차는 유럽에서 신차 판매량을 65% 이상 늘리며 점유율을 11%로 끌어올렸다. EU가 상계관세 대상이 아닌 하이브리드카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적용하겠다는 이유다.
현대차·메르세데스-벤츠 뛰어넘은 BYD 시총

주식시장의 평가도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한다. BYD 시가총액은 1112억달러로 현대차(618억달러) 및 메르세데스-벤츠(422억달러) 등 독일 자동차 3사를 앞선다. 과당경쟁으로 중국 자동차 업계의 마진율이 1.5%으로 급락했지만 BYD는 내수보다 수익성 높은 해외 수출에 올인하며 덩치를 키웠기 때문이다.
한국도 중국 전기차 공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BYD의 올해 1~9월 국내 신규 등록대수는 2만137대로 전년 동기 대비 578% 늘었다. 지커도 중형 전기 SUV인 7X의 한국 출시를 앞두고 있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와 테슬라가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운 반면 현대차의 올 1∼9월 국내 판매량은 16.3% 줄어든 44만8181대에 그쳤다.
현대차는 2010년대 중후반 중국의 '1차 로컬화' 당시 중국 점유율이 줄었기 때문에 2020년 이후 진행된 '2차 로컬화'로 인한 중국 판매 감소 영향은 받지 않았다. 독일 자동차 3사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중국 전기차가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현대차 역시 국내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독일차를 반면교사를 삼아 현대차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