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머니투데이는 매주 한차례씩 대한민국 청년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선배들의 인터뷰를 게재한다. 이를 통해 88만원 세대의 고통과 좌절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이들이 88억원 세대로 거듭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머니투데이는 매주 한차례씩 대한민국 청년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선배들의 인터뷰를 게재한다. 이를 통해 88만원 세대의 고통과 좌절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이들이 88억원 세대로 거듭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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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장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서울 종로구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 거실에는 대형그림 하나가 걸려있다. 언뜻 봐서는 서양명화 같다. 그런데 기자가 걸어 들어가는 사이, 허리를 숙이고 있던 그림 속 여자 모델이 스르르 옷을 벗는 것이 아닌가. 명화가 아니라 누드화였다. "이거요? 배준성 교수가 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 관람객들에게 일종의 '야지(조롱하다는 뜻의 비속어)'를 놓는 거죠. 이쪽에서 보면 옷을 입고 있는데 저쪽에서 보면 벗고 있잖아요." 박 원장은 배 교수의 이런 '야지' 컨셉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토록 불행한지에 대해 풀어놓은 그의 이야기도 야지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그 언저리였다. 대상은 바로 기성세대였다. "청년들이 우울하고 불행한 건 기성세대가 자신의 성공경험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놓기가 싫기 때문이죠." 박 원장은 대신 청년세대에 대해서는 행동을 촉구했다. "침묵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선택
"제 20대요? 어려움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죠." 양신(梁神) 양준혁(42)도 처음부터 신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하려 했으나 "대학 가서 더 배우고 오라"는 핀잔만 들었다. 대학(영남대)을 졸업하고 다시 삼성을 찾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해서 상무로 발길을 돌렸다. "야구만 생각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어온 지 그때가 딱 15년째였는데, 이대로 무너지는가 했죠. 단무지 팔고 파출부 나가던 엄마 얼굴이 어른거리더라구요." 양준혁의 20대는 지금 20대와 많이 닮은 듯했다. 수십 수백 번 원서를 써도 취업하기 힘들어 수없이 '이대로 무너지는가'를 되뇌어야 하는 지금 20대와 말이다. 양준혁은 이로부터 2년 뒤 꿈에 그리던 삼성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신의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난 야구만 했다. 지식은 없다. 하지만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는 양준혁을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야구재단 사무실에서 만났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현역 광고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친다는 박웅현(50) TBWA ECD의 4평 남짓 사무실에 붙어있는 시 구절이다. 그의 사무실은 기대와 달리 아주 평범했다. ECD(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면 크리에이티브가 생명인 광고회사에서도 광고제작 실무를 총 책임지는 임원급인데, 특별히 크리에이티브하다거나 튀는 인테리어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여느 사무실과 다른 게 있었다. 벽마다 닥지닥지 붙어있는 A4, B4, A3 종이들. 붙일 수 있는 데는 다 붙여놓았다. 처음엔 명카피들을 적어놓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베르 카뮈의 과 장 그르니에의 에 나오는 구절들, ‘靑山不墨千秋畵(청산불묵천추화(청산은 먹이 없어도 천추에 남는 한촉의 그림)로 시작되는 한시… 박웅현의 사무실 벽은 인문학 교수의 칠판 같았다. 그는 벽을 가리키며 “다들 ‘어디다 써먹을 거냐?’라고 묻는데, 이게 바로 내 청춘을 지탱했고 지금도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48) 연구실 책상 위에는 1백통은 되는 듯한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이다. 이메일을 일일이 출력해놓은 종이도 그 옆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메일은 대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편지는 군대와 교도소에서 주로 온 것이었다. 김 교수는 교도소에서 온 편지를 하나 집어 들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편지를 쓴 재소자는 “20대에 큰 죄를 지어 10여년째 수감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가면(출소하면) 나이가 마흔인데 인생 끝났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책을 읽고, 나가도 낮 12시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직도 내 인생이 반이나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교도소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 교수는 책에서 인생 80년을 24시간에 비유하면서 서른 살은 오전 9시, 마흔 살은
, , , 등 모두 200만부 이상 책이 판매된 베스트셀러 작가 답지 않게 이지성(37)은 여리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안철수 선생님만해도 서울대 나오고, 20대에 의대 교수가 되고, '백신'까지 만드셨잖아요. 시골의사 박경철씨 같은 분도 병원 원장 아닙니까. 이분들에 비하면 저는 (20대의 멘토가 되기에) 자격이 없죠. 다만 그분들이 줄 수 없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저한테서 받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10등급 중에서 5등급, 남자 여자 따로 뽑던 시절 운 좋게 지방교대(전주교대)에 진학했고, 학점이 좋지 않아 임용고시에 응시할 자격조차 안됐지만 남자 교사가 모자라 또 운 좋게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하지만 성인들 사이의 '왕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20대를 외롭게 보냈고,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교사 월급은 빚 갚는데 다 들어갔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출판사 80곳으로부터 거절을 당하며 14년을 무명작가로 보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다. 이런 이지성
15년 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으로 공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 받게' 했고 막노동과 가스통, 물수건 배달로 돈을 벌며 서울대 법대에 수석 합격해 수많은 사람들을 또한 눈물 흘리게도 했던 장승수 변호사(41). 궁금했다. 장승수의 집념과 독기가 힘들게 사는 지금 청춘들에게도 통할까. 장승수가 20대에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산다면 지금 청춘들의 삶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IMF 위기가 대한민국의 생존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장승수의 생존방식이 유효할까.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이 알려진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로투스 사무실로 그를 찾아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말, 그것 거짓말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딱 장승수를 두고 한 말 같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졌다. 대학진학은 생각조차 못한 채 식당을 돌아다니며 물수건을 배달하고, 가스통을
가난 딛고 입학 후 팽팽 놀던 서울대생 휴학시키고 함께 밤새 게임 '별난 아빠' "문제를 정의하라, 관점을 바꿔보라" PC통신 유니텔을 만들고, 한게임을 만들고, NHN을 만들고, 그리고 카카오톡까지 만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45).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줄 알았다. 아무래도 '있는 집' 자식들이 보고 듣는 것도 많아 창의적인 일에 강하다고 하니깐. 험하게 자란 얼굴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그는 '없는 집' 자식이었다. 그것도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아야 했던 아주 '없던 집' 자식이었다. "어머니하고 같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지방에 돈 벌러 다니신다고 말이죠. 2남3여 맏아들인데 대학에 간 건 저 혼자뿐이었죠. 그래서 저한텐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모성애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 말입니다." 그래서 김범수도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꿈'을 주문할 줄 알았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장승수 변호사처럼 말이다
구강구조가 특이한 남자, 혀 짧은 소리로 '맹맹거리는' 남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린 남자, 그러나 가왕(歌王) 조용필도 제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50년간 가장 사랑 받는 연예인' 1위로 뽑혔던 남자, 개그맨 김국진(46). '밤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짜장면 시키신 분' '오 마이 갓' 등 그의 입에서 나오던 혀 짧은 소리가 아직도 시청자들 귀 끝에 맹맹거리는 대박 유행어의 주인공. 하지만 골프, 사업, 그리고 결혼 등에서 실패를 연속하며 5년간 TV에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남자. 그러다 4년 전 재기해 후배들 틈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남자, 김국진을 만났다. 화려했던 성공담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처절했던 실패론(失敗論)을 듣기 위해서 였다. 실패에 대한 김국진의 철학이 힘든 사람들에겐 유명인사의 그 어떤 성공담보다 더 강력한 위로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특히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들에겐 말이다. "성공은 실패를 안 하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이 50만원 하던 시절 연 2억원을 벌던 과외선생, '손사탐'이라 불리며 수천명의 수강생을 몰고 다니던 유명 학원강사, 그리고 지금은 시가총액 8000여 억원의 메가스터디 대표, 손주은 회장(50). 지난달 27일 기자는 서초동 메가스터디 본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가 마흔 때 했다는 동영상 강의를 보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색깔분필을 많이 쓰는 선생은 처음이었다. 노랑 파랑 빨강 분필에다, 별표도 한 개짜리, 두 개짜리, 세 개짜리, 거기에다 가는 선과 분필 눕혀서 굵게 그린 선 등 분필들의 호화 경연장이었다. "여러 색깔을 쓰면 저 스스로 집중력이 생기고, 그 집중력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거죠. 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요? 제발, 너희들은 이거 까먹으면 안돼, 제발 좀 알아줘야 해, 정말 중요한 거야, 뭐 그런 절규에요. 소리치는 거에요." 기자는 이 정도 열정, 이 정도 진정성이면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줄 자격이 된다 싶었다. "공부로 구원
기자는 한때 싸이가 부른 '낙원'에 꽂힌 적이 있다. '너와 나 단 둘이서 떠나가는 여행/ 너를 향한 내 마음 절대 안 변해…'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밀월여행에 대한 것이다. 한달 내내 차에서 이 노래만 틀었다. 곡도 곡이지만 가사가 쇼킹했다. 처음 떠난 밀월여행에서 한 10년 같이 안 살아보곤 절대 나올 수 없는 묘사(밥은 내가 할게/ 쌀만 담궈 놔)가 나오기도 하고, 마지막엔 이별까지 상정(나중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오늘 하루 곱씹으며 나를 잊지 말어)한다. 한국영화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만든 홍상수가 있다면, 한국가요엔 싸이가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기자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가수 이선희도 이 노래에 꽂혀 자신이 발굴한 이승기를 그에게 맡겼고, 그래서 나온 게 '내 여자라니까'라는 노래였다고 한다. 10년 전 '낙원'을 만든 '싸이' 박재상(34)을 지난 25일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작업실에서 만났다. 밀월여행 한번 맘놓고 떠날 수 없는 20대의 '낙원'
문제가 없어 오히려 문제인 사람, 문재인? 인터뷰 중에 딸에게서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드럼이 치고 싶어 밴드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SKY 나오지 않아도 지금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자랑한 바로 그 딸이었다. 마주 앉은 기자에게도 대화가 다 들렸다. “아빠, 죄송한데요. 오시는 길에 건전지 좀 사오세요” “그래~, 얼마 얼마짜리?” “AA짜리 4개요” “음 그래 알았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출가한 딸은 문 이사장이 나가고 없을 때 엄마가 걱정돼 가끔씩 친정을 찾는다. 그의 집은 경남 양산에서도 아주 외진 곳. 청와대를 나오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려고” 이사한 곳이다. 지난 9일 부산시 연제구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대권주자로서가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선배 문재인으로서 인터뷰를 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온몸을 던진 인권변호사, 거기에다 가족을 위해 AA짜리 건전지
영화감독 이준익(52)은 최소한 기자가 듣거나, 보거나, 읽거나,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역사학, 미학 등 세상의 수많은 학문을 넘나드는, 경계도 없는 내공이었다. 역시 생각의 폭과 깊이는 가방 끈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했다.(그는 세종대 동양화과를 중퇴하고, 서울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다가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등으로 떴다) 이준익과의 대화는, 인터뷰가 잔인한 노동일 만큼, 체력이 달릴 만큼 길게 이어졌다. 인터뷰어로서 이렇게 재미있는 인터뷰도 처음이었다. 체력만 받쳐준다면.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라는 취지에 맞게 골라서 정리해야 하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다. 지난 15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3시간여 동안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멘토는 음모다" 이준익은 목도리를 벗자마자 "멘토라는 말이 남발되고 들불처럼 퍼지는데, 왜 그런 거예요?"라고 쏘아붙였다. "아주 교묘한 음모 같단 말이야. 멘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