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자산 패러다임 대전환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인다. 부동산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자금 이동을 유도하는 이재명 정부의 '머니 무브(money move)' 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인다. 부동산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자금 이동을 유도하는 이재명 정부의 '머니 무브(money move)' 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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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동산 시장은 사고 싶어도 팔고 싶어도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에 갇혀 있다. 대출 규제와 실입주 의무가 겹치며 거래가 사실상 멈춰섰다. 당장은 이런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고 있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 변곡점이 찾아오는 동시에 자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유입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아파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꺾이지 않는 한 증시에서 번 돈이 다시 부동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6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는 지난해 10월 8520건에서 11월 3368건으로 한 달 사이 약 60% 급감했다. 가을 이후 나타난 거래 급락은 규제 강화와 시장 심리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위축 신호로 해석된다. 여름철 1만건대를 기록했던 거래량이 연말 3000건대로 내려앉은 데 이어 이달엔 두 자릿수 수준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거래가 멈춰선 상태라고 설명한다. 시장에서는 실수요 진입 차단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대출 규제와 가격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급매물이 나와도 자금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가계자산이 지나치게 부동산에 집중돼 왔다는 지적이 사실로 확인됐다. 반면 주요국 가운데 미국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중이 낮은 대신 주식 등 투자자산이 상대적으로 많아 차이가 뚜렷했다. '코스피 5000 시대'를 맞아 한국의 자산 분포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제인협회(FKI)가 지난해 의뢰한 한 연구용역 결과 한국의 가계자산 중 65% 상당이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가계자산을 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으로 나눴다. 비금융자산은 토지·건물·기계 등이며 이 때문에 시장에선 부동산 자산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가 실시한 '주요국 가계 자산 구성 비교 및 정책과제'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자산 중 비금융자산은 64. 5%를 기록했다. 2020~2023년의 4년간은 해마다 65%를 넘었다. 같은 시기 미국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29~33% 선이다. 영국은 51. 6%(2024년), 2024년 자료가 없는 일본은 2023년 36.
정부가 부동산에 쏠린 가계자금을 증시로 분산하려는 정책 드라이브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려도 없지 않다.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린 자금을 생산적인 분야로 돌리는 방향성엔 공감하지만, 인위적인 '머니무브(자금 이동)' 유도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리스크를 지우거나 또 다른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금 유인에 앞서 선진적인 자본시장 시스템 구축과 투자처 다변화가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자칫 정부가 주식 투자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는 만큼 과도한 신호는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강한 메시지 위험…'역머니무브' 역설도━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가 내는 메시지를 보면 필요 이상으로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투자는 엄연히 개인의 결정인데 손실이 났을 때 정부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발 인공지능(AI) 회의론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우리 시장은 언제든 급락할 수 있는 변동성에 노출돼 있다"며 단기적인 부양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대한민국 자산시장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아파트가 유일한 '부의 사다리'였던 시대가 저물고 자본시장이 가계 자산을 증식하는 대체재로 자리매김했다.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도 부동산을 강하게 옥죄는 대신 자본시장 선진화와 투자 환경 개선 쪽으로 완전히 선회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을 형성하고 불려 나가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다. △안정성 △수익률 △세금 측면에서 부동산 투자가 자본시장에 비해 월등히 유리했다. 예컨대 안정성 측면에서 부동산은 자본시장에 비해 변동성이 낮다. 2008년 4월부터 2025년 6월까지 KB주택가격지수 변동성은 연율 0. 95%다. 같은 기간 코스피 변동성은 19. 1%다. 현금 수익률도 안정적이다. 임대인 입장에서 기대 수익률과 같은 전월세 전환율은 2024년 기준 6. 0%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의 배당수익률은 2. 4%에 불과해 주택을 임대했을 때 수익률이 3. 6%p(포인트)나 높았다. 세금 측면에서도 부동산 투자가 유리했다. 부동산 투자에서 주수익원은 '양도 차익'이다.
부동산 금융에 기대 손쉬운 이자장사만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금융권이 올해부터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시작한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압박하고 있기도 하지만 금융권 스스로도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부동산에 치중된 수익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민간금융회사와 정책금융기관들은 올해부터 '생산적 금융협의체'를 정례화 하고 향후 5년간 1240조원 규모의 생산적금융을 공급키로 했다. 민간금융권 614조원, 정책금융 626조원을 각각 투입한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이 담보·보증, 실적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산업과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 등 미래가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생산적 금융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RW) 하한을 15%에서 20% 상향했으며 25%로 추가 상향도 검토한다. 위험가중치가 올라가면 자본부담이 커진다. 부동산에 의존한 '이자장사'에 패널티를 강하게 물리겠다는 뜻이다. 반대로 은행이 보유한 주식의 RW 기준을 현행 400%(원칙)에서 글로벌 기준인 250%로 하향 조정했다.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김 모씨(34)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김씨는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모아뒀던 자금의 일부를 미국 증시에 투자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는 도저히 아파트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셋집을 얻고 남은 자금을 미국 증시에 넣기로 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유망 기술주와 나스닥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 등에 자금을 투자했고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종목 투자뿐 아니라 ETF 투자에서도 남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만한 수익을 거뒀다. 그런 김씨가 국내 증시로 눈을 돌린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미 역사적 고점을 찍은 미국 증시에 계속 돈을 묻어두긴 부담스러웠고 김씨는 보유 중이던 미국 주식을 일부 매도하고 대신 국내 반도체 관련주와 조선주를 매수했다. 미국 증시 투자 경험을 살려 코스피200 ETF도 일부 매수했다. 코스피지수가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상승하자 연말을 기점으로 코스닥EFT도 분할 매수했다.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인다. 주식 시장 호황이 불러온 학습 효과의 결과다. 부동산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자금 이동을 유도하는 이재명 정부의 '머니 무브(money move)' 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2일 기준 111조 2965억 3800만원까지 치솟았다. 1년 전(58조2317억200만원)보다 1. 9배 늘었다. 이후 증감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난달 27일 이후 꾸준히 100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104조 8666억 6700만원이다. 투자자 예탁금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둔 자금이다. 투자자 예탁금이 늘었다는 건 주식 시장으로 돈이 몰린다는 의미다. 불과 한 달 사이 약 20조원 불어났다. '머니 무브'의 흐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11월 주택담보대출은 34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5대 시중은행의 1월 말 요구불예금 잔액은 한 달 사이에 22조4705억원 줄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머니 무브가 시작됐다"고 공식화했다.
"임기 내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목표로 했던 '이재명의 시간'이 '5천피' 조기 달성으로 정권 초기에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 연일 쏟아내고 있는 강경 메시지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이 내놓은 총평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달 31일 SNS(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부동산 정상화는 5천피(코스피 5000),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쉽고 더 중요한 일"이라고 썼다. "'불법계곡 정상화=계곡정비 완료', '불법 부정 판치던 주식시장 정상화=5천피 개막'"이라고도 적었다. 경기도지사 시절 최대 성과로 꼽히는 계곡 불법시설 정비와 정권 초기 코스피 5000 달성보다 '부동산 정상화'가 되레 쉽다는 특유의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이 대통령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들은 이런 자신감의 근저에는 60%를 넘나드는 높은 국정 지지율과 코스피 5000 조기 달성이란 전대미문의 성과가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 온 '생산적 금융'을 가능하게 할 여건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이 부동산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증시 활성화는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 무브'(자금이동)를 유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자본시장에 모인 자금은 다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 국가 전체의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 수단으로 주식을 내세워 집값을 잡고 국가 경쟁력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시장 정상화가 가능한 근거로 "이전에는 부동산이 유일한 투자수단이었지만 이제는 대체투자(주식) 수단이 생겼다"며 "땅·건물만 사려고 하는 것을 유용한 금융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증시 활성화로 주식에 투자하려는 자금이 몰리면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있던 자금이 이동해 집값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그야말로 증시 활성화로 부동산을 잡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계의 저축은 기업과 정부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