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코스피 5000, 자산 패러다임 대전환⑤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김 모씨(34)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김씨는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모아뒀던 자금의 일부를 미국 증시에 투자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는 도저히 아파트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셋집을 얻고 남은 자금을 미국 증시에 넣기로 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유망 기술주와 나스닥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 등에 자금을 투자했고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종목 투자뿐 아니라 ETF 투자에서도 남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만한 수익을 거뒀다.
그런 김씨가 국내 증시로 눈을 돌린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미 역사적 고점을 찍은 미국 증시에 계속 돈을 묻어두긴 부담스러웠고 김씨는 보유 중이던 미국 주식을 일부 매도하고 대신 국내 반도체 관련주와 조선주를 매수했다. 미국 증시 투자 경험을 살려 코스피200 ETF도 일부 매수했다. 코스피지수가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상승하자 연말을 기점으로 코스닥EFT도 분할 매수했다.
김씨의 국내 증시 투자 수익률은 당초 기대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불과 반년여의 짧은 투자 기간을 생각하면 이 숫자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집을 살 정도의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시작한 주식 투자가 오히려 복이 된 셈이다.
그렇지만 김씨의 마음 한 켠에는 지금도 여전히 아파트에 대한 욕구가 남아 있다. 목표한 자금 수준에 도달하면 먼저 아파트부터 장만할 생각이다. 자가(自家) 보유 여부가 인생 중후반부 생활의 질을 완전히 달라지게 한다는 지인들의 말 때문이다. 지금은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결국 이 돈이 언젠가는 부동산으로 향할 것이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김씨는 "결혼을 준비하며 집 매수를 고민하다가 결국 전세로 들어왔는데 당초 사려고 점찍었던 아파트의 가격이 1년 반만에 10억원에서 15억원까지 뛰었다"며 "한동안 아파트를 사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전셋집을 얻고 남은 자금을 증시에 투자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면서 "당장은 아파트를 살 여력이 없는 만큼 주식으로 자금을 불려 최대한 빨리 집을 사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코스피 지수가 5000선을 돌파한 이후 국내 주식시장이 시중 자금을 한층 빠르게 흡수해나가고 있다. 김씨처럼 그동안 국내 주식 투자와 거리를 두던 이들까지 증시에 뛰어들면서 증시 대기자금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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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증시의 매수 움직임만 봐도 개미로 통칭되는 개인 투자자들의 이런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지난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6조763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개인 순매수 규모로는 사상 최대치다. 이어 6일에도 개인 투자자는 유가증권 시장에서 2조1700억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이렇게 이틀 동안 개미들이 코스피 시장에 쏟아부은 자금만 약 9조원에 이른다. 또 주식 거래 활동계좌 수는 1억개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주식 대기자금으로 분류되는 투자자 예탁금도 100조원을 돌파했다.
주식시장의 강세가 이어지면서 2030세대의 주요 투자 수단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3명 중 1명은 가장 유리한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을 꼽았다. 주식이 부동산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은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부동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으로 시작할 수 있는 낮은 진입 장벽과 높은 수익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 모씨(30)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5억원을 넘는 데다 대출까지 막힌 상황에서 2030세대가 부동산에 접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주식이 좋아서 주식 투자를 한다기보다 젊은 세대가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재테크 수단이 주식이기 때문에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기가 도래한 적금을 빠르게 주식 투자 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1년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가 이른바 '5만전자'에 물려 증시를 떠났던 김모씨(29)도 최근 다시 주식시장에 복귀했다. 지난해 만기를 맞은 예·적금의 자금을 모두 국내 증시에 투자했고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적금 상품인 청년도약계좌도 만기와 동시에 주식 투자로 돌릴 생각이다. 김씨는 "오는 9월 만기가 되는 3000만원 역시 주식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맞지만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주식 투자의 궁극적인 목적이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이라고 여기는 젊은 층이 여전히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12월 서울 지역 주택 매매 자금조달계획서를 보면 약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주식이나 채권 매각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최 모씨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몇 달 새 수억원씩 뛰는 게 여전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과거 10만전자를 기대하다 장기간 4만전자에 묶여 있었던 경험도 장기 투자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주택을 보유한 2030세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집을 마련한 강 모씨(32)는 현재 자산의 95%를 주식, 나머지 5%를 적금으로 운용하고 있다. 강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더 넓은 집으로 옮겨야 하는 만큼 갈아타기용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 비중을 최대한 높게 유지하고 있지만 주식 투자기간을 길게 가져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의 주식 쏠림 현상이 단순한 투자 트렌드라기보다 주거 사다리가 붕괴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서울 아파트는 한 푼 두 푼 모아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며 "실물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과열된 만큼 조정 국면에서는 자산 손실이 확대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