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가족, 먼지 쌓인 가사소송법
가사소송법 1991년 제정·시행된 이후 35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족의 형태는 변화했지만 법은 멈춰있다. 이혼소송의 또다른 당사자인 자녀는 목소리를 낼 길이 막혀있다. 35년째 멈춰선 법으로 가사사건의 당사자인 국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아봤다.
가사소송법 1991년 제정·시행된 이후 35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족의 형태는 변화했지만 법은 멈춰있다. 이혼소송의 또다른 당사자인 자녀는 목소리를 낼 길이 막혀있다. 35년째 멈춰선 법으로 가사사건의 당사자인 국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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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제정·시행돼 35년째 바뀌지 않은 가사소송법의 개정 필요성을 국회와 법원 모두 공감하고 있으나 우선순위에 밀려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법조계와 정치계에 따르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가사소송법 전부개정안은 지난 7월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개정안에는 △양육권 소송 등에 있어서 나이 제한 없는 미성년 자녀 의견 청취 개진 △이혼 확정 전 양육비 지급 사전처분 강제 집행 △국선 후견인 제도 법 명문화 △가정법원 허가 하에 자녀 인도 집행 △가사비송사건의 체계적 분류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서 의원은 "가사소송법 전부개정안은 아이들의 권리뿐 아니라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법안"이라며 "국회에서도 충분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조속히 통과되도록 법사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의된 지 1년이 지난 뒤 상정된 시점도 서 의원이 법사위원장이 오른 직후다. 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부모의 이혼 혹은 폭력으로 갈 곳 없는 아동들이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가까운 친척이 없는 이들을 보호할 후견인을 국가가 선임해줘야 하는데 법적인 근거가 없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사소송법상 국선 후견인 선임에 필요한 법적 근거가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가사소송규칙 제38조의2에 근거해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국선 후견인 제도란 장애인·노인·아동 등 의사결정·재정 등에 어려움이 어려운 이들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하는 등 역할을 하는 변호사·사회복지사 등 후견인을 국가가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대부분 친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되나 친족이 없거나 친족이 있더라도 연령·질병 등으로 후견 업무가 어려운 경우 국선 후견인이 필요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가정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경제적 사정 때문에 후견인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국선 후견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명문화된 법이 없다보니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가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데 규칙만으로는 예산을 편성할 수 없어서다.
이혼 소송 중 양육비를 혼자서 감당하거나 고정된 관할 법원에 오가느라 자녀 양육에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법조계는 자녀의 복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현행 가사소송법을 배경으로 꼽았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가사소송법은 이혼 확정 전 양육비 지급 사전 처분을 강제할 방법이 부재하다. 이혼소송은 6~12개월이 소요되고 항소심 등 절차가 길어지면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혼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양육비 지급이 끊기면 양육자가 양육 부담에 더해 재정적 부담까지 홀로 감당하게 된다. 현행 가사소송법 제62조 제1항에 따르면 가정법원 등은 가사사건에서 양육을 위한 조처(양육비 지급) 등을 처분할 수 있다고 정한다. 하지만 같은 법 제62조 제5항은 이같은 처분은 집행력을 갖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강제할 수 없단 것이다. 양육비이행법에 '양육비 선지급제'가 규정돼 있지만 이혼 확정 이후에 적용되는 제도일 뿐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혼 사건 특성상 심리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재판 진행 중 양육비를 지급하게 하는 사전처분이 가능하지만 현행법상 집행력이 인정되지 않아 실질적인 양육비 지급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 만 13세 미만 A군은 부모가 이혼하면서 면접교섭권에 따라 친부의 집에서 매주 2박3일 자게 됐다. 친부가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었지만 A군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재정적 능력이 있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했다. 하지만 A군은 아버지의 집에서 자고 돌아올 때마다 까무러치듯 울었다. 소통이 서툴렀던 A군의 의사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였다. 결국 A군과 어머니는 심리상담사를 찾았다. 어머니는 당시의 상담 내역을 기반으로 교섭 횟수를 줄여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당사자만큼 자녀들도 고통을 겪지만 양육권 결정 등에서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자녀들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하는 규정이 미흡해서다. 18일 법원에 따르면 가정법원이 친권자 지정, 양육·면접교섭에 관한 사항을 직권으로 정할 때 미성년 자녀의 의견 청취는 '법'이 아닌 대법원 '규칙'에 규정돼 있다. 그마저도 '13세 이상'일 때로 제한하고 있다. 13세 미만 자녀의 의견은 경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의 잣대로 만들어진 가사소송법이 제정 이후 35년째 변화가 없어 현재의 가족 구조를 다 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육권 분쟁과정에서 정작 어린 아이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규정조차 없다. 게다가 아이가 '물건'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법조계에선 가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사소송법은 1991년 제정·시행된 이래로 35년 동안 전면 개정 없이 20여 차례 일부 개정만 이뤄져 왔다. 법조계 안팎에선 가사소송법이 민사소송법 등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보니 시대 변화는 물론 제정 당시 시대상조차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사사건의 특수성을 놓친 채 가사소송법이 제정된 데에는 제정 당시 가사사건을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닌 사적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이에 따라 이혼·재산분할·양육권 분쟁 등을 '개인 간의 계약과 재산문제'의 연장선으로 보고 독자적인 절차법을 만드는 대신 기존 민사소송법과 비송사건절차법의 틀을 가져와 준용하는 방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