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지진대응 체계의 민낯

[런치리포트]지진대응 체계의 민낯

김민우 이건희 , 조준영 인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7.11.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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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단독]내진설계 건물도 위험…지반분류, 1997년 미국 기준 그대로

지난 17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포항 지진상황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7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포항 지진상황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내진설계기준에서 사용하는 지반분류체계가 1997년 미국 서부해안지역 기준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진설계를 한 건축물이라도 지반상황에 따라 지진피해를 그대로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올해 이전에 건축된 건물의 내진설계기준은 1997년도 미국서부 해안지역의 기준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지반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내진설계기준에 따라 '내진설계' 또는 '내진보강'이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내진성능 평가요령'에 따라 기존 시설물의 내진 보강을 수행하고 있다. 내진 보강 여부와 규모는 지진이 시설물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진하중'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실효성있는 내진 보강을 위해서는 '지진하중'을 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약한 토사지반 위에 건설된 시설물의 지진하중은 보통암지반 위에 건설된 시설물의 지진하중보다 2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내진보강을 위한 지반종류 선택은 대부분 시공 당시 시행된 표준관입 시험결과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지반조사는 '보통암'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보통암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지진하중을 산정하기 위한 적정한 지반분류가 이뤄질 수 없다.

정부는 지난 3월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을통해 지진설계 기준의 지반조건 사항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시설물 내진보강을 위해서는 지반의 전단파 속도를 측정, 지반종류를 확인하고 지진하중을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적용받는 건축기준과 도로설계기준 등 하위기준의 정비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재난안전관리본부 관계자는 "지진법 개정에 따라 내진설계를 해야하는 시설물 31종에 대해 공통 기준사항에 맞춰 내년말까지 계정하도록 계획돼다"고 설명했다.

3년전에 지은 내진설계 1등급 신축 아파트가 이번 지진에 맥없이 파손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번 포항 지역은 지진 발생 이후 토사물이 뿜어져 올라오는 '액상화'현상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금까지 정확한 '지반조사' 없이 이뤄지는 내진보강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안태훈 국회 예정처 예산분석관은 "정부가 지난 3월에 발표한 내진설계기준 공통적용사항에 맞춰 각 시설물들의 내진설계기준을 개정한 이후 내진보강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가 지난 5월 발표한 '내진보강대책 추진결과 공시'에 따르면 전체 공공시설물의 내진율(2016년 기준)은 43.7%다. 도시철도가 81.4%로 가장 높고 학교시설은 23.1%로 전체 평균보다도 20% 포인트 낮다. 내진보강률은 2015년 대비 공공건축물이 1.1%, 도로시설물이 2.0%, 고속철도가 3.3%, 병원시설이 0.4% 증가하는 동안 학교 시설의 내진율은 0.3% 각각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일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주먹구구식 행정이라는 비난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추진해온 내진보강 사업이 각 지역의 지반상화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진하중'계산의 핵심이 될 지반조사 예산조차 편성 돼있지 않은 점도 문제다. 지반조사 예산 뿐아니라 지진관련 예산도 줄었다. 예정처 분석에 따르면 지난 9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지진 방재 예산은 3165억 수준으로 올해 예산(3668억원) 대비 503억원 이상 줄었다. 특히 내진 보강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2466억원으로 올해 예산(2877억원)보다 411억원 감소했다. 정부가 이번 포항 지진 발생 전에 제출한 예산안이지만, 지난해 9월 경북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안이한 예산 편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서 잠자는 '지진법'…깨어나야 할 법안은

2017년 초겨울 다시 뜨거워진 국회 내 지진대책 논의는 새롭지 않다. 지난해 9월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뒤 놀란 국회의원들은 잇따라 법안 발의에 나섰다. 이렇게 1년 간 국회에 쌓인 지진법은 총 50여건에 달했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기까지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고작 6건(대안반영폐기 제외)에 불과하다. 통과된 법안 중 대표적인 것은 △기상청장의 긴급재난문자 서비스 법적 근거 마련 △신축건물에 머릿돌 내진능력 표시 등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에는 40여건의 법안이 통과를 기다리며 잠들어있다.

지금은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기보다 국회 상임위원회 곳곳에 묻혀있는 지진법을 다시 발굴할 때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20일 '깨어나야 할 지진법'을 주요 항목으로 묶어 정리했다.

◇'건물·시설' 내진능력 강화하자=지진에 대비해 건축물 등의 내진능력을 올리는 법안 상당수가 20대 국회에 발의됐다. 박찬우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건축법 개정안은 16층 이상 및 바닥면적 5000㎡ 이상의 건축물만 공개하게 돼있는 내진능력을 2층 이상의 건축물 또는 연면적이 500㎡ 이상 건축물로 확대해 안전을 강화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주차장법 개정안을 내고 기계식주차장이 지진하중 등을 고려해 설계됐는지 설치 전부터 검증을 강화토록 했다. 현재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재직 중인 김영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지진 발생시 고층 건축물에 설치된 승강기가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해 지진감지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교육시설의 안전점검 및 인증 등의 법적 근거를 총체적으로 확보한 유은혜 민주당 의원의 교육시설기본법, 내진등급에 따른 건물의 구조·재료 기준 설정과 점검·처벌 강화를 국토교통부 장관의 임무로 명시한 안규백 민주당 의원의 건축법 개정안 등도 건축물의 내진능력을 총체적으로 제고하는 법안이다.

◇"안전지대는 없다" 활성단층 조사 속도=포항 지진을 계기로 활성단층(최근에 운동을 했으며 미래에 운동을 할 수 있는 단층)의 조사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대 국회에도 활성단층 및 지반 안전 등의 조사를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상당수 발의됐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활성단층 지도를 5년마다 갱신하는 일을 의무화한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같은 당 함진규 의원은 활성단층에 대한 연구 결과 및 지도 등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활성단층을 파악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의 단층에 관한 조사·연구 근거를 마련하는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와 함께 관계기관도 공동으로 연구에 함께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했다.

◇지진 '예방' 위해 예산 지원로도 마련=의원들은 의무뿐만 아니라 지진 대비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예산 지원책도 마련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나란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발의해 학교에서 재해 발생시에만 쓸 수 있는 재해대책특별교부금을 '재해 예방' 목적으로도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교육시설 내진보강기금'을 설치하는 입법안 및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함께 내놓았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에서 기존의 민간소유 건축물에 대한 내진보강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보조할 수 있는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안을 발의해 민간건축물 소유자의 비용 부담을 덜도록 했다.

◇'지진 우려'와 함께 떠오른 문제 '원전'=경북 경주와 포항 등 한반도 동남부는 원자력발전소(원전) 밀집지역으로 꼽힌다. 이에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원전에 대한 총체적 견제장치를 마련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냈다. 해당 법은 원자력이용자의 허가·재허가·인가·승인·등록·취소 및 방사성폐기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한 부분을 원안위의 심의와 국회의 동의를 거쳐 확정토록 했다.

같은 당 서형수 의원도 원안위의 원전 검증에 민간검증단이 의무적으로 참여해 투명성을 높이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원전 부지 반경 32㎞ 이내에 활성단층이 있다면 원전 건설을 아예 금지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더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선언토록 한 '원전의 단계적 폐쇄 및 에너지전환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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