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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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공습을 ‘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른 건 머리카락 크기의 1000분의 1도 안되는 바이러스가 한 국가의 공군력과 맞먹는 핵 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미국 26대 대통령, 332m 길이, 승선인원 5000여명)’를 일순간 멈춰 세운 때문만은 아니다. 인명피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보다 덜하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1, 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크게 나타나고 있어서다. 인간의 감각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에 적응하면 무뎌지지만, 바이러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지난 19일 기준 전세계 확진자는 233만명, 사망자는 16만명을 넘었는데, 전선은 언제든 더 넓어질 수 있다. 이번 코로나와의 전쟁 피해를 보면 사망자 외에도 실업자 수가 미국에서만 최근 한달간 2200만명이 늘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열심히 만들어놓은 미국 내 일자리 2240만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중국은 분기 성장률 통계를 시작한 1992년 이후 최
"탕! 탕!"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의 두 발의 총성. 이후 오스트리아-독일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3국 주도의 4년 4개월간의 제1차 세계대전은 참전군인 1000만명 이상(민간인 사상통계 불가)의 목숨을 앗아갔다. 1918년에 끝난 1차 대전 20여년 후인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다.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히로히토 등이 힘을 합친 '추축국'에 맞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중국이 싸운 인류 두 번째 대전이다. 6년간 군병력 2000만명을 포함해 7000만명이 사망한 대재앙이었다. 제3차 세계대전은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번졌다. 총성도 없었고, 선고포고도 없었다. 소리 없는 공격에 전세계는 얼어붙었다. 3차 세계대전의 적은 인간이 아닌 코로나19 바이러스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개인이나 국가나 위기에 직면하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그릇의 크기가 드러난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면서 각 나라의 민낯이 여실히 공개됐다. 각국의 의료시스템의 경쟁, 국민의 자질과 민주주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바이러스 앞에 노출됐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대항해 시대의 패권국이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염병의 확산에 우왕좌왕하며 스러지고 있다. G2인 미국과 중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 특유의 국가통제로 초기의 대유행을 넘어서 추가 확산을 막았지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보의 투명성이 아직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맏형 미국도 뒤늦게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중국을 비난했던 과거의 상황을 자신들 속에서 발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자신감과는 달리 대응에는 실패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정치인들이 신종 코로나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전세계적으로 창궐했고, 이런 시간이 수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 중국에서 시작해 한국과 일본을 거쳐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 등 6개 대륙 전체로 퍼졌다. 그래서 ‘몹쓸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생존(육체적·경제적 생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즉시 나타나는 육체적 사망에 대한 두려움은 각 개인과 사회가 ‘사회적 룰’에 따라 조심하면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둬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노출됐을 경우 국가의 의료시스템에 의존해 안전을 확보하면 된다. 문제는 경제적 사망의 경우다. 경제는 교환(이동)인데, 각국이 국경을 막는 등 이동이 멈춘 것이 문제다. 이는 개인이나 한 나라가 잘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경제적 사망선고는 실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3
역사는 반복된다. '검은 황금' 석유에서도 마찬가지다. 1985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서부 피서지 타이프에 모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대표들은 아메드 자키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으로부터 파드 사우디 국왕의 최후통첩을 전해 들었다.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산유국이 감산에 동참하지 않으면 사우디도 더 이상 감산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사우디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증산)을 다하겠다"는 단호한 메시지였다. 1982년 OPEC이 최초의 쿼터제를 실시한 후 맏형인 사우디가 유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생산량 조절에 나서는 동안 영국이나 러시아(구 소련) 등 비OPEC 국가들은 사우디에 기대 자국의 시장점유율을 늘리며 안정된 유가의 수혜를 입었다. 그 사이 사우디의 석유생산량은 하루 220만 배럴에서 1985년엔 2만 6000배럴로 고점 대비 98.8%로 줄었고, 수익은 1990억 달러에서 260억달러로 87% 가량 감소했다. 석유의 탄생과 분쟁사를 다룬 '황금의 샘' 저자인
“손님은 적은데, 음식 서빙은 좀 더 늦어진 것 같네요?” 점심 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손님이 줄어든 식당에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손님이 준 만큼 종업원들도 줄여서 잠깐 바쁠 때는 오히려 손이 부족하단다. 손님이 어느 정도 줄었느냐고 물었더니 식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잘나가는 식당조차 60~70%가 줄었다고 한다. 아마 그 정도의 종업원들이 줄었다는 뜻일 듯하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면 지하철역 근처 등에서 자주 마주치던 전단지를 나눠주던 할머니들도 줄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코로나19 여파로 아무도 전달지를 받으러 하지 않아 1장에 몇 원 떼기를 하던 할머니들의 일자리도 사라졌단다. 또 개학이 늦춰진 자녀들이 학원을 가지 않으니 동네 학원들도 빈 강의실을 보며 걱정이 늘었다. 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사람들도 2주 늦춰진 개학에 앞날이 걱정이다. 그 뿐인가.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코로나19 감염 걱정은 조금 덜었지만, 자녀들의 운동량이 줄고, 비타민 D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다. 학교가 개학을 연기하고, 공장이 문을 닫았다. 경제시스템 마비까지 우려되고 있다. 미지의 질병을 연구하고, 대처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알지 못함'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과함의 정도다. 인간이 미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우리의 DNA에 각인된 '조금은 과한 걱정의 인자'가 생존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인류는 타고난 걱정꾼이고, 그런 걱정꾼이었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했다는 가설이다. 학자들은 대표적으로 기원전 3만년에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쟁을 든다. 3만년전 경쟁에서 네안데르탈인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호모 사피엔스보다 힘도 세고, 뇌용량(1600cc)도 현생 인류보다 200cc나 더 컸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를 학자들은 두려움 없이 싸움만 하고, 종족간에 소통이 잘
법원이 지난 19일 ‘타다’를 모빌리티 플랫폼을 이용한 ‘초단기 승합차 렌트 서비스’로 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1심 판결했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택시업계는 생존권에 대한 대책 없이 타다 서비스를 허용했다고 반대하지만, 더 근본적인 논란의 이유는 타다의 혁신성 부재 문제에 있다. ‘타다’ 측은 렌트카를 이용한 모빌리티의 혁신이라고 주장한다. 현실은 서비스 소비단계에서는 ‘청결한 실내와 친절함’을 무기로 한 고급 택시 서비스 정도로 인식된다. 판결처럼 고객이 렌트카 임차인라는 인식은 적다. 여객운수업 면허 없이도 11인승 승합차로 법의 맹점을 이용해 초단기 임대차 계약의 길을 열었다. 기술혁신보다는 법률전문가의 길을 택한 셈이다. 통상 ‘혁신’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정도의 큰 변화를 제공한다. 첫째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 두 번째는 이런 혁신이 우리 사회 전체적 삶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Q: "넘버쓰리(No.3)죠?" A: "아닌데요!" Q: "회사 사장이면, 회장, 부회장 다음 세번째 힘 있는 자리 아닌가요?" A: "아뇨. 삼성전자에는 저 말고도 사장이 19명 정도 더 있는데요." Q: "그렇게 많아요?" 2017년 국정농단 특검 조사 과정에서 수사검사가 삼성전자의 모 사장에게 던진 질문이다. 넘버3 정도 되는 사람이 몇백억원이 움직인 그런 일을 왜 모르느냐며 묻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당시 삼성전자에는 이건희 회장 아래 부회장이 4명, 사장이 20명 있었다. 자기 일도 바쁜데 다른 사장들이 뭘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몇백억원이 오갔는데 상식적으로 윗선이 몰라요? 얘들 껌값도 아니고…"라고 물으면, 상식적으로는 모를 수 없지만, 특별한 기업 입장에선 '모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일례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 윗선인 부회장이나 회장의 결재 없이 독자적으로 결재할 수 있는 금액이 당시 3000억원 정도 됐다. 3000억원이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지난 10일 세계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 한국 영화 101년 역사상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웠다. 봉 감독의 선전으로, 동양의 작은 나라 '코리아'의 문화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가수 싸이를 시작으로 방탄소년단(BTS)으로 이어진 K-팝과 K-컬쳐의 한류확산에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봉 감독의 시상식에 함께 자리했던 사람 중에 눈에 띤 인물 중 한 명은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CJ가 제작한 영화들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록 압박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음악과 영화 등 문화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이 부회장의 감각은 앞서 110년 전 오늘(1910년 2월 12일) 태어난 그의 조부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사업으로 한국 최대 기업을 일군 호암은 타계 2년 전인 1985년에 출간한 자
3년 전의 일이다. 2017년 2월경 10대 그룹 내에 재계 3세와 따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는 부친의 뒤를 이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뷔 무대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자신을 반대하는 노조의 공세에 직면했다. 당시 노조는 그 대표가 처음으로 의사봉을 잡는 주주총회 자리를 D-데이로 잡았다. 2차 파업을 예고하고, 주총 당일 회사 앞과 주주총회장에서 시위를 벌이겠다는 게 노조의 계획이었다. 노조는 임단협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주총장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런 노조의 대응이 당시 리더로 첫걸음을 떼는 그가 겪었던 첫 시련이자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해법을 묻는 질문에 "노조위원장 등과 직접 대화를 해봤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전문경영인 CEO와 노무 담당 임원이 대화하고 보고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오늘 돌아가면 노조위원장에게 연락해서, 직접 찾아가서 우선 얘기를 들어보고, 그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더 깊이 관여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일부터 바뀐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54조(대량 보유 등의 보고에 대한 특례)의 '나비효과'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할 때 당초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하기로 했던 것에서 벗어나게 된 데 따른 우려다. 국민연금이 기초연금으로서 수익률을 높여 국민의 노후를 든든히 해주겠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지나친 경영권 간섭이 시장 시스템에 혼란을 주는 역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국민연금이 지분을 가진 기업들의 경영에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관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경영에 참여하고 싶을 때는 '단기매매차익'을 토해내거나, 공시의무가 강화됐던 과거에서 벗어나, '일반투자'라는 이름으로 경영간섭의 자유와 폭이 넓어졌다. 이로 인해 연금사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