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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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젊음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그의 친구를 보낸 지 40일만이다. 그 죽음 뒤엔 포털이나 SNS(사회관계망)의 악성댓글(소위 악플)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공감에서 힘을 얻고, 비난으로부터 절망을 느낀다.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들은 이런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이며, 비이성적 악플에 절망한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일부 포털은 설리 사망 이후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연예기사에 댓글기능을 폐지했다. 절망에 노출되는 빈도를 줄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다른 포털이나 SNS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익명의 폭력을 멈추려는 시도에 대해 겉으로는 언론자유침해라는 대의명분을 내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이익이 숨어있다. 이를 숨기기 위한 구실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내건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정보통신망법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를 '위헌'이라 결정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헌법 제21조 1항(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
조선 25명의 왕(대한제국 고종·순종 2대 제외)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는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는 표현이 총 65곳에 나온다. 백의종군은 아까운 장수를 참형으로 다스려 전투력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도록 해 복권케 하는 징벌의 일종이다. 재미있는 것은 65회의 백의종군 기록 중 80% 이상이 한민족의 가장 큰 수난기라고 할 수 있었던 7년 전쟁 '임진왜란' 때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기록의 40% 이상(41.5%)이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때(27회)이고, 그 아들 광해군까지 합치면 전체의 65% 가량(42회)이다. 인조 때(11회)까지 합치면 백의종군의 80% 이상이 이 시기에 몰려있다. 형벌로서 백의종군이 언급된 시기가 국난의 시기와 겹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도 이 시기다. 다만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순신 장군의 첫 백의종군은 임진왜란(1592년)보다는 5년 전이다. 실록상 이순신은 조선시대 징벌로서 백의종군
“너는 누구 편이니?” 요즘 웬만한 모임에 나가면 ‘법무장관 조국 vs 검찰총장 윤석열’ 중 어느 쪽에 설 건지를 강요하는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양비론을 펼치면 회색분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러다가 어느 한쪽에 설라치면 ‘과거의 자신’과 싸우는 ‘오늘의 자신’을 마주하고 당혹해 하기도 한다. 과거 쉽게 비난의 화살을 날렸던 주제에 대해 온몸을 던져 방어하거나, 과거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던 문제에 쌍심지를 켜고 비난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여야가 다르지 않다. 지난 두 달간 대한민국을 뒤흔든 ‘조국 정국’은 ‘논리 상실의 시대’를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이 ‘그때는 맞고(틀렸고), 지금은 틀렸다(맞다)’로 귀결된다. 기실 현 사안은 ‘정의와 공정이 누구의 편’인가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와 진보의 이념충돌도 아니다. 그냥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논리와 정의가 달라지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가 ‘공정과 정의’이고, 이를 구현하는 도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타인에 대한 동류의식이나 공감이라는 행동원리가 존재한다. 공감은 원시적인 생존 욕구 등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우리의 DNA에 배어있는 감정이다. 특히 인류 보편적 도덕에 대한 공감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감정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나 불의와 폭력에 맞서는 데 대한 공감은 때와 장소, 인종을 가리지 않는 보편성을 갖는다. 누군가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과 같은 재난이나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에 대해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이 인류 보편적 공감이다. 우리는 실제 칼에 찔려보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서 나오는 그 같은 장면에 공포와 고통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데, 이런 공감 DNA가 우리 몸 속에 있다. 공감능력은 실제 자신에게 가해지지 않는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서도 같이 느끼고 같이 아파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구제에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이건희 삼성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인 1993년, 삼성 사장단에 던진 또 하나의 화두였다. 당시 이 회장은 18세기와 19세기 등 100년 단위의 세기말마다 항상 세계적인 변화의 소용돌이가 있었고, 2000년대를 앞두고도 ‘세기말적 변화에 대비하라’는 ‘구한말 위기론’을 사장단에 설파했었다. 준비하지 않으면 구한말 서구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의 군홧발 아래 침탈을 당한 대한제국의 그 아픔을 다시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독도 상공에는 러시아 군용기가 날고, 중국과 일본 전투기도 구한말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1895년의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 승전의 기세로 1910년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듯, 일본은 이제는 반도체 등 경제제재를 통해 한반도에서 다시 경제전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그 모습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요즘 기업에서보다는 검찰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승계'의 대상이 되는 경영권이란 무엇일까. 경영권은 법률적으로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다. 최대 지분 혹은 50%+1주가 경영권을 의미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물론 지분은 소위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요소지만, 국내외 사례를 보면 오히려 신뢰와 합의가 경영권 행사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경영권 승계라는 것은 왕권을 승계할 때처럼 왕관을 씌워주거나 국새(왕이 사용하는 인장)나, 왕을 상징하는 칼인 칠지도(七指刀)를 건네는 것이 아니다. 실재하는 형상이 뚜렷하지 않다. 그래도 경영권이 무엇이냐고 따지면 인사권과 기업운영권 정도로 이해하는 게 일반적 정서다. 최근 국내 경영권 승계 사례를 보면 경영권의 실체를 어렴풋하게 알 수 있다. LG그룹의 경영권은 구광모 회장과 그에 버금갔던 지분을 가진 숙부인 구본준 ㈜LG 부회장 사이에서 구광모 회장에게로 넘
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부탁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검찰수사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무리한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의 내용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보도경쟁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디어 경쟁의 대표적 사례는 1880년대 후반 옐로저널리즘의 시초가 된 '뉴욕월드' 신문 창업자 조지프 퓰리처다. 그는 경쟁자인 '뉴욕저널'의 창업자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자사의 인기만평인 '옐로 키드(노란 아이)의 작가를 뺏어가자 다른 작가를 고용해 똑같은 노란아이 그림을 그리도록 하며 경쟁에 열을 올렸고, 이게 옐로저널리즘의 용어의 출발점이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 미디어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집단을 알리는 선전도구에서 독자가 소비하는 상품으로 바뀌었고, 그 결정적 변화의 모습이 핵심취재 영역에서 나타났다. 그 이전까지 사건기자들의 취재 영역은 법원이었으나, 옐로저널리즘이 득세하면서 '더 선혈이 낭자한
지난해 말 강남 한 클럽의 작은 폭행사건에서 시작됐던 '버닝썬' 사태. 단순 폭행은 성공한 아이돌과 경찰이 연루되고, 마약과 섹스, 몰래카메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국사회를 뜨겁게 '불태운 게이트'로 번졌다. 또 일부 일탈한 재벌가 3세들은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해외유학을 떠나 '마약동창'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칭을 얻었다. 한때 결혼을 약속했던 아이돌과 재벌가 3세의 만남은 마약으로 인연을 맺어 동반 구속으로 끝맺었다. 아쉬울 것 없어 보였던 이들이 왜 몰락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생으로 보였던 이들의 몰락은 자본주의의 근원적 문제라기보다는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과도한 욕망 탓이 컸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인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칼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인 '노동 착취'에 대한 반론으로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강조했었다. 막스 베버는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의 뿌리를 보면 근면과 성실함에
지난 4일 밤부터 시작된 강원 고성과 속초, 동해, 강릉, 인제 등 5개 시·군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는 민관군의 공조와 발 빠른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이다. 축구장 740개 크기의 임야 약 530㏊(헥타르)가 불탔고, 주택 401채를 비롯해 건물 100동, 축산시설 925개소 등이 소실된 데 비해 인명피해가 적었다. 대통령이나 총리, 임기 하루를 남긴 행안부 장관의 모습, 수천 명의 소방관과 1만6000여명의 젊은 군인 등의 희생과 활약상에 대한 얘기가 들린다. 화재 규모에 비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시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2016년 상영작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재난에 대한 대처와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 영화는 2009년 1월15일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 분)가 조종한 US에어웨이스 1549편이 뉴욕 라과디아공항에서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으로 향하던
사립유치원의 이익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가 4일 결국 유치원 개학 연기를 단행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개학을 연기한 회원사들은 1533곳이다. 이번 결정의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유총 집행부는 회원사나 정부 모두로부터 그 책임을 면하기 힘들 할 듯하다. 이유는 판세를 읽을 줄 아는 능력 부재 때문이다. 싸움은 이길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유치원 개학 연기'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우선 프레임 전쟁에서 한유총은 이미 졌다. 한유총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번 이슈는 '돈 문제'다. 사유재산권을 침해받았다고 누차 얘기한 것처럼 결국 돈 문제에서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정부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높다. 이번 갈등의 핵심키가 된 '에듀파인'이라는 프로그램의 목적은 유치원비의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자녀들을 위해 사용되는 돈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하자는데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두번째는 '사립유치원=사유재산'이
요즘처럼 사법부에 대한 논란이 심했던 적도 없을 듯하다. '사법농단'이라는 말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심을 지켜야 할 천칭이 좌우로 흔들리다 보니 그 어느 쪽도, 저울을 잡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사회가 된 듯하다. '법이 어때야 하는가'를 얘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것이 법규(法規)라는 한자어에 대한 해석이다. 두 글자를 '법'과 '규'로 나눠도 둘 다 법을 얘기하는 말이다. 법(法)은 물 수(水)변에 갈 거(去)를 합친 것이다. 이는 법이란 물 흐르듯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이 가진 상징성은 공평함이다. 물은 어느 쪽이 높고, 어느 쪽이 낮도록 두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결국은 수평을 이루도록 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뿐더러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이 예측 가능하다. 다양한 그릇에 담겨 그 모양이 달라 보이거나 다른 용액들과 섞여 그 색깔이 달리 보일 수 있어도 그
말 안장(鞍) 모양을 한 산이어서 이름 붙여진 안산(鞍山). 높이 295.9m 서울 서대문구의 안산은 그 높이에 비해 상처가 많은 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인조실록) 인조 2년 2월 11일 기록을 보면, '관군이 적(평안병사 겸 부원수 이괄의 반란군)과 안현(鞍峴: 현 안산)에서 싸워 크게 이겼다'고 돼 있다.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돌진했던 반란군 이괄의 부대가 도성을 점령한 후 충주로 피신한 인조를 붙잡지 못하고, 성을 나왔다가 패퇴한 곳이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안산이었다. 기록에는 적병 400여급(級)을 베고 300여명을 사로잡았으며, 남은 무리는 수구문(水口門, 현 광희문)을 거쳐 달아났다고 돼 있다. 이괄의 혁명의 꿈이 사라진 곳이다. 평안도에서 위급한 신호를 알리던 봉수대의 연결 봉수대가 위치했던 곳도 이곳이다.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가 또한 무악산으로 불린 이곳 안산이다.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보다 낮지만 지정학적 요충지로 전쟁의 상흔이